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안철수 그리고 김부겸 / 박대우

2021년 04월 22일(목) 18:03

박대우 지역발전정책연구원장

바둑에는 ‘복기’라는 것이 있다. 지나간 상황을 되돌리자는 것이 아니라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행위로서 복기는 필수적인 절차의 하나이다. 복기가 중요한 분야가 또 있다. 바로 정치다. 정치는 선거를 통해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갈리고 승자는 기회를 패자는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각각의 임계점을 구분 짓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위기와 기회의 결과가 뒤바뀌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이는 당장의 결과에만 연연할 필요가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중장기적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중요한 갈림길에서 자신을 믿고,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가장 먼저 갖게 되는 생각이나 주변의 의견은 언론에서 멀어지면 국민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지게 된다는 두려움일 것이다. 또 하나는 권력의 정점에 자리했을 때 자신의 정책과 의지를 관철시킴으로써 정치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 것이다. 전자의 생각은 나약함이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깊은 산속에서 캐낸 산삼의 가치가 잘 가꾸어진 논밭에서 수확한 농산물과 다르게 매겨지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정치인의 진가가 묻히게 될 것이라는 조급함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부족과 민심의 현명함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착오이다. 정치력의 극대화는 어떤 자리에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판단과 선택이 가장 크게 반영된다. 정치적 파장에 따라 정치력의 크기와 무게가 결정되는 것이다. 정치에서 흔하게 접하는 말이 있다. 바로 ‘깜’이라는 단어인데 ‘국회의원 깜’이다, ‘장관 깜’이다 등등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은 정치인의 가치를 높여 부른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정치인은 거기까지가 한계라는 뜻도 담고 있다. 이렇듯 전자이든 후자이든 그때 당시의 결정을 복기하는 절차는 앞으로의 행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

먼저 이낙연 국회의원을 돌아보자.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가장 많은 기대와 응원을 받았던 정치인 중 한 명일 것이다. 이미 4선 국회의원을 지낸 무게감도 그렇거니와 전라남도지사로 지방행정과 국무총리로 국정경험까지 지니게 되었으니 정치적 자산으로는 견줄만한 정치인이 드물었다. 하지만 국무총리를 마치고 또 다시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것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국회 전체를 상대했던 국무총리가 또 다시 그 300명 중의 한 명으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조금 더 공부하고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배낭하나 메고 외국행 비행기’에 올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대구를 방문하면서 민심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총선을 위해 마라톤을 선택한 것은 성급하고 가벼운 결정이었다. 국회의원 배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현지에서의 의료봉사로 선거운동을 대신했더라면 의석 수 확보를 떠나 정치인으로서의 진정성을 인정받으면서 그 가치도 높아졌을 것이다.

김부겸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크다. ‘임기 말의 힘 빠진 총리’라거나, ‘열악한 여러 가지 지표’에 대한 책임 때문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수도권을 포기하고 험지이자 사지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 불모지 대구로 향했던 정치적 명분이 희석된 것이다. 그 시작이 향하는 목표는 너무도 명확한 것이어서 그가 야인으로 있을 때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언론은 그를 주시했고 국민들은 응원하지 않았을까.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고, 나아가 이념의 갈등과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어젠다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대구에서 김부겸의 치열한 사투는 결과와 상관없이 국민들을 움직였고 전국적으로 지지세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다가온 대선을 앞에 두고 국무총리를 선택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정치행보에 있어서 ‘김부겸 대통령’의 길을 벗어나 “잠시 내려왔다 돌아가겠노라”는 선로변경으로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지지를 획득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지금의 체급조절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어서 명분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정치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옷은 줄여 입으면 찢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