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몇 마디 - 김종시인

2021년 01월 04일(월) 19:27

▲이른 봄 양지바른 풀밭에서 이파리 사이로 긴 꽃줄기 끝에 수줍은 듯 보라색 고개를 숙인 꽃, <제비꽃>이다. 별똥별에서 툭 떨어진 붉은 피 한 방울 같은 꽃에서 시인은 긴긴 겨울밤에 바느질하던 선녀님이 그만 바늘 끝에 손가락이 찔려 솟은 피 한 방울을 발견한다.

동화작가의 손에서 빚어진 <제비꽃>은 짧지만 직절하고 앙증맞다. 김목 시인은 이 나라 아동문학계에서 괄목상대한 동화작가이며 이미 본격동화의 개척자라해도 좋을 만큼 창작동화에서 거둔 공이 크다. 필자는 40년도 넘은 세월에 읽었던 <날개달린 장사>의 감동을 지금껏 잊지 못한다.


▲“가을이면 길섶에 이리저리 뒤척이며/시간만을 헤이는 버려진 말들”을 읽으며 우리는 “불현듯 일어오는 쌀쌀한 가을바람”에 날리는 은행잎의 군무를 감상하고 있다. 가을이면 낙엽 되어 흩어지는 은행잎을 보고 우리가 어디에서 저리 많은 말들을 발에 채일 만큼 쏟아냈고 밟고 다녀야 하는지.

“울창한 신록의 노래로”부터 수확이 알찬 결실의 계절에 심장의 판막은 늘어지게 열리고 떨어진 순환의 끝점에 자양분이 되고 이듬해에 다시금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온다는 자연 순환의 질서를 은행잎에 담아서 노래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이 새삼스럽지도 않은 요즈음이다. 그러나 당연하게 스치는 먼 나라의 신부들이 우리에게는 이방인이고 그들에게도 우리가 이방인이다. 마음을 열면 몸이 열리고 언어도 열릴 거라며 사랑 하나만 믿고 혈혈단신 떠나왔을 고국의 바다 건너 고향은 그래서 더더욱 그립다. 웃음은 만국의 공통언어.

그 언어로도 허당에 빠진 듯 가슴에는 자갈과 모래만 쌓여가고 마음은 허허롭기만 하다. 본인 모습 그대로 진짜 소속감을 느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갈 것인데도 건드리기만 해도 텅 빈 가슴엔 소나기처럼 눈물만 쏟아지고, 그래도 “이국적인 상품의 최적화는 웃음이라서.” <아마릴리스>! 세련된 언어에 느낌이 깊다.


▲수필 <솟대의 꿈>은 화단 가장자리의 소나무와 능수단풍 사이에 세운 어린이 키만한 솟대를 통해 작가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기름과 화목 양용의 보일러를 설치하고 벌목과 가지치기한 나무들로 난방을 하리라 마음먹었건만 지천인 나무는 운반이 쉽지를 않아 난감하던 차 지인으로부터 받아온 잡목들 틈에 새를 머리에 인 솟대를 추려 집 마당에 세웠다.

눈 내린 아침, 솟대는 눈을 이고 바람과 구름과 하늘을 향해 손짓하는 모습으로 낮에는 새들과 얘기를 나누고 밤이면 별들과 은밀하게 꿈 얘기를 속삭이는 모습에서 윤소천 작가의 자화상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