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냐고 더는 묻지는 말아 주시길 바라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95) |
| 2020년 12월 08일(화) 1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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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일연
나를 비는 것 길을 잃음 아니나니
높으신 스님이 인도하기 위함이라
청함을 거절치 말고 누구냐 묻지 마오.
乞宿非迷路 尊師欲指津
걸숙비미로 존사욕지진
願惟從我請 且莫問何人
원유종아청 차막문하인
늦은 밤에 북쪽 암자(北庵)에 낭자가 찾아와 하룻저녁 묵기를 청했다. 불도를 닦고 있던 ‘달달박박’은 일시에 거절했다. “이곳은 청정한 곳이라 여인을 들일 수 없소”라면서 문을 닫았다. 낭자는 할 수 없이 남쪽 암자(南庵)에서 불도의 공에 열중한 ‘노힐부득’을 찾았다. 앞에서와 같이 하룻저녁 잠자리를 청하면서 다른 ‘게’偈(=誦)를 올렸다. 보다 더욱 간절하고도 깊은 뜻이 담겨진 낭자의 정성이 담긴 오언율시 노래로 읊었던 후구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누구냐고 더는 묻지는 말아 주시길 바라오(娘子之偈2)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후구인 오언율시다.
작가는[3권 4부 外 참조] 일연(一然:1206-1289)으로 고려 중기의 승려·학자이다. 1236년 삼중대사의 승계를 받았고, 1246년 선사의 법계를 받았다. 1249년 정림사에 머물며 남해의 분사대장도감 작업에 약 3년간 참여했다. 1256년 길상암에 머물었고, 1259년 대선사의 승계를 제수 받았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잠자리 비는 것은 길을 잃은 때문 아니오 / 높은 스님 나를 인도하기 위함이오 // 바라옵건대 내 청을 거절 말고 들어주시고 / 누구냐고 더는 묻지는 말아 주시길 바라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낭자가 드리는 게송2] 으로 번역된다. 잠자리의 마련을 간곡히 요망하는 낭자는 늦은 밤이지만 꼭 들어줄 것을 청한다. 전구에서는 해 저문 첩첩한 산 그 산길을 가는데, 가도 가도 사방에는 인가가 끊어졌다오. 대나무와 소나무 그늘은 더욱 깊어가고 있으니, 골짜기의 냇물소리 더욱 새롭게 들려온다고 했다. 선경의 시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시인은 전구에 이어 재차 시적상관자인 노힐부득에게 간곡한 청을 드린다. 잠자리 마련을 바라는 것은 길을 잃은 때문 아닐지니 높은 스님이 나를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자기 소신을 밝힌다.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이곳을 찾았을 것이라는 자기 소신을 밝히고 있다. 높은 스님을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시상으로 보아 범상한 여인이 아니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화자는 더 노골적인 자기 의지를 표현하는 후정의 시문 속에 궁금증과 긴장감을 더하게 된다. 바라옵건대 낭자의 청을 거절 말고 들어주시고, ‘누구냐?’고 더는 묻지 말아 주시기를 바라는 간곡함을 청한다. 시상의 전개과정이 독자의 의식을 사로잡는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한자와 어구
乞宿: 잠자리를 빌다. 잠잘 곳. 非迷路: 길을 잃다. 尊師: 높은 스승. 欲指津: 나를 인도하고자 함이다. // 願惟: 오직 바라옵건대. 從我請: 나의 청을 들어주다. 且莫: 또한 ～하지 말다. 問何人: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곧 앞과 연결한 연구의 뜻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묻지 말라.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