| [5·18 민주화운동 40주년기념 큐레이터 장경화 '오월의 미학'](15) 김희상 5월의 흙으로 빚어낸 500나한 |
| 2020년 11월 10일(화) 1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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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친에 대해 강직하고 올곧은 성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니 그의 집안 내력이었다고 한다. 올곧지 못한 불의를 보면 참기가 어려웠고 공평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침묵보다는 행동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그래서 일까? 그는 90년대, 뜨거워야만 했던 시대에 대학생 신분으로 바르지 못한 시대와 독재에 맞서 진보적 미술단체에서 막내둥이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현장을 뛰어다니며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30대를 이렇게 보낸 그는 한 걸음을 벗어나 이제 작업실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품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의 깊은 의식 속에는 5월의 기억과 정신이 각인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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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기억과 현장미술 주도
1980년 5월, 김희상은 고등학교 1학년으로 계림동 시절이었다.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져 있고 호기심에 대문을 나서 금남로와 전남도청이 가까워 자주 사람구경을 다녔다. 시민군과 계엄군의 대치상태와 수레에 급하게 실려가는 시체, 방송국 화재, 총소리, 장갑차 그는 5월 현장에서 고등학생의 눈높이로 기억에 담아뒀다. 대한민국 군인이 시민을 총과 칼로 죽이는 일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1989년 김희상은 군 생활을 마치고 미술학과에 4학년으로 복학을 한다. 그리고 전공으로 조소를 선택하게 되는 사치스러운 이유는 없다. 다만 흙을 만지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조소수업의 아카데믹한 교수법에 대한 그의 반항아적 기질작동은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이즈음 대학에서는 학내운동으로 학생은 대학운영의 주체자로 목소리를 키우고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그리고 교문 밖에서는 연일 독제정권에 맞서는 진보적 인사를 중심으로 활발한 저항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문화운동으로 진보적 미술운동을 하던 선배 미술인과 함께 ‘학미연’(학내 미술패연합)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학미연’ 단체는 각 대학 내 진보적 미술패 동아리로 당시 ‘민해운사’(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을 전국의 ‘학미연’ 단체가 주동이 돼 주제별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조각전공으로 참여하지 못했으나 ‘민해운사’ 자료(슬라이드)를 가진 ‘임수경’ 방북은 큰 논란으로 이어져 많은 동료선배들의 고통이 뒤를 이었다. 그도 당시 경찰에게 쫓겨 한동안 피해있었다.
김희상은 이렇게 불의를 참지 못하고 정의를 위한 행동을 해야만 했다. 대학교 복학 이후부터는 동아리 동우와 주변 지인들과 함께 의식화 교육을 받으면서 누군가 앞장을 서야한다면 미루지 않고 뒤에 숨지도 않고 나섰다. 당시는 어둡고 무거웠던 시절, 시위현장을 앞장서 헤집고 뛰어다녀야만하는 시각매체 운동은 현명한 생각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 많은 진보적 미술 인사들은 뒤에 숨어 나서지 않고 있었음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나서야 했었다. 임진왜란 의병처럼, 동학 의병처럼…. 부당한 권력의 국가폭력 앞에 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옳은 일이라면 그는 두렵지가 않았으니 피할 이유도 없었으며 늘 당당했다. 당시는 ‘학미련’과 ‘민미련’(민족미술인연합회)은 각자의 조직이나 사실은 한 몸이나 다름없이 활동을 했다.
‘민미련’에서 필요했던 시위현장에서의 걸개그림, 만장 등 모든 시각매체물은 ‘학미련’ 조직에서 밤 세워 제작하면 다음날 거리의 시위현장에 사용되곤 했다. 그러한 활동으로 2년의 시간을 보낸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광주민미련’ 소속으로 이어져 활동을 계속했다. 손이 빨라 그림도 곧잘 그렸던 그는 ‘광주민미련’ 소속 조각전공자로는 유일하게 기량이 뛰어나 조각물은 모두 그 차지가 됐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91년과 92년 이후에도 그는 많은 조각작품 제작에 매진하게 된다.
90년대 초, 당시 시위현장에는 분신정국이었다. 분신자 ‘박승희 영정’과 이철규, 5·18묘지 조형물, 이한열, 박종철, 김남주, 들불7열사, 이경동, 한상용 등 열사의 흉상을 제작했다. 그는 이렇게 광주를 중심으로 전국 주요 시위현장을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정의로움으로 뛰어다녔다.
그는 시위현장을 다니면서 한 가지 목마름으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다름 아닌 예술가로 현장을 뛰어다니다 보니 정작 자신의 작품제작에 손을 놓고 있었던 지난 시간에 대한 깨우침과 자기반성이었다. 그는 2002년을 기점으로 ‘민미련’의 조직일과는 선을 긋고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김대중’ 정부의 출범이후 일정한 성과를 이뤘다는 판단과 그동안 소홀했던 자신의 작품제작을 위한 각오로 준비한다. 우선 인문학 수업을 위한 서적 뒤지기, 사색과 역사현장을 위한 답사로 수년간의 시간을 보낸다. 이와 함께 자기 미학의 아우라 구축과 조형기법과 어법을 찾아 나선다. 결국은 시위현장의 선동미술운동가에서 이젠 전업 조각가로 변신을 시도한 셈이다. 그는 30대를 모두 시위현장을 뛰어 다니면서 축척시켜 왔던 예술적 내공과 기량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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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상은 남도에서 출생해 성장했으니 자연스럽게 남도적 미감에 익숙하고 안정된 셈이다. 그래서 그가 제작했던 90년대 현장미술도 열사들의 흉상도 투박하고 거친 손맛이 돋보이는 성과물을 보여 왔었다. 이러한 미적 정서를 바탕으로 2001년 그는 첫 개인전(서울, 인사갤러리)을 갖는다.
“나는 언제나 숲으로 간다. 그리고 숲의 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중략) 인간이 하는 일이 자연의 순환 속에 녹아들고 소통되기를 숲에서 배우는 것이다(중략) 절단되어 파내고 깎아 내는 파편 속에서 어느덧 나를 떠나 인간의 역사와 생명의 무게를 쫓는다.”(1회 개인전 카다로그 작가엣세이 발췌) 이 글을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점은 우선 그의 자연관이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치’에서 출발되는 그의 자연관을 읽을 수 있다. 자연을 닮아가는, 자연과 함께 하고자는, 자연에 순응하고 자는 자연관은 우리 선조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사상이자 삶이었으며 정신이었기에 그의 예술은 이 지점에서 출발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그의 첫 개인전은 숲에서 얻은 나무를 사용한 거친 나무 회화작품으로 전시장을 연출한다. 나무는 그동안 자주 다뤘던 재료는 아니었지만 나무에 회화적 기법을 접목해 스케치하고 깎아내고 다듬었다. 그리고 흙으로 깎아낸 부분에 상감하듯 덧칠을 했다. 인물을 대상으로 회화요소를 강조하면서 흙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무를 깎고 다듬어 평면을 만들고 흙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즉, 흙을 이용한 나무에 회화를 한 것이다.
첫 개인전에 출품됐던 작품 ‘숲으로부터’(2001)는 원형의 통나무를 거칠게 깎고 다듬어 부조 형식으로 조각하고 흙으로 상감을 올렸다. 작품표면의 흙은 세월과 함께 자연스러운 흔적이 남아있다. 이렇게 그의 첫 전시는 유일하게 1점의 작품만을 남기고 있다. 이 전시를 통한 그의 자연관을 읽을 수 있겠으나 조형성은 성숙되지 못하고 거칠고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이 전시를 통한 얻을 수 있었던 점은 자신의 작품제작에 대한 성찰과 조형성에 대한 아쉬움에 반성으로 이듬해 운동권의 현장미술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는 결정을 하게 됐다고 보여 진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그는 첫 개인전을 마치고 이듬해(2002) 미술운동권과의 거리를 두고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떠난다. 자기 성찰을 위한 시간을 스스로 갖기 위함이었으며 홀로 자신의 미학수업을 한 것이다.
▶깨어있는 5월 광주 민중상 제작
그는 모든 외부와 단절하고 수년간 목적없는 여행 도중 사찰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유명한 사찰에서부터 이름없는 암자에 이르기까지…. 사찰을 여행하면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불상과 함께 500나한이다. 나한상은 불교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로 500인은 부처와 인간의 사이에 존재하면서 깨달음을 전파하는 민중인 것이다. 그는 깨어있었던 5월 광주민중과 사찰의 500나한상을 중첩시키면서 그가 친숙하게 다뤄 왔던 흙으로 500나한의 민중상을 제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김희상이 체험한 80년대 이후 시대를 지배했던 정치적 사회·경제적 상황은 국가폭력과 함께 무한경쟁시대이자 약육강식의 자본논리가 지배하는 자유 시장경제체제였다. 감히 소시민이자 민중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불만이자 고통이자 커다란 모순 바위덩어리로 다가왔을 것이다. 올곧고 강직한 부친의 피를 받은 그에게 시대는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평과 이율배반적 현실, 미래를 예견할 수 없는 불안함 등은 그는 물론 모든 민중에게는 일그러진 고통스러운 일상의 반복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 젊은 예술가의 출구는 고단하고 어려운 삶이겠지만 오로지 작품제작으로 어려운 현실과 정면대결로 극복해야 만했다.
이렇게 그는 500나한으로 시대의 깨어있는 민중을 제작한다. 인물상은 세련돼 있거나 잘생긴 인물상이 아니다. 모두가 남도적 미감과 정서를 담아내는 고즈넉하면서 투박한 손맛의 인물상이다. 운주사(화순군·김희상 작업실 인근)의 불상의 고졸미가 느껴지듯 남도적 자연관을 바탕한 그의 예술은 작품에 서정성까지도 자신도 모르게 불 속에서 녹여내고 있었다.
모두가 김희상의 일상을 통해 자주 만나는 그러한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 나한상이 돼가고 있었다. 그의 예술의 뿌리는 5월 광주에 두고 그 뿌리를 통해 얻어지는 자양분은 흙이 돼 울고, 웃고, 화내고, 고통받는 다양한 표정으로 민중의 삶을 통한 ‘희로애락’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유약은 사용하지 않고 거칠게 투박한 그의 손끝을 통해 하나하나를 전통 가마에 구어 제작했다. 그래서 나한상은 하나도 같은 표정이 없다. 어찌 보자면 우직스러운 일이겠으나 그는 이렇게 현재까지 180여개의 나한상을 제작했다.
김희상은 우리시대의 평범한 민중은 무한경쟁 구조에 현실과의 괘리감과 불안, 끊임없는 욕구와 탐욕 등 어쩌면 이러한 현실로부터 자기해방을 매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한경쟁의 사회구조에서 노력해도 이룩할 수 없는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소망일 것이다. 그는 작품에 등장되는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 이 시대의 진정한 주인인 나한상들을 ‘5월 광주’의 흙으로 빚어 그의 정성과 열정, 자연주의적 예술관으로 구워내고 있다. 깨어있는 5월의 민중인 나한상은 시대를 움직이고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자여야 함을 그는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그리고 500나한을 마치면 ‘광주피에타’ 제작을 준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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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약력
▶(1964년생, 나주 출생)
▶호남대학교 미술과 졸업
▶개인전 6회(2001 - 2018/서울, 광주)
▶단체 초대전
2020 애국지사 성동준(3대 전남도교육감) 흉상제작, 2019 저항과 기억(나주, 나빌레라문화센터), 오월 미술전(광주, 은암미술관), 2018 4인4색전(광주, 광주시립 금남분관), 2016 제주 4·3 미술제 ‘새드림-공감전(제주 도립미술관), 2015 민주인권평화전‘아빠의 청춘(광주시립미술관), 2009 국제도예교류전(중국, 장춘) 등 다수
▶작품소장처 : 광주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