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나는 몇 점일까? / 주홍 |
| 2021년 02월 04일(목) 1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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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질문을 했다. “넌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백점만점에 몇 점이라고 생각해?” 바로 튀어나온 답은 “95점요!” “우와! 95점이라구?” “너의 학교성적이나 인성, 외모, 내면…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95점을 준거야?” 거침없는 대답이다. “네!” “그럼, 100점에서 5점은 왜 깎았니?” “학교 공부 부분에서 5점을 양심상 뺀 거죠.” 학교성적을 생각해보니, 참 긍정적이다. 딸의 점수가 궁금했다.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온 딸은 자신에게 몇 점을 줄까? 전화를 했다.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라고 생각해?” “비교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100점이죠!” “우와!” 감탄만 나왔다. 이 점수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주관적인 점수다. 청소년 아들의 자신에 대한 점수 95점도 놀랍고, 딸의 100점은 더욱 놀라웠다. 자기가 하는 주관적인 평가는 자존감과 만족도, 행복감을 말해준다.
자, 이번엔 남편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인가요?” “75점.” “왜 25점을 깎았어요?” “100점이면 완벽하니까 인간이 아니라 신이죠.” 우리는 25점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다가 대화가 깊어졌고, 가장 원하는 자신의 모습과 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행복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게 됐다.
몇 년 전, 청소년 과학 영재들만을 대상으로 영재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한 자화상’ 그리기 프로그램이었다. 수식어를 붙인 자화상 그림 중, 출렁이는 바다 한 가운데 무인도에서 나무에 매달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 사람을 그린 친구가 있었다. 국어는 물론, 과학, 수학, 영어를 뛰어나게 잘해서 지역 대표 장학생으로 해외연수까지 다녀온 학생이었다. 그런데 그림에 드러난 심리 상태는 위험해 보였고, 자존감은 너무 낮았다. 말이 빠르고 질문에 답이 즉각적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먼저 문제에 답을 말할까봐 불안해하며 손을 들지 않고 답부터 말하는 학생이었다. 다른 친구가 답을 먼저 말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아이의 모든 스케줄은 엄마가 짜 주었고, 휴일조차 영재교육 프로그램으로 일정이 촘촘하게 짜여져 있었다. “넌 못하는 게 없구나! 어쩜 이렇게 빨리 문제에 답을 찾을 수가 있어? 놀랍다!”라고 말을 걸었을 때 “저 못하는 거 많아요. 학교에 가면 저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도 있고, 제 동생은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어요.” “너는?” “저는 전교 2등이거든요.” “넌 자신이 너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야?” “10점!” “넌 거의 전 과목이 100점인데 10점이라니…”
밖에서 남이 평가하는 점수는 100점인데,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점수는 10점인 그 학생은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함께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과 명상을 통해서 점점 자신이 평가하는 주관적인 평가가 높아졌고 자존감이 올라갔다. 그런데 집에 가면 동생과 비교하는 엄마의 잔소리에 다시 자존감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가혹한 영재학습 스케줄과 입시준비의 시간표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은 미술은 필요가 없었고, 나는 더 이상 그 학생을 만날 수 없었다. 그 친구의 장래희망은 의과대학에 진학하거나 카이스트에 진학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분명히 이루었을 것이다. 지금 행복할까?
자존감이 높아지면 자존심이 사라진다. 나는 스스로에게 몇 점을 줄까? 내가 나에게 주는 점수인데 100점을 주고 하루를 시작해 보자. 그러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럴 수 있어요.’ ‘그렇군요.’하며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