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가 들려주는 '광주의 노래'](15)예술가의 메시지 ‘시대 정신’ 담아낸 예술…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다

2021년 03월 10일(수) 19:52

예술가들은 시대, 분야, 나라에 구분없이 그 시대마다 응어리져 있는 분노와 열망, 희망 등을 담아 예술을 통해 어떠한 메시지와 공감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은 국립 5·18묘지 전경. <광주매일신문 자료사진>

예술가의 역할은 새로운 시각을 전달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욕구를 예술을 통해 표출해주는 대행자이다. 특히, 사회 전반에 응어리져 있는 분노와 열망과 희망을 예술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사건을 통찰하고 아름다움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그것은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빛이며 특권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마다 예술가들은 어떤 메시지와 공감대를 만들었는지 살펴보자.


1. 작곡가 시벨리우스, 교향시 핀란디아

북유럽 필란드 태생인 시벨리우스는 조국에 대한 찬가를 작곡한 교향시 ‘핀란디아’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핀란드의 역사는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서 항상 힘들어했다. 이 곡은 작곡가가 34세 작곡한 곡으로 1899년 러시아의 속국으로 민중들은 독립운동을 일으켰다. 이 곡은 핀란드의 아름다움과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곡했고 정치적인 이유로 연주 금지가 되기도 했다.

2. 화가 피카소의 ‘게르니카’

현대미술의 빠질 수 없는 화가 피카소. 당시 56세였던 화가는 스페인 게르니카가 독일 전투기에 폭격 당했다는 뉴스를 들은 뒤 분노에 차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불바다에 휩싸이게 된 게르니카에는 군인 뿐 아니라 상당수의 민간인 사상자도 발생했다. 전쟁의 참혹함과 잔임함에 대해 표현했다. 작품 완성 후 피카소는 ‘어떻게 예술가가 다른 사람들의 일에 무관할 수 있겠습니까. 회화는 아파트나 치장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화는 적과 싸우며 공격과 방어를 행하는 하나의 무기입니다’라고 말했다.

3. 시인 김윤식(영랑), 독(毒)을 차고

독(毒)을 차고

독(毒)을 차고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강진 출신의 시인 김윤식(영랑)은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은 아름다움과 절제된 언어와 민요적 운율이 멋들어진 시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독(毒)을 차고’ 시는 그의 대표작과 달리 남성적이면서도 억압받는 민족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할 것을 다짐하는 시이다. 시인은 휘문고보 재항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구두 속에 감추고 강진으로 내려가 만세 운동을 도모했다. 그 일로 인해 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한 사람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4. 임을 위한 행진곡

1981년 5월, 백기완의 미발표 장시 ‘묏비나리’(1980)의 한 부분을 차용해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짓고, 전남대 출신으로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한 바 있는 김종률이 곡을 지었다.

이 노래는 1970년대 말부터 광주의 극회 광대에서 활동하던 문화운동 관련자들이 모여 지하방송 ‘자유광주의 소리’를 창설하기로 하고 첫 작품으로 만든 음악극 ‘넋풀이 굿(빛의 결혼식)’에 포함돼 있다. ‘넋풀이 굿’은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전사한 두 남녀의 영혼결혼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고인이 된 두 남녀가 저승으로 가면서 ‘산 자’에게 남기는 마지막 노래로 배치돼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등의 가사는 온 몸을 바쳤던 치열한 투쟁과 엄청난 죽음으로 귀결된 비극적 패배의 절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는 이러한 비극적 죽음과 절망을 딛고 나아가는 비장한 의지와 용기, 결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가사 내용은 대중적이면서도 비장한 4/4박자 단조의 행진곡 음악과 조응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이 글에 넣지 못했지만 무수한 예술가들이 시대, 나라, 분야를 넘어 자유와 희망, 평화를 노래했다는 것은 일맥상통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홍콩의 민주화 운동, 미얀마 쿠데타, 내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예술가의 사명을 다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지. 예술가로써 고민이 깊은 하루이다.

<이승규·광주작곡마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