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광양 백운산 둘레길 2코스(만남이 있는 길)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강과 바다가 되고

2021년 03월 09일(화) 18:47
한재를 넘어 백운산을 등지고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섬진강 남도대교, 화개에서 쌍계사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화개천과 농경지, 마을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광주에서 광양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광양에서 논실마을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시내버스에는 주말을 이용해 백운산을 오르려는 등산객과 광양시내에서 생필품을 구입해서 마을로 돌아가는 주민들이 타고 있었다.

버스는 동곡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경사진 도로를 힘겹게 올라간다. 옛날 다랑이 논이었던 계곡 옆 경사지에는 펜션들이 많이 자리를 잡았다. 버스승객 중 지역주민들은 마을마다 한두 명씩 내리고, 다른 등산객들도 백운산 등산로 초입에서 내린 터라 우리 일행만 종점인 논실마을까지 간다.

백운산 둘레길 1코스가 끝난 논실마을에서 2코스가 이어진다. 논실마을은 해발 510m에 위치해 있으니 웬만한 산 높이에 해당한다. 마을은 버스정류장 근처 다리 건너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논실마을 주민들은 고로쇠 수액 채취에 겨를이 없다.

한재로 오르는 길에는 근래에 새로 지은 펜션들이 많다. 펜션촌을 지나자 숲 가운데로 임도가 이어진다. 도시생활에 힘들고 지친 사람들은 울창한 숲 향기로 마음을 정화하고,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온갖 소음에 시달린 귀를 맑게 한다.

임도는 산비탈을 따라 곡선을 그으며 구불구불 이어진다. 임도 주변은 주로 활엽수가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활엽수림 속에는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고로쇠나무가 많아 2월에서 3월 초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한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나목 사이로 백운산 정상으로 통하는 주능선이 바라보이곤 한다.

한재를 거쳐 백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객을 종종 만나기도 하지만 통행하는 사람이 적어 주변은 고요하고 한적하다.

숲속 나무들은 ‘더불어 숲’을 이뤄 추위와 폭풍우를 함께 이겨내면서 꿋꿋하게 살아간다. 숲속 나무들은 새들이 살아갈 둥지가 되어준다. 우리는 숲길을 걸으며 숲속 일원이 된다.
숲길을 걸으며 숲의 일원이 된다. 인간이 자연의 일원이 될 때 행복해지고, 자연을 지배하려고 할수록 행복은 멀어져간다.

인간이 자연의 일원이 될 때 행복해지고, 자연을 지배하려고 할수록 행복은 멀어져간다. 행복은 문명이 주는 편리함에서 주어지기보다는 자연의 질서에 맞게 생활할 때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한재에 가까워지면서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많이 눈에 띈다. 잣나무 몇 그루가 길 양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절 입구에 있는 일주문 같다. 한재에 도착하니 백운산 정상으로 가는 한 팀의 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재는 백운산 정상과 따리봉을 이어주는 고개이자 광양시 옥룡면에서 구례군 간전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백운산 둘레길 2코스를 ‘만남이 있는 길’이라고 한 것도 구례 땅과 광양 땅이 만나고, 백운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줄기와 따리봉 줄기가 만나는 한재로부터 비롯됐다.

도로가 없었던 옛날에는 옥룡면소재지나 최소한 백운산 입구 동곡마을에서라도 한재를 넘으려면 상당한 다리품을 팔아야했다. 전라도 지역에서 해발 840m에 이르는 고개는 높은 고개임에 틀림없다. 큰 재라는 뜻을 가진 한재는 여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한재에서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걷는다. 신갈나무, 서어나무 등 울창한 활엽수림은 임도까지도 뒤덮었다. 숲 터널을 걷는 것 같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니 하늘이 트이면서 사각정자가 나타난다. 사각정자 앞에 서니 지리산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수많은 골짜기와 봉우리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거대한 산 공화국이 됐다.

저 장대한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라는 존재가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겠다. 웅장한 지리산이 나를 겸손해지게 한다.

활엽수 나목 일색의 숲에서 붉은 줄기의 적송 숲을 보니 신선하다.

한재 넘어 처음으로 민가를 만났다. 몇 시간 동안 산길만 걷다가 양지바른 곳에 둥지를 튼 민가를 만나니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길은 백운산 북쪽능선과 따리봉에서 하천산으로 뻗어나간 능선 사이에 형성된 깊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다.
도장동마을 앞 언덕배기에 용틀임하듯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소나무 거목 한 그루가 독야청청하다.

주변 산비탈에는 좁은 농경지도 있다. 발아래로 구례군 간전면 도장동마을이 내려다보인다. 하천산 자락 경사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도장동마을 앞으로 중대리계곡이 흘러간다. 이 중대리계곡을 경계로 광양군과 구례군이 나뉜다.

마을로 내려가는데 언덕배기에 용틀임하듯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소나무 거목 한 그루가 독야청청하다. 북쪽으로 터진 골짜기 한 중앙 언덕에 서서 수백 년 동안 온갖 비바람과 북풍한설을 견디며 꿋꿋하게 살아온 모습이 의연하다.

소나무 바로 아래쪽에 구례군내버스 종점이 있다. 구례읍에서 이곳 중한치까지 하루 다섯 차례 군내버스가 운행된다. 산비탈 다랑논들은 마을주민들의 생활터전이다. 계곡주변에는 펜션이나 여름철 피서용 시설들이 많다. 소박한 농가주택과 함께 도시사람들의 주말주택도 들어서있다.

전남 구례군 간전면과 경남 하동군 화개면을 잇는 섬진강 남도대교의 빨간 아치가 가깝게 다가온다. 화개에서 쌍계사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화개천과 주변 농경지, 마을들이 정겹게 바라보인다. 이 모든 것을 지리산이 품고 있다.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전남 구례군 간전면과 경남 하동군 화개면을 잇는 남도대교가 강물과 조화를 이룬다.

묘동마을 앞에서 중대천계곡을 건너 광양 땅을 밟는다. 잘 다듬어진 바위 사이를 돌고 돌아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겨우내 숨죽여 흘렀을 계곡물은 봄기운과 함께 당당하고 경쾌해졌다. 계곡 옆으로 구불구불 흘러가는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멀리서 다가오는 지리산이 꿈틀거리며 다가온다. 우리는 지금 백운산을 등지고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

밭에서는 매화가 꽃망울을 막 터뜨리고, 논에서는 겨울잠을 깬 개구리가 개굴개굴 노래를 부른다. 내 마음에도 봄기운이 가득 채워진다. 빨강, 파랑, 검정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석마을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니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섬진강변에 위치한 하천마을이 지척이고, 하천마을 뒤로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남도대교와 섬진강이 어울리고, 지리산과 화개천 골짜기가 조화를 이룬다.

중대리계곡 물이 낮은 데로 흘러 강물이 됐다. 부드러운 백사장을 적시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 물줄기가 실타래가 풀어지듯 자연스럽다.

산이 있어 골짜기가 만들어졌고, 골짜기를 따라 흐르던 물은 수많은 바위를 넘고 산자락을 돌아 강에 이르렀다.

이 강물은 더 낮은 곳으로 흘러 넓은 바다에 이른다. 낮은 것이야말로 모두를 품어낼 수 있는 가장 큰 그릇이다. 매화꽃으로 화장한 섬진강이 오늘도 말없이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부드러운 백사장을 적시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 물줄기가 실타래가 풀어지듯 자연스럽다. 산이 있어 골짜기가 만들어졌고, 골짜기를 따라 흐르던 물은 수많은 바위를 넘고 산자락을 돌아 강에 이르렀다. 이 강물은 더 낮은 곳으로 흘러 넓은 바다에 이른다.

※여행쪽지
▶백운산 둘레길 2코스는 동곡계곡 최상류 논실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한재를 거쳐 섬진강변 남도대교 근처 하천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코스 : 논실마을→한재→중한치마을→하천마을회관→하천마을
-거리/소요시간 : 12.3㎞/4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논실마을 주차장(광양시 옥룡면 신재로 17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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