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사 창사30주년 릴레이 에세이](19)이영규 이개호 의원실 보좌관 ‘겁이 없어, 뜨거웠던 시절’을 다시 생각한다 |
| 2021년 05월 17일(월)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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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선, 박헌주 후배와 광주매일 깃발입니다.
오영상 당시 사진부장과 함께 이뤄낸 장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고 또 마무리했습니다.
“광주매일신문 식구들을 보면 가끔 겁이 없는 것 같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가끔 미칠 때가 있어.”
언젠가 편집국을 방문했던 언론인 선배 한 분이 사진을 바라보며 저에게 했던 말입니다.
광주매일신문 30년을 이야기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순간 저는 불현듯 그 선배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겁이 없다.’
특정 나이대, 특히 젊은 친구들 앞에 이 구절이 더해지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과 동의어가 됩니다. 앞뒤 분간을 못 하는 무모함을 이르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겁이 없는 대상이 20대 평기자부터 50대 편집국장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상황이 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그 속에는 많은 생각과 걱정을 떨치고, ‘하고 싶은 일’ 혹은 ‘해야 할 일’을 해보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더욱 겁이 없었고 뜨거웠습니다.
1990년대 초반, 광주지역 언론사들은 그야말로 ‘5·18’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밝히는 것, 그것은 언론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이들이 가슴에 지고 있던 숙제이자 숙명이었습니다.
1993년 그해에도, 연례행사처럼 ‘5·18 특별취재반’이 꾸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땐 달랐습니다. 당시 반장이었던 김준태 부국장이 특별취재반 앞에 책 발간을 전제로 한 장기시리즈의 제목을 던졌습니다.
‘정사(正史) 5·18’
그 제목을 받아 든 그 순간, 취재반의 막내였던 저는 숨을 죽이고 선배들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정사(正史)라는 두 글자 속에 담긴 의미와 무게를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한 신문사의 시리즈 앞에 ‘정사’라는 타이틀을 붙인다는 것, 그것은 세상 물정을 너무도 잘 아는‘선배들의 겁 없는 도전’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사초(史草)는 기자들이 쓴다”는 국장단의 ‘겁 없는’ 지시를, ‘겁 없이’ 받아들이는 선배들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당시 김준태 국장은 2년6개월 뒤 1백 회가 넘는 시리즈 결과물을 책으로 묶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광주매일 5·18 취재팀은 향후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그 1차 사료(史料)적 기록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시리즈를 계속해 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 굳은 각오와 다짐을 계속 간직할 것이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2001년 4월, 광주매일은 또 한 번 겁 없는 도전에 나섭니다.
그해 4월 9일, 영암군은 영암 상대포에서, 일본 규슈의 가라쓰(唐津)까지 백제시대 왕인박사의 이동항로를 되짚어가는 뗏목(떼배)탐사단을 출발시켰습니다.
뗏목과 호위선, 그리고 17명의 탐사단이 10여 일간의 장정에 나선 것입니다. 그 탐사단에 저와, 지금은 고인이 된 정한진 기자가 참여했습니다.
너무도 흥분되고 귀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영암군에 탐사단 참여 언론사는 광주매일 한 팀으로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답은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길, 누가 따라가냐며 아무도 신청을 안 했으니, 이번 탐사단 취재는 광주매일 독점입니다.”
뜻하지 않게 ‘단독 취재’의 행운(?)을 거머쥔 것입니다.
그러나 행운은 거기까지였습니다. 항해 3일째인 12일 밤, 대한해협을 건너던 탐사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맞닥뜨립니다. 호위선 연화호가 폭풍우 속에서 기관 고장을 일으켜 4시간여 표류를 하며 난파 직전에 몰립니다. 결국 일본해상보안청에 긴급구조(SOS)를 요청한 뒤에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날밤, 인근 해역에서 폭풍우를 이기지 못하고 화물선 두 척이 침몰했다는 얘기를 나중 전해 들었습니다.
영암군에서 탐사단 귀국 환영회가 열린 날, 당시 김철호 영암군수는 평생 못 잊을 환영사를 남겼습니다.
“탐사대원 생명보험을 들려고 했는데, 국내 어느 회사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위험하고도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도전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겁나는 도전이었습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며 ‘겁나는 도전’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광주매일에 흐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즘 참, 겁이 많아졌습니다.
겁 많은 속마음이 이제야 드러나는 것일 테지요.
그럴수록 30년 전 광주매일 시절이 그립습니다.
‘겁이 없어, 뜨거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뜨거움이 살아 있던 그 분위기가, 서른 살이 된 광주매일신문. 그리고 앞으로의 광주매일신문에도 남아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