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새벽녘엔 서쪽으로 넘다가 남은 달빛에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06)

2021년 03월 02일(화) 19:00

夜坐示衆(야좌시중)
진각 혜심

소나무가 솔바람에 솔솔 읊조리고
낙숫물이 졸졸 돌 위에 떨어지는데
새벽녘 남은 달빛에 두견새 울어대네.
吟風松瑟瑟 落石水潺潺
음풍송슬슬 낙석수잔잔
況復殘月曉 子規淸叫山
황부잔월효 자규청규산


한 밤 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 경우가 많다. 친지와 앉아 있으면서 정담을 나눴던 생각하며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을 좌담으로 풀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자연과 대화면서 풀어버리는 수가 더 많았다. 울어대는 금수가 그 마음을 달래줬고 무럭무럭 자라는 화초가 그 위로를 다 해주는 경우라 하겠다. 소나무는 솔솔 가벼운 바람을 읊어내고, 졸졸 낙숫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게다가 새벽녘엔 서쪽으로 넘다가 남은 달빛에(夜坐示衆)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무의자(無倚子) 진각 혜심(眞覺 慧諶·1178-1234)으로 고려 후기의 승려다. 1212년 강종이 수선사를 증축시키고 불법을 구하므로 ‘심요’를 지어 올렸다 한다. 고종은 왕위에 올라 그에게 선사에 이어, 대선사를 제수했으며, 1220년(고종 7) 단속사 주지로 명하기도 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소나무는 솔솔 바람을 읊어내고 / 졸졸 낙숫물이 떨어지는 소리 들리네 // 게다가 새벽녘엔 서쪽으로 넘다가 남은 달빛에 / 두견새가 해맑게 산에서 울고 있다네]라는 한 덩이 이상이다.

위 시제는 [밤중에 앉아 여러 가지를 보며]로 번역된다. 무의자는 생활관이나 불심은 남달랐다. 지관, 정혜쌍수가 간화일문에 포함된다고 함은 그의 독특한 견해를 말해 준다. 그는 “망상을 버리고자 하면 간화만한 것이 없다”고 했으며, 선수행에서의 간화일문에 의한 실참실오(實參實悟)를 강조했다. 그는 유학에도 통하여 유불(儒佛)이 다를 바 없다고도 했다. 이런 독특한 사상이었음을 생각하면 시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겠다.

시인은 선경의 시상에서 쉽게 물러서지 못한 태세를 보인다. 소나무는 솔솔 바람을 읊어내고, 졸졸 낙숫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자연에 취하면서 읽어내게 된다. 소나무를 보더니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까지 듣게 된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무한도전을 다시 얻는 느낌을 받는다.

화자는 그러고도 시인을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더 얻고 싶었음을 알게 한다. 게다가 새벽녘엔 서쪽으로 넘다가 남은 달빛에 취하면서 두견새가 해맑게 산에서 운다고도 했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것 다 취한 경치만을 취했지만, 자연을 밀쳐내고 또 다른 자연에 취할 수는 없겠다는 무의자다운 시상의 멋이리라.

※한자와 어구

吟風: 바람을 읊다. 松: 소나무. 瑟瑟(슬슬): 솔솔. 의성어의 뜻으로 쓰임. 落: 떨어지다. 石水: 돌과 물. 潺潺(잔잔): 졸졸. 의성어의 뜻으로 쓰임. // 況: 하물며. 혹은. 復: 다시. 殘月: 잔월. 남은 달. 曉: 새벽. 꼭두새벽을 뜻함. 子規: 두견이. 淸: 맑다. 해맑다. 叫山: 산에서 울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