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40주년기념 큐레이터 장경화 '오월의 미학'](18)방정아

‘서사적 기법’으로 시대의 리얼리티를 담다

2020년 12월 22일(화) 17:18
방정아는 부산에서 사업을 했던 부친의 1남1녀의 장녀로 출생한다. 모친은 학창시절부터 화가의 꿈을 꾸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녀가 초등학교 3학년 퇴직을 하며 집안 거실에 그림 그리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토·일요일은 그림동호회 활동에 열중했다. 그러한 집안 분위기는 유화물감 냄새가 익숙하게 됐고 모친이 즐겨보는 화집 중 특히 국전도록을 외울 정도로 유명한 화가의 그림과 이름을 익히고 있었다. 이러한 영향은 중학교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미술학원 다니면서 일찍부터 석고데생을 수 없이 반복했다.

방 작가는 80년대 이후 민중미술 1, 2세대와는 달리 3세대로 비판적 시각과 미학적 서술방식에 차이가 있다. 그녀는 90년대 가속화된 경제발전과 자유주의 사회체계, 자본주의 이념을 무분별하게 흡수를 강요받았던 세대로 성장과정의 사회·문화적 환경차이 일 것이다. 대학시절을 ‘6·10민주항쟁’과 함께 시작하면서 비판적 시각과 리얼리즘 예술이론을 스스로 무장하고 시위에 참여도 했다. 또한 구로동에 거처를 마련하고 노동여성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리얼리즘 예술을 출발시켰다. 기층민중의 삶을 은유적이고 서사적 기법으로 자아의 깊은 내면을 초현실적 기법으로 ‘평화와 생명’ 운동의 리얼리즘 미학을 진화시켜가고 있다.


▶‘6·10민주항쟁’으로 ‘구로동’을 해명하다.
초등학교 5학년 방정아는 ‘광주민주항쟁’(1980)으로 통금시간을 넘긴 부친의 귀가를 걱정하며 대문 앞 골목에서 발을 동동 굴렸던 기억과 ‘폭도에 의해 난리가 났다’는 뉴스에 부모님은 “저건 전두환의 쇼”라는 말이 기억에 남겨져 있다. 그러나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 몇 분은 현 정권을 비판하는 야당(김대중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성향이었기에 당시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초등학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6·10민주항쟁’(1987)을 목도한 방 작가는 대학 1학년이었다. 학내는 어수선했고 수업은 단색화풍 성향의 일방적이고 소홀한 강의로 실망스러웠다. 교육과정과 교수법 등 학사운영에 대한 실망스러움과 반발심, 우리사회 모순과 반복, 군부독제 권력의 부당함은 그를 매일 거리로 이끌었다. 같은 시기 그렇게 목말라하던 미학과 미술사 등 미술이론 공부를 하면서 학과생과 ‘미학스터디그룹’ 결성한다. 그리고 인문사회학 서적에 관심과 독학의 시간은 그동안 쌓아왔던 반공의식이 허망하게 무너짐을 확인하면서 민중미술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전통에 대한 관심은 학과 내의 풍물패 활동으로 이어져 상쇠를 맡아 시위현장의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다. 타고난 음감과 리듬감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업만을 수강하고 민중화가로서 갖춰야 할 시대와 역사를 익히고 깨어있는 화가로의 소양과 지식, 미학의 아우라를 구축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학3학년(1989), 서울지역 미술대학 학생연합회 활동은 민미련(민족미술)과 함께 ‘민족해방운동사’(민해운사) 공동 제작과 서울지역 미술대학생연합 토론과 시위현장에 사용될 걸개그림 공동제작에 참여했다. 이때 공동 제작한 ‘민족해방운동사’ 전작(11점) 슬라이드는 ‘임수경’에 의해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1989)에 전달됐다. 이 시기 거의 매일 가두집회에 적극적 참여하는 일상 속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이론적 무장을 위한 공부에 매진했다.(이후 민해운사 전작은 압수· 소각됐고 주도했던 동료화가는 수사당국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뤘다.)

졸업이후 서울 구로동에서 약 1년간(1991)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거주했던 그 곳에 사는 노동여성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구로동은 ‘YH무역농성사건’(1979)의 중심지역으로 그녀는 경험하지 못했으나 구전과 자료를 통해 인지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여성노동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을 겸한 작품의 소재를 얻고자 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침 버스를 기다리는 구로공단 여성들’ 85 ×115㎝(1991)

작품 ‘아침버스를 기다리는 구로공단의 여성들’(1991)은 이른 추운 겨울 새벽 출근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구로공단의 여성을 그린 작품이다. 추운 겨울 새벽시간 그녀들은 입과 코에 서린 호흡은 추위와 피곤함을 휘발시키는 중년여성의 모습을 캔버스에 가득 채워 건강함과 강인함이 읽혀진다. 작품은 대학졸업 직후 신진작가 초기에 그린 아카데믹한 어법의 성실함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6월 민주항쟁’에서 출발된 비판의식은 노동여성의 일상적 모습을 사회주의 리얼리즘 방식으로 해명시켰다. 당시 운동권에서는 사회주의(중국, 러시아 등) 화집을 접했을 것이며, 인물을 그리는 방식에 대한 학습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사회주의 방식의 인물과 화면구성으로 읽혀진다.

부친의 운명으로 점차가세가 어려워져 방 작가는 가장의 역할과 지역미술운동에 헌신을 위해 부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입시미술학원을 한동안 운영한다.


▶서사적 리얼리티와 형상력의 확장
90년대에 접어들어 자유주의 무한경쟁 사회체계에서 압축적인 경제발전과 고통을 강요받는 IMF를 거치면서 한국미술계는 서구의 형식미학의 굳건함 속에서 자본논리와 이념의 흡수를 강요받고 미술시장은 그 흐름에 민감한 반응을 하고 있었다.

방 작가는 ‘6·10민주항쟁’ 세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을 독학으로 학습했다. 그리고 90년대의 환경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미술시장과 타협을 불허하며 독자적 방식의 민중미학을 더욱 가속화 시켜간다. 작품에 변화를 이끌어내어 성과를 올린 전시는 두 번째 개인초대전(1996)으로 과거와는 달리 전반적으로 밝아지고 경쾌해졌다. 특히 인물은 보다 서사적 리얼리티의 구체성 확보와 주변배경은 밝아지고 상황 설명은 은유적이다. 그럼 방 작가의 서사성은 어떻게 읽혀지고 있는가?

그녀는 학생시절부터 독서를 즐겨했으며 다독을 했다. 특히 대학시절부터 시집을 즐겨 읽고 있고 현재도 작품제작에 앞서 시집을 읽고 있다. 시를 통한 문학적 상상력은 회화적 공간감을 확장시키는 요소로 작용되고 정화된 감정이입과 풍부한 문학적 감성은 시각적 서사성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일상적 삶의 순간을 무수한 함축된 이야기로 담아 전개되고 관람자에게 그 삶에 관조와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바라보는 대상의 지나친 감정 이입과 상상력의 경계를 위한 건조한 방식으로 리얼리티와 객관성 확보를 하고자 한다.
‘급한 목욕’ 97 × 145.5㎝(1994)

‘급한 목욕’(1994)은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당해오던 여자가 온 몸에 피멍을 감추려고 목욕탕 문 닫기 직전, 마지막 손님으로 목욕하는 풍경’이다. 결국은 남편을 살해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방 작가는 폭력을 당해오던 여성과 같은 여성으로 동일한 입장에서 감정이입 된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결코 지나친 상상력과 감정을 경계하고 상황의 객관성과 서사성을 위한 노력은 작품의 전반에서 읽혀지고 있다. 특히 피해여성의 표정과 몸의 붓 자국, 청소하는 여성과 물을 뺀 욕조를 등장시킴으로 객관적 상황설명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읽혀져 서사적 리얼리티를 강조시키고 있다. 3-4년 전, 구로동 시절의 작품은 인물중심이었으나 ‘급한 목욕’은 붓의 움직임에 섬세함, 정제된 창의력, 주제에 대한 형상력이 돋보인다. 그녀의 나이 25세에 제작한 작품이다.
‘집 나온 여자’ 60.6 × 72.7㎝ (1996)

‘집나온 여자’(1996)는 아이를 등에 업은 여성은 바람 부는 늦은 밤 길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오뎅으로 요기를 달래고 있다. 화장기도 없이 분노에 찬 얼굴, 오뎅을 바라보는 눈과 먹는 입이 강조되어 보인다. 까칠하고 억척스러운 달동네의 아줌마라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생각된다. 이렇듯 작품은 명제에서 읽혀지듯 마치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것처럼 상황설명의 순간포착은 서사적 리얼리티 어법으로 그녀만의 독특한 재치가 숨겨져 있다. 더불어 거친 붓의 움직임에서 높은 회화성과 함께 따뜻한 인간미가 포착되고 있다.

90년대 들어와 짧은 시간에 작품은 리얼리티를 담아내는 형상력의 확장과 더불어 소설의 한 장면처럼 읽혀지는 서사적 재치를 담아내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회화에 자신감과 함께 그만큼 충실한 드로잉, 풍부한 예술적 상상력과 다작을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결국 ‘예술의 질은 다작이 결정한다’는 교훈이 기억난다.


▶초현실성과 ‘평화와 생명’ 운동으로

방 작가는 금호미술관 초대전(1999)을 통해 주목받는 청년작가로 급부상 이후 오랫동안 정치·사회적 이슈중심으로 활동해왔던 민중미술의 편협성과 동일한 양식 그리고 리얼리티를 추출하는 미학적 관점에 대한 피로감이 축척되고 있었다. 그녀는 점차 현대미술의 다양한 양식의 도입으로 자기예술의 확장성을 꾀하고자 한다. 그동안 축척된 리얼리티의 미학적 관점에 양식의 다양성을 실험한다. 이는 뜨겁게 민중미술에 투신했던 선배세대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점의 진화를 의미이다. 정형화된 갑갑한 평면의 이미지를 공간으로 끄집어 내놓고자는 실험과 함께 가변설치 작품을 제작한다.
‘예술가들’ 165 × 259㎝ (2010)

‘예술가들’(2010)은 가변설치 작품이다. 작품은 유흥가의 여성이 화려한 공간을 지나면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고 코너를 돌았으나 기다리는 것은 낯선 천장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유흥가의 여인을 통해 예술가를 유흥가 여인처럼 영혼을 파는 행위처럼 여긴 절망감이 엿보인다. 캔버스는 비정형으로 가변적 설치를 가능하게 제작됐다. 2000년대 들어와 과거작품과 또 다른 양상의 형상성을 드러낸다. 그녀만의 독특한 서사적 재치는 대상의 본질적 접근을 위한 기층민 여성에 대한 애정과 위로의 언어에 담아놓았다.
‘샴 쌍둥이’ 60.6 × 90.9㎝(2012)

‘샴 쌍둥이’(2012)는 ‘두 여인이 같이 붙어 떨어지지 않고 밀어내고 싶지만 곧 그리워 질 것’이라는 단조로운 구성의 작품이다. 여인은 얼굴과 몸이 서로 붙어있고 화면중심에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주변 배경은 단색조의 가벼운 드로잉 선이 있다. 작품은 방 작가의 내면에 짙게 드리워져 또 다른 자아를 바라보는 초현실성이 담겨져 있다. 드로잉 선은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미하게 단조로운 화면에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자아의 깊은 내면의 리얼리티를 끄집어 내놓은 것이다.

‘원전에 파묻혀 살고 있군요’(2017)는 월성과 고리원전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원전의 근거리에 위치해 있는 황혼의 죽음의 바다는 잿빛의 어두운 그림자를 그 위에 있는 좀비는 머지않은 우리의 미래임을 경고하고 있다. 동시대는 물론 미래세대와 인류생존에 관한 지구촌의 문제를 밝히고 있다. 원전과 가까운 지역에 거주하는 그녀로는 보다 심각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인류적 관점으로 제작하였다.

방 작가는 최근 들어 2가지의 예술적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대상의 시간성과 본질적 접근을 위한 초현주의(Surrealisme)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뿐 아니라 바라보는 대상의 또 다른 리얼리티에 새로운 접근하는 방식이다. 마치 습작하듯 가벼운 드로잉적 기법으로 불확실성, 시간성과 공간성, 사회적 위기와 불공정, 기층민의 고달픈 삶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가벼움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민중미술은 정치적 문제에서 노동, 환경, 사회 등 전위를 끝없이 연장에 ‘핵몽’이라는 새로운 그룹운동을 통해 리얼리즘의 양식을 발전시켜가고 있다. 그녀는 수년전부터 ‘평화와 생명’을 주제로 민중미술의 새로운 주제로 전위시켜가고 있었으며, ‘핵몽’역시 그러한 연장선에서 함께하고 있다. 이렇듯 방작가의 예술적 진화는 오늘도 달동네에 마련한 비좁은 작업실에서 시집을 통한 문학적이고 서사적인 상상력을 회화적 리얼리티로 확장시켜가고 있다.


▶방정아(1968, 부산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동서대학교 디자인 전문대학원졸업
▶개인전 ; 2019 부산시립미술관 외 23회(서울, 부산, 대구 등)
▶단체초대전
2020 ‘핵몽3’, 2019 ‘화가의 책’(로봇프로이트, 부산), 2018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국립아시아전당, 광주), ‘핵몽2’(부산민주공원/광주은암미술관), 2017 한-미얀마 현대미술교류전(뉴 테스르갤러리, 미얀마), ‘아름다운 절 미황사’(학고재 갤러리, 서울), 2015 ‘KOREA ART'(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일본) 외 국내외 초대전 100여회
▶수상 : 하정웅미술상, 제13회 부산청년미술상
▶소장처 :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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