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푸른 내 뜰을 더는 더럽히지 마시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97)

2020년 12월 22일(화) 17:18

讚北庵大師(찬북암대사4)
삼국유사 일연

그윽한 바위 앞에 문 두드리는 그 소리
그 뉘가 날 저문데 구름 빗장 두드리나
남쪽에 이끼 푸른 내 더럽히지 마시라.
滴翠 前剝啄聲 何人日暮 雲
적취암전박탁성 하인일모구운경
南庵且近宜尋去 莫踏蒼苔汚我庭
남암차근의심거 막답창태오아정


노힐부득의 정성으로 해산(解産)한 낭자는 어려운 일을 또 부탁한다. 발가벗은 여인의 몸에 손을 대 목욕 시켜주기를 청하게 된다. 이것까지도 거절하지 못한 노힐부득은 더운 물로 낭자의 몸을 정성껏 씻어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목욕하는 통 속의 물이 갑자기 황금액(黃金液)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식을 들은 북암(北庵)에서 염불하던 달달박박을 엉뚱하게 찬(讚)하며 읊은 일연선사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이끼 푸른 내 뜰을 더는 더럽히지 마시오(讚北庵大師4)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삼국유사를 남긴 일연(一然:1206-1289)으로 선사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그윽한 바위 앞에 문을 두드리는 그 소리 들려오고 / 그 뉘가 날이 저문데 구름 빗장 두드리나 // 남쪽에 암자가 여기서 가까우니 찾아가 보오 / 이끼 푸른 내 뜰을 더는 더럽히지 마시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북암 대사를 찬하는 노래4]로 번역된다. 부처의 신비로운 뜻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낭자의 청을 거절하고 불도의 기도에 전념하였던 달달박박의 깊은 뜻은 높은 부처의 뜻에 닿았을 것이다. 시인은 이를 더 이상은 덮어두지 못했음을 알게 한다. 독실한 불심이 몸을 담은 두 선사의 청경(靑莖)한 불심에 감복했을 것이다.

시인은 아닌 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인기척의 소리가 났지만, 반갑게 맞이하기는 커녕 오히려 퉁명스럽게 문을 닫는 비정함까지 나타내 보임에 따라 미타를 염불하는 독실함을 보인다. 그윽한 바위 앞에 문 두드리는 그 소리가 들리니 ‘그 뉘가 날 저문데 구름 빗장 두드리나’라고 했음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100일 기도에 심취했음을 보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다시 퉁명스럽게 북암보다는 남암의 노힐부득 쪽을 찾아보라는 작은 가이던스를 한다. 남쪽에 암자가 여기서는 매우 가까우니 거리를 찾아가 보라고 하면서 [이끼 푸른 내 뜰일랑 더는 더럽히지 마시오] 분명한 자기 소신을 밝힌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정함까지 내비친 모습을 본다.

※한자와 어구

滴翠 前: 그윽한 바위 앞에. 剝啄聲: 문을 두드리다. 何人: 어떤 사람인가. 日暮: 날이 저물다. 雲 : 구름 빗장을 두드리다. // 南庵: 남쪽 암자. 且近: 또한 가깝다. 宜尋去: 마땅히 찾아 가다. 莫踏: 밟지 말라. 蒼苔: 푸른 이끼. 汚我庭: 내 뜰을 더럽히지 말라.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