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봄 길이 되려면 / 최형천

2021년 01월 03일(일) 17:43

최형천 ㈜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벌써부터 봄이 기다려진다. 그래도 봄이 되면 이젠 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로 모두 이 겨울을 견뎌내고 있다. 이제 우리가 맞을 봄은 진정 새로운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이 어렵기 때문에 당연히 지난날이 그립고 돌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익숙한 과거로 회귀는 쉽지 않아 보이고, 더구나 과거의 표준 가운데 많은 부분은 이미 용도가 폐기되어 버렸다. 출퇴근, 등교, 집합 예배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고, 매장 없는 배달전문 음식점이 더 잘 되기도 하는 뉴노멀 시대가 열렸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여 새 봄을 맞을 준비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우선 나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돌아보니 우린 정말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줄기차게 앞만 보며 열심히 내달렸다. 오로지 경제 성장만이 유일한 잣대가 되어 치열한 경쟁에 휘말린 인류는 단 한방에 미생물에 불과한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그들에게 놀아나고 있다. 세계화, 자유여행, 현대도시 등 인간이 자랑스럽게 쌓아놓은 자본 문명이 오히려 바이러스의 고속통행로가 되었다. 잠시 멈춰선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은 자기성찰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이제는 더 이상 많은 정보를 탐하지 말자. 그보다는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를 식별할 줄 아는 능력이 더 긴요하다. 코로나19사태가 장기화됨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유지된 것은 헌신적으로 일해 온 의료, 돌봄, 택배, 청소 등 필수업종 종사자의 노고 덕분이었다. 그간 우리사회는 이들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너무 외면해 왔다. 이런 직종을 필수업종으로 지정하고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있는 바람직한 변화로 여겨진다.

내친 김에 펜데믹으로 인해 드러난 사실 중 몇 가지를 더 살펴보자. 국민의 기본 생활을 지탱해 주어야할 보건, 의료, 복지제도가 어느 사이에 일종의 서비스산업이 되어 돈벌이 수단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렇게 되면 부담은 갈수록 늘어나지만 삶의 질은 더 나빠지게 된다. 일자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일이 없어서 가난한 게 아니라 일은 하지만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갈수록 늘어만 간다. 이제는 단순히 일자리를 늘려서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단선 사고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책 전환이 요청된다.

또한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큰 나라의 정치인들이 보여준 모습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인류 전체를 구원하는 빅 픽처를 그리지 못하고 겨우 국경폐쇄로 대응하며 각자도생 외에는 별다른 대응책을 내지 못하여 죄 없는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행태를 보면서 민주정치제도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마치 흑사병 시절 중세처럼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로 시간만 낭비할 때는 정말 암울해지기까지 하였다. 인터넷 발달로 개인의 정치의사를 직접 개진할 기회가 많아졌지만, 아직도 대리인을 통한 대의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풍부한 정치 상상력을 가진 지도자를 가려 뽑는 일은 여전히 중요함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이처럼 우리사회의 기초가 되었던 시스템과 믿음에 대한 재검토와 더불어 내 삶의 의미를 찾고, 낯선 상황에서도 정신적 균형을 잃지 않는 회복력을 갖추는 것이 내면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다.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일, 또한 자신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탐구해야 한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면 기술이 우리를 조종할 가능성이 높은 시대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래에 대해 짜여 진 각본은 아직 없다. 의미 있는 미래를 창조할 소명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연대하여 스스로 봄 길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시련이 희망의 꽃으로 피어날 봄날을 만들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