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21)진도 소포마을

남도들노래·씻김굿 등 민속 문화유산 본고장
세시풍속·걸군농악보존회 등 전통민속 전수 활발
무형문화재 지정 예능보유자 다수 활동 계승 앞장

진도=박세권 기자
2021년 03월 18일(목) 20:16
옛 소포마을은 갯벌이 발달한 바다가 둘러싸고 있었지만, 간척사업으로 너른 들판을 갖게 되면서 지금은 주민들이 농사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진도는 과거부터 시·서·화·창 등 문화예술이 발달된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장이 바로 지산면 소포마을이다. 민속문화가 잘 발전됐으며 마을지를 발간해 많은 자료들이 갈무리돼 있기도 하다.

특히 청년회, 노인회, 세시풍속보존회, 강강술래보존회, 걸군농악보존회 등 주요 조직과 함께 전통민속전수관을 통해 문화예술이 전승돼 오는 진도의 중요한 마을이다.

소포마을은 민속문화 등 전통뿐 아니라, 최근에는 정보화 마을로 지정돼 정보화 시대에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 진도의 대표 마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포마을은 진도에서 자연마을 단위로 가장 크다. 진도대교가 세워지기 전 여객선으로 목포-진도간을 왕래하던 유일한 나루터로도 유명했다.

진도 특산품인 검정쌀을 소포리에서 최초로 재배해 전국으로 공급하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갯벌에서는 뻘낙지와 청정해역 바다에서 모자반과 김을 비롯해 친환경 재배로 생산되는 진도대파, 월동배추 등이 유명한 지역이다.


◇조선시대 목장면 18개 마을 중 하나

진도군 지산면에 자리잡은 소포마을은 조선시대 당시 목장면 18개 마을 중 하나였다. 옛 소포리 주변에는 갯벌이 발달한 바다가 둘러싸고 있었다. 이 때문에 소포만과 대흥포에는 화염(火鹽)업이 발달했고 마을의 동쪽끝단과 갯고랑이 만나는 곳에는 진도읍을 왕래하는 소포나루가 있었다.

근대 이후에는 목포와 통하는 항로가 개설되기도 했다. 이처럼 소금산업과 교통 발달로 인해 소포마을은 큰 마을로 발전했고 마을 주민들의 협동심도 좋았다. 주민들 자력으로 대흥포를 간척하기도 했다. 1650년께 수원 백씨, 연안 차씨, 동복 오씨 등 3성이 입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쌀, 흑미, 대파, 월동배추다. 소포리는 본래 ‘소개’ 또는 ‘소포’라 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포리’로 칭하고 있다.

현재 소포마을에는 135가구 34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데 일반 벼 외에 검정쌀을 짓는 농가가 전체 가구의 90% 이상이다. 매년 8월엔 ‘소포 검정쌀 축제’를 열어 마을 특산물인 검정쌀을 알리고 다양한 민속행사를 선보이고 있다.


◇진도 서부의 관문 소포나루

소포나루의 나룻배는 진도 서부의 관문 역할을 했다. 소포만 하구의 지산면 소포리와 바다 건너 집도읍 방면과의 교통은 소포리를 비롯해 거제리나 안치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부터 배를 이용해 소통됐다.

30여년 전까지 지산면 소포리와 현 진도읍 해창리를 오가는 나룻배가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배를 탈 때마다 선비(배삯)를 내지 않고 1년 ‘원당’으로 보리 수확기인 여름에 겉보리 구승 5되와 가을에 벼 구승 5되 또는 서숙, 콩 등 잡곡으로 거출해 배삯을 지급했다.

‘소포 나루쟁이’라고 부르던 사공은 안전운항을 위해 큰소리를 쳐대는 바람에 ‘버릇없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1975년 소포만 제방으로 인한 절강 때부터 나룻배의 역할이 급속히 사라지자 소포항구는 불이 꺼지고 지금은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졌다.


◇소포만 간척 후 염전업→농업 전환

소포만은 진도군에서 가장 넓은 만이다. 서쪽에는 지산면, 남쪽에는 임회면, 동쪽에는 진도읍이 자리잡고 있다. 소포만 간척은 1968년 9월에 허가가 나 1970년 6월 착공해 7년여 공사 끝에 1977년 7월 준공됐다.

방조제 길이는 1천388m로 매립 면적은 1천219㏊, 몽리 면적은 741㏊에 이른다. 진도에서 최대 면적을 자랑하고 소포만 간척으로 인해 진도군 지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통해 소포마을의 삶도 크게 바뀌었다. 염전업에서 농업으로, 나룻배에서 도로 교통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소포는 소포만과 서해 바다를 중심으로 어업보다는 농업 비율이 발달했다.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해 있고 자연적으로 바다가 땅이 되는 개펄습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땅으로 바꾸는 작업을 꾸준하게 한 결과로 농업이 발달한 것이다.

오랫동안 보릿고개에 시달려 왔지만 소포만을 통해 통일벼가 보급돼 주곡의 자급이 가능해졌고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1차 산업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벼를 제외한 품목은 주로 대파, 콩, 보리, 고추, 배추, 마늘 등을 들 수 있고 경제 작목으로는 대파와 요즘 확산되고 있는 울금 등을 들 수 있다.

소포마을에서는 벼를 나락으로 표현하며 과거 모내기를 할 때 온 동네가 잔치집이라 할 만큼 일손이 모이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소포리 등지에서 불려온 모내기소리가 들노래가 되고 으뜸이 됐다. 현재 검정쌀 농사가 대부분으로 소포마을은 대표적인 논농사 지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대파는 소포 뿐만 아니라 진도지역 전체가 따뜻한 지역이어서 다른 지역이 얼어붙어 있을 때도 출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충분하다. 대파는 고혈압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데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보리는 이모작으로 거의 많은 논에 보리를 재배하기도 하고 소포만을 막고 난 뒤 개펄토지에 모내기가 가능하게 되자 광활한 뻘땅에 이모작으로 보리를 재배하기도 했다. 울금은 가루, 환, 막걸리 등 다양한 품목으로 사용되며 고려시대 때부터 재배됐다고 전해진다.


남도들노래와 씻김굿·다시래기 등 민속 문화유산의 보물창고인 진도 지산면 소포마을은 동네 골목길과 창고 등에도 민속놀이를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남도들노래·씻김굿 등 민속 문화유산 다양

남도들노래는 1972년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지정되며 널리 알려졌다. 소포마을 뿐만 아니라 진도사람들은 옛날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힘든 일을 하는 들판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불러 생활의 고달픔을 잊게 하는 노래를 만들고 공동체의 노동요가 바로 남도들노래다.

남도들노래는 1971년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원래 농부들이 논에서 일을 하며 부르는 농요이며 가락이 무척 다양하고 흥겹다. 또한 됫소리를 길게 배면서 부르며 징, 꽹과리, 북, 장구 등 반주에 맞춰 일을 시작하면서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노래를 부른다.

씻김굿도 유명하다. 호남을 대표하는 굿으로 1980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됐다. 세계민속음악제에서 금상을 획득하기도 했다. 씻김굿은 진행되는 방식이 연극적 요소를 따르고 있는데 죽은 자의 원한을 씻어 저 세상으로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취지에서 행하는 의식이 매우 상징적이다. 씻김굿은 죽은 이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벌이는 굿이다. 사령을 위한 굿은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호남지역의 사령굿을 씻김굿이라고 한다.

다시래기는 음악, 춤, 연극이 합쳐진 놀이다. 옛부터 초상집이 부잣집이면 상두꾼 뿐만 아니라, 단골로 다시래기 기능보유자인 재비꾼까지 불러들여 밤을 새워 여러 놀이를 벌이게 했다.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상두꾼들만으로 신청의 재비꾼들이 노는 흉내를 낼 정도로 놀았는데 그 놀이가 바로 다시래기다.

소포리 뿐만 아니라 진도의 초상집을 방문하는 외지 사람들은 생애 처음 보는 생소한 장면을 보고 놀랐다. 초상집에서 코미디 연극을 하는 장면이 처음에는 무례한 짓으로 생각했지만 코미디 연극이 상주가 너무 슬퍼하는 나머지 심신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임을 알고 감동을 받고 돌아갔다. 그 코미디 연극이 바로 다시래기다.

진도 만가는 생이소리라고도 하는데 장구, 꽹과리, 피리 등 다양한 악기가 동원되며 장례 분위기를 슬프게만 연출하지 않고 어느 한 대목에서는 신명난 가락을 즐기기도 한다. 죽음의 슬픔을 극복하는 파격의 미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상여가 나갈 때 여자들이 상여 앞에 기다랗게 늘여뜨린 ‘질베’ 천을 잡고 묘지까지 간다. 이는 고구려 풍속으로 고구려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 이승과 가족을 영원히 이별하는 행렬을 춤과 노래와 북소리로 운상했던 전통이다. 장례 행렬에서 부르는 춤과 노래가 진도 만가다. 1987년 전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됐으며 남도문화재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진도의 북은 양손에 채를 쥐고 친다고 해 흔히 ‘양북’이라고도 한다. 진도북놀이의 대표 명산이 바로 소포다. 다양한 가락과 춤사위를 곁들인 놀이이자 춤으로 전승됐다. 1987년 전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다. 안동에 가면 제사법을 갖고 따지지 말고, 진도에 오면 북치는 법을 갖고 따지지 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북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사적 전통과 기량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예능보유자들 외에도 마을마다 후대에까지 회자되는 북수들이 즐비하다.

마을 유래석(위)과 소포검정쌀마을 안내판.

/진도=박세권 기자
진도=박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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