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훈 교수의 일본 작가 비평](22)한국에서 바라본 마쓰다 도키코 反戰과 평화수호를 위한 행보와 함께 詩 발표 |
| 2021년 03월 24일(수) 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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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마쓰다 도키코가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미국의 개입이었다. 일본의 패전으로 미국은 영향력을 확대,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들과 일본이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속에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별도 특약이 담겼다. 이에 근거해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수상은 ‘미일안전보장조약’에 서명한다. 이 조약은 재일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는 계기가 되며 일본의 미국 종속화에 기름을 붓는다.
여러 차례 언급했듯 마쓰다 도키코는 해방 이후 일본의 가해행위로 피해를 입은 이국 노동자들의 지원과 구제, 역사 복원 활동에 매진했다. 1950년대 이후의 그녀 활동은 일본의 침략전쟁이 부른 이국 희생자들에 대한 회개와 반전의식 고취를 위한 실천적 행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일안보조약은 50년대 후반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의 테이블에 올랐다. 1958년부터 미국과 일본 사이에 개정 협의가 이뤄져 1960년에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수상이 미국을 방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신안보조약을 체결한다.
그 내용은 미일 공동 방위를 명문화한다는 명목 하에 일본 전역을 미군이 수호하는 만큼 재일 미군을 향한 어떠한 공격에도 일본의 자위대와 미군이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일 미군의 배치와 장비에 대해서 미일 정부가 사전에 협의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미국 종속화와 전쟁 재발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안보 반대를 외치는 데모 집회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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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안보’의 개념을 미국의 전쟁에 일본이 참가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양국정부에 격렬히 항의하며 반정부, 반미투쟁을 전개한다.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반전 평화의 가치를 중시하던 마쓰다 도키코는 안보 반대 투쟁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마쓰다는 20차 행동의 날에 나카노(中野 )역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발표한다.
6·22
-안보 반대, 제 20차 행동의 날, 나카노역에서-
긴장하며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네
그대의 하늘은 이미 쇠퇴해
새까맣게 오가는 구름 사이는 어둠
미지근한 수은(水銀)의 비를
모인 36개 산업별 단일조합 노동자의 뺨에
흐르게 해주었네.
그대의 비에 젖으며 노동자들은
‘민족독립행동대’를 노래했지
학생들도 소녀들도 어머니들도 그 노래를 불렀고
그대의 비가 장단을 맞췄지
무수한 수은주가 대지를 치고
사나운 바람이 빗방울과 노랫소리를 흐르게 했네.
하지만 대지의 자식인 노동자들은 의연히 일어나
미명의 그대를 지켰네
6·4에서 6·22로
이곳 나카노 샤쇼구(車掌區)와 덴샤구(電車區)의 노동자들이
일본 노동자 계급의 마음을 실력(實力)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대여 6·22라는 날 속에서?
호우가 되어 물보라 치는 그대의 비
질풍이 되어 휘날리는 그대의 바람
그 비바람을 뚫고 응원의 노동자들은
북에서 남으로 대열을 이곳까지 연장했네.
억눌린 분노 해고의 노여움
하지만 또
아이젠하워의 방일을 저지한 신념
기시 수상 퇴진·안보 타파의 새로운 결의
그대의 비바람과 그대 자식 노동자들이
세찬 박수로 그 대열을 맞이했네.
그대여 밝을 때가 왔네
그대의 두터운 구름층을 태양이 안쪽에서 타오르기 시작해
새벽녘의 구름 낀 하늘이
노동자 부인의 뺨처럼 장밋빛으로 물든 순간
응원의 노동자들은 남북에서 애태우다가 동쪽을 향했네
샤쇼구로 센샤구로
정지한 차체와 레일
질풍과 비가 때려 부수고
그 틈 속에서 남북으로 돌진하는 대열의 손에는 깃발
깃발은 붉은 혓바닥으로 빗방울을 튀기며
질풍을 거슬러 그날의 결의를 펄럭였네.
그대의 대지와 강철 레일이 빗방울을 멈춰 세워
지금 그 위를 스쳐 지나가는 열차는 없네
그대의 순간 순간이 대지에 녹아
대지가 그대에게 소리도 없이 볼을 비볐네
“6·22
그대의 숨결은 지금 따뜻한지
그 숨결은 민중의 숨결과 맞닿는지
우리 어머니 같은 대지의 호흡과도……”
그대는 그때 깊숙이 민중의 품에 안겼네
나카노 덴샤구와 샤쇼구가 수십 줄의 레일 저편을 향해
팔을 들어 올렸네.
―1960년
마쓰다가 노래한 이 ‘6·22’는 중국의 ‘세계문학’ 7월호에 중국어로 실렸다. 또한 지난 3월에는 안보 개정 움직임을 소재로 ‘살리는 도장과 죽이는 도장’이라는 시가 ‘인민일보’에, 4월에는 안보 반대 통일 행동을 강조한 ‘열’(列)이라는 시가 중국의 ‘세계문학’에 연이어 번역, 발표됐다. 시를 통한 그녀의 평화수호 의지와 국제연대를 호소하는 목소리 톤이 얼마나 높았는지, 익히 짐작하고 남는다.
조선과 중국의 이국 노동자 피해에 대한 일본의 자책과 성찰의 마음이 각별한 것이었기에 중국 내지의 잡지 게재가 가능했거니와 그녀의 메시지를 주목하는 중국인도 적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증거이리라. 또한 동아시아 헤게모니를 의식한 중국의 입장에선 안보 개정에 항의하는 마쓰다의 메시지를 일본의 양심적 시인의 발신으로 수용했을 터다.
10년 후인 1970년에도 마쓰다는 이 안보 투쟁에 나서는 여성들의 내면세계를 테마로 ‘용담색의 불꽃노래’을 비롯한 단편 4편을 연작소설로 발표했다.
1960년 6월의 제1차 투쟁에 560만 명의 일본 시민이 참여한 일본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규모 데모 운동이었다. 그런 만큼 생애를 관통하는 기억으로 그녀의 뇌리에 똬리를 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다시 하나오카 현장으로 달려가-
한편, 안보 투쟁에 불이 붙은 이듬해 4월 오다테시의 시민단체로부터 마쓰다에게 긴급전화가 걸려온다. 중국인 포로순난자 위령실행위원회로부터 10여 년 전 조선인 징용자이자 하나오카 자유노조위원장이던 김일수의 안내로 방문한 현장에서 또 유골이 발견됐다는 것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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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관계자에게서 이전의 유골안치소인 하나오카 신쇼지(信正寺)에서 증언을 얻어 공양탑을 파헤치자 두개골을 비롯한 인골이 발견됐다. 그후 마쓰다는 관계자들과 함께 주변의 동산과 구덩이 터를 찾아 조사에 나선다.
이 발굴체험을 토대로 ‘뼈’라는 작품을 집필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년간 마쓰다 도키코 연구에 몰두하며 마쓰다 도키코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분석, 고찰한 와타나베 스미코(渡邊澄子·1930-, 다이토분카대학 명예교수)는 ‘기골의 작가 마쓰다 도키코 100년의 궤적’(사키가케문고, 2014)에서 “위령실행위원회에 보내기 위해 도키코는 8천 자의 조사보고를 하룻밤에 완성”, 그 보고서에 근거해 완성한 작품이 ‘뼈’임을 지역에서 하나오카 사건과 마쓰다 도키코 활동을 줄곧 주목해온 ‘일.중불재전(不再戰) 우호비를 지키는 모임’ 대표였던 오쿠야마 쇼고의 증언을 인용해 밝힌 바 있다.
1950년 당시에는 조선인 김일수가 사건 현장을 안내해 그때부터 마쓰다는 하나오카 사건 피해자 지원과 구제 활동을 펼치는 일에 앞장서 왔다. 김일수는 60년 초 고국으로 귀국해 이젠 자신이 단장을 맡아 사건수습에 나서야 할 처지였다. 안내자이자 동지인 김일수에 대한 그리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었으랴.
마쓰다와 관계자들은 발굴 작업을 위한 노력과 조사를 거듭하고 가해 기업인 가시마구미와도 합의해 1963년 인원 500여 명을 동원해 무려 12상자의 중국인 피해자 유골을 발굴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하나오카 사건 50주년 기록지’는 “중앙과 아키타의 양 위령제 실행위원회는 전국에 ‘괭이 한 자루 운동’을 호소해 500여 명이 참가한다. 하나오카 사건 생존자 이진평(李振平), 임수림(林樹林) 두 사람도 18년 만에 하나오카를 방문해 옛 동료의 유골을 줍고 참가자와 중일 우호, 중일전쟁 반대를 선언하는 악수를 나눴다”고 새겼다.
전쟁이 부르는 피의 살육을 저지하고 평화 의지를 보여준 실예에 다름 아니다. 도쿄의 규단(九段)회관에서 개최된 유골 500여 명의 위령제에서 마쓰다는 다음과 같은 헌시를 여자배우를 통해 낭독하게 했다.
-중국인포로 순난자열사의 영령에-
그 세월이 버거웠다
특히 당신들 사이에선
꿈속에서도 못 잊을 고국의 전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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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동포가 분노를 무기 삼아 일어선
대륙에서
당신들은 헤어지고 붙잡히고
일본 제국주의의 덩굴통에 처박혔다
그곳은 지옥 속의 지옥
살의에 휘둘리는 곤봉과
끔찍한 기아와 노역이 기다리는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이르는 탄광과 광산
댐 현장
항만
수로 공사
그 모든 곳에 당신들의 피가 서려
당신들의 눈물이 흘러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고국 (하략)
<김정훈·전남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