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몇 마디 - 김종 시인

2021년 04월 12일(월) 19:23

▲시조 <그리운 흙냄새>는 요즘 TV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흙은 자연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현장이다. 화자는 작품에서 ‘은 머리 오솔길’에 세월의 조각들을 흩날리며 한 서린 슬픔의 시간들을 냇물처럼 흘려보내기를 소원했던가 보다. 저마다의 가슴에는 지난날의 꿈의 시간들이 푸른 별 종소리처럼 속살거리며 구름처럼 달리곤 한다. 질화로에 둘러앉아 고구마 구워 먹던 시절처럼 산천이나 들녘이나 하늘 땅, 심지어는 신작로까지 달빛 아래 풍경들은 화자가 그립다는 흙냄새이며 우리가 되돌아가고자 하나 아쉬움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 옛날이여.

▲시 <꽃길>은 ‘시린 가지마다’ 폭발적으로 피어난 봄꽃들의 경염競艶이 읽히는 작품이다. 사월 초순은 절기상으로도 봄기운이 물씬거리는 최상의 계절이며 ‘혹독한 산통’을 딛고 팝콘이 터지듯 매달린 꽃들의 길목에 들어서는 화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우리나라 산야에는 이파리도 나오기 전부터 성급한 꽃망울들이 다투듯이 벙근다. 옥빛 구름 바람에 밀리듯 지천에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속이 어우러져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든 ‘꽃길’이다. 세상사 순탄한 것만은 아니어서 복병처럼 꽃샘추위가 등장하나 헐벗은 가지를 열고 피어나는 꽃 잔치는 그래서 더더욱 화사하다.

▲시 <아버지 제삿날>은 시인도 이제는 남매를 낳아 기르며 떠나신 지 오래된 아버지를 회억하는 작품이다. 간절한 것은 세월이 가도 어제 본 듯 선명한 법. 아버지께 사랑받던 지난날은 그래서 더더욱 그립기만 하다. “너른 들 거니시며/농작물 돌보시고/ 개구쟁이 칠 남매”에게 베푸신 아버지의 사랑을 헤아리는 화자에겐 철없는 아이의 모습처럼 보인다. 자신도 언젠간 떠나갈 이 지상에서 “오늘도/ 아버지 그리는 마음이/ 애잔한 사랑으로/ 가슴을 파고든다”는 아버지 그리는 심정은 그 옛날 아버지의 추억 속을 걸어가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수필 <멈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팬데믹으로 도심도 썰렁하고 관광버스나 비행기도 멈춰서고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리던 일상에 심대한 변화를 풀어낸 작품이다. 팬데믹이라는 터널을 지나면서 컴퓨터 시대임에도 붓 잡는 시간으로 교체하여 이를 이기는 지혜와 여유가 제시된다. 서예에 입문한 지는 십 년, 보람을 느끼면서도 아직은 부족하다고 말하는 화자, 붓놀림에서 마음과 몸 사이의 조화에다 흐르던 물도 멈추면 맑아진다는 아포리즘을 발언한다. 속도를 버리고 정적인 운동으로 옮겨 앉아 ‘멈춤’이란 잠시 쉬면서 돌이키는 일이며 현재를 살피고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라고 말한다. 시골과 자연으로 돌아가 잘못된 지난날을 고치고 청결을 유지하며 이웃이나 타인의 노고와 헌신에 대해서도 운필의 원리에서 오는 집중의 힘과 이에서 터득한 강약과 조화의 원리를 강물을 따라가듯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