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창사30주년 릴레이 에세이](16)김영순 광주문화재단 문화융합본부장

내 청춘을 묻었다

2021년 05월 11일(화) 20:44
우리는 청춘이었다. 1기였던 우리 동기들은 20대, 선배들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었다. 나이가 좀 있는 부장들도 40대에 불과했다. 우리 모두는 청춘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벌써 30년이란다. 조금은 끔찍하다. 누구 할 것 없이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청춘, 기억의 촉을 곤두 세워 그 시절을 더듬어본다.

오랜 불합격 끝에 광주매일신문에 겨우 입사했다. 그 때는 얼마나 기뻤던지, 그러나 기자가 감당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았다. 아마 머리가 안 되었나 보다. 야마(?)잡기가 쉽지 않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얼마나 끙끙댔는지 모른다. 잘 되지 않는 기사를 쓰면서 머리를 쥐어박곤 했다. 나이어린 동기들이 잘도 쓰는 기사를 나만 헤매고 있었다. 쉽게 합격했더라면 금방 때려치웠을 거다. 더군다나 사회성도 부족해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는 것조차 수월치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고 능력도 턱없이 달리는데, 기자에 대한 꿈을 왜 꿨을까 하며 후회막심이었다. 오랫동안 매달리다 간신히 합격했던 터라 단박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선배기자들의 기사 베껴 쓰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설상가상, 초짜 기자에게 특집기사가 떨어졌다. 90년대 문화의 해가 지정되어 특정 문화 장르를 널리 활성화하던 때였다. 언론들도 앞을 다퉈 관련 특집을 마련했다. 지지리도 기사를 잘 쓰지 못하는 내게 한판 잡이 문화특집이 주어졌다.

일복이 많았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 두 세배의 원고량을 감당해야 했다. 그 땐 그게 너무 싫었다. 왜 나만 이렇게 일이 많을까 하며 복 쪼가리 없는 내 팔자(?)를 한탄했다. 적어도 내 눈엔 1인분의 일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기들이 그저 부러웠다. 그렇게 한 3년을 줄기차게 썼었나 보다. 그렇게도 써지지 않던 기사가 술술 써졌다. 어라, 되는구나. 기쁨의 순간이었다. 내 필명의 기사를 일부러 찾아서 읽는다는 독자들을 종종 만나기도 했다. 광주매일신문은 내 무능했던 청춘의 시절에 뭔가를 채워준 삶의 탱크였다. 광주매일신문은 수줍음이 많을 뿐 아니라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청춘을 기자로 변신시켰다. 그에 그치지 않았다. 공적 마인드를 확실하게 내 몸에 각인시켜준 시기이기도 했다. 공적 마인드는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수적인 요소다. 신문기자로 뛰며 내 개인보다는 지역사회를, 나아가 국민을 챙기는 것을 자연스레 체득했다. 사익이 아닌 공익의 우선은 공적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갖춰야 할,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광주비엔날레가 창설되기 전까진 현장에서 열심히 뛰기만 하면 별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달라졌다. 현장에서의 취재 활동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2000년대 중반에야 도전할 수 있었다. 만학도로 전남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뒤늦게 미술이론을 공부하면서 얼마나 가슴 뿌듯했는지 모른다. 공부에의 갈증을 맘껏 충족시킬 수 있었다. 문화부기자에겐 출입처가 없었다. 출입처에서 제공하는 해외 출장은 커녕 해외 취재의 기회가 별로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했다. 한국언론재단의 해외 기획취재 공모에 도전했다. 그렇게 해서 몇 차례의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테마취재를 다녀올 수 있었다. 유럽비엔날레의 그랜드 투어와 이탈리아 슬로시티 취재가 그것이다. 이 모두가 광주매일신문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순전히 문화부 기자였다. 20여년 거의 문화부기자로 활동했다. 10여년 전부터 문화영역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부기자로 경험했던 것에 기반한다. 기자로 활동하며 만난 문화계 인사들과 예술인들은 지금도 광주 문화를 함께 키우고 이끌어가는, 끈끈한 관계의 파트너다. 광주매일신문이 그렇게 연을 맺어준 것이다. 그래서 늘 감사하게 여긴다. 그 때는 몰랐던, 동기들과 선배들, 아니 후배들에게도 고마움과 감사함을 뒤늦게 느낀다. 20·30대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50대엔 애터지게 일하지 않고 결재만 할 거라고. 정작 그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실무를 부지런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직 청춘이란 뜻이다. 겉모양은 할머니지만 여전히 청춘처럼 일한다. 기사를 제대로 쓰지 못 하여 발을 동동 굴렀던 초년병 기자의 노력과 열정의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다. 사회의 첫발을 떼며 배웠던 청춘이었던 때의 그 자세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이 모든 게 광주매일신문에서 길러진 힘이라고 여긴다. 여전히 청춘의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원동력은 바로 거기서 나온 거다. 그래서 더욱 그립다, 그 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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