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수의 청담직필]지역학에서 길을 찾자
2021년 05월 03일(월) 19:16
박준수의 청담직필 광주매일신문 대표이사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과학기술이 갈수록 고도화하는 흐름 속에서 옛 것으로부터 지역정체성을 탐색하고 미래 비전을 찾는 ‘지역학’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주목된다.

지역학은 지역의 자연·역사·문화 자산을 종합,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내 고장 연구’를 통해 지역민의 애향심을 자극하고 지방의 정체성을 찾자는 것이다. 정치·경제·역사·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지역의 미래상을 설계하고 이를 실현할 이론적 토대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엔 기존의 향토사 위주에서 벗어나 지역 현안, 지역민의 삶과 환경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연구 성과는 세미나·토론회나 출판물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지역대학들이 지역학 산실-
그동안 광주·전남에서 지역학을 선도해온 주체는 전남대와 조선대 등 지역대학들이다.

전남대 호남학연구원은 지역 연구를 통해 한국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1963년에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호남학연구원은 지난 60여 년의 성과를 토대로 전통 문화의 현대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응용을 통해 지역학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2008년에는 ‘세계적 소통코드로서의 한국감성체계 정립’이라는 아젠다를 중심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사업(HK)을 수행하면서 ‘감성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인문학 모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2018년부터는 감성과 지역학을 아우르는 ‘분권시대, 횡단적 보편학으로서의 감성인문학 : 장소,매체,서사’라는 아젠다를 설정하여 HK+2 사업을 수행 중이다.

조선대는 2001년 호남학 연구사업단을 결성해 호남인의 삶의 자취와 정신적 특성 등 지역 문화유산을 학문적으로 연구·발굴하고 있다. 사업단은 호남의 자연 유산·고미술·민속과 민간신앙·언어와 문학·사상과 철학 등 지역 문화 등을 이해하고 이를 발굴·계승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대학에 전공 과정도 개설했다. 호남학 연계 전공교육 과정에 개설한 과목은 ‘호남의 전통음식과 명가’, ‘문화재 관리와 보존’, ‘호남의 고미술’, ‘남도의 시가문학’, ‘호남의 생태계와 자연자원’, ‘호남의 갯벌과 삶’ 등 14개에 달한다.

-지자체와 민간으로 확산-
최근에는 지역학 연구가 대학뿐 아니라 유관기관, 민간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지난 2018년 개원한 한국학호남진흥원은 호남인의 역사문화 역량을 고취하는 연구와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전번역 등 호남의 역사유산과 기록문화의 체계적 발굴·정리와 차세대 전문가 양성에 힘쓰고 있다.

여기에다 광주문화재단도 ‘광주학’이란 이름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깃든 스토리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길, 광주모노그래프1’, ‘광주근현대미술의 주요지점들’, ‘광주의 지문’ 등 3권의 독창적인 성과물을 내놓았다.

또한 지역학이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으로 대두되면서 기초지자체로 확산하는 추세다. 나주시는 올해 1월부터 지역 역사, 문화, 경제, 산업 분야를 망라한 나주학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또한 호남지역 기초자치단체 중 최초로 지역학 연구를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 공포했다.

국제정원박람회 성공으로 생태도시로 발돋움한 순천시는 지역에 산재해 있는 역사자원을 접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순천에는 전남 유일의 백제토성인 해룡산성, 정유재란 전투에서 이순신장군이 노량 앞바다로 유인해 대승을 거둔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쌓은 순천왜성 등 특색있는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순천시는 후백제 부흥에 앞장선 박영규 장군이 웅거했던 해룡산성을 복원해 정원박람회 영역을 확장하는 한편 박영규의 세 딸과 고려왕실과 관련된 러브스토리 설화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지역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발전 없이 한국문화의 세계화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현재 지역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 스스로 정체성을 정립하고 경쟁력을 분석해 미래를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인구가 줄어들고 지역대학이 존폐위기를 맞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지역학에서 해법을 찾는 자세는 지극히 당연하다. 지역학에서 지역소멸을 극복하는 길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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