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경계를 넘어 / 강동완

2020년 12월 29일(화) 17:49

강동완 前 조선대학교 총장

역사의 거울 속에서 내 인생의 5·18은 부끄러움이었다. 민주화를 향한 청년과 대학생들의 열망이 폭발하는 시기에 필자는 치과병원에서 인턴 생활 중이었다. 1980년 4월 어느 날 선후배 간 폭력행위에 대해 1회 선배로서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본과 4학년부터 본과 1학년까지 소위 ‘줄 기합’이라고 하는 무지한 결정을 내리고 실행해 버렸다. 단체 책임이라는 명분으로 구타행위를 당한 후배들이 다음날 ‘폭력 인턴 물러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걸고 조대병원 앞에서 시위를 하였던 때가 1980년 5월 초였다.

학교 당국의 책임 규명과 사과 차원에서 치과병원 전 인턴들이 사표를 제출했으나 대표자였던 필자만 사표 수리되었다. 사표 수리 후 지도 교수께서는 도청 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군대 다녀온 후 다시 병원에서 공부하도록 배려하겠다”며 위로하였다. 그 다음 해 1월까지 8개월 정도 허송세월 후 1981년 2월에 군의관으로 입대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5·18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에서 개인과 공동체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격동의 시기에 나의 사표 수리도 유야 무야 되었지만 간디가 이야기한 ‘비폭력은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광주 시민 중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기꺼이 바치는 신념을 갖고 두려움 없이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도 있고, 응원하는 공동체도 있었다. 그러나 5일간의 광주 해방구에서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에 참여는 했지만 폭력에 저항하지 못한 나를 포함한 많은 지식인들은 나약했고 그것은 역사에 대한 채무의식으로 남게 되었다.

1970년대 지식인 중심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서 잉태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1980년 민중 민주화운동의 시발이 되었고, 6월 항쟁의 정신적 힘이었으며,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화를 추동하는 시대정신이다. 광주는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5·18이 불혹의 나이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역사에 대한 진실 규명은 아직도 매우 미흡하다. 늦게나마 전문가들에 의한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했으니 진실을 기대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상처에 대한 치유와 공유가 절실하다.

그러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본질적 순수성이 왜곡당하지 않도록 5·18을 광주라는 특정 공간과 특정 관계자들의 경계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성별, 연령, 종교, 빈부, 나라에 의해 차별당하지 않는 민주·인권·평화라는 가치 정신에 의한 실천적 삶과 인간의 존엄성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열린 사유와 도전이 필요하다.

1960년대 베트남 반전 운동과 평화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는 히피와 평화주의자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히피 청년세대는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며 인간성 회복, 자연에의 귀의 등을 위한 도덕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성, 전쟁보다는 평화, 이성보다는 자유로운 공감을 중시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가치 공동체 문화를 건설하려 했다.

당시에 공동체 생활을 지향하는 ‘히피’를 위해 1968년 30세의 스튜어트 브랜드는 ‘자급자족, 생태학, 직접 수행(Do It Yourself; DIY) 및 전체화’를 위한 <전지구 백과사전>을 발간한다. 1974년판 <전지구 백과사전> 뒷면에는 ‘Stay hungry, Stay foolish’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 문구는 애플사를 창업한 스티브 잡스의 정신이 되었다.

스튜어트 브랜드는 1995년 3월1일 Time지에 ‘우리는 모두 히피에게 빚을 졌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1960년대 세대의 히피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가 남긴 진정한 유산은 컴퓨터 혁명이다”라고 밝혔다.

히피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유와 공생, 공유와 개방의 문화를 존중하며 ‘더 나은 세계’, ‘하나로 연결된 세계’라는 새로운 공동체 가치관을 상상했던 것이다. 이런 상상력과 열망은 21세기 IT 혁명의 바탕이 됐고, 애플,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에 의한 실리콘밸리 신화를 만들어냈다.

지금 광주는 디지털 문명시대와 코로나 팬데믹을 맞이하여 건강에 대한 불안과 경제적 혼란을 겪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에서 꽃 피운 민주·인권·평화 정신이 광주를 미래 가치를 지닌 역동적인 도시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 까? 민주정신을 지닌 광주와 히피 정신을 지닌 샌프란시스코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 것인가?

하나의 정답은 없지만 인문정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분야의 혁신적 도시문화 구축, 창의적 개념의 도시문화에 의한 도시과학의 부흥과 부와 권력, 명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시민 행동을 위한 도시교육이 필요하다.

이것이 역동적인 청년문화의 기반이 되어 인공지능(AI)를 기반으로 한 광주의 문명도시 신화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