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13) 다만 신선의 생황 소리가 물씬 빠져들기만 하구나 |
| 2021년 05월 25일(화) 1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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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
해가 떨어지자 물 모래 더욱 희고
구름이 옮겨 가니 물이 맑아지는데
고인의 달구경에서 생황 소리 빠졌네.
日落沙逾白 雲移水更淸
일락사유백 운이수갱청
高人弄明月 只欠紫鸞笙
고인롱명월 지흠자란생
우리 선현들은 음풍농월이라고 했다. 바람을 읊고 달을 희롱한다는 직역의 의미는 선현들의 시심을 한결 풍부하게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달 속에서 계수나무를 캐어 담았고, 바람 속에서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 시심을 맛보았다. 바람이 불면 댓속에서 대의 속삭임을 들었고, 달 속의 항아가 반기는 깊은 마음을 담아냈다. ‘해가 서산으로 떨어지자 물가의 모래는 희고, 구름이 옮겨 가니 물이 다시 맑게만 보인다’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다만 신선의 생황 소리가 물씬 빠져들기만 하구나(漢浦弄月)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으로 고려 말의 문신이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의 남행을 호종, l등공신이 된 후 좌승선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1367년 대사성이 되자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강론했다. 성리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저서로는 ‘목은시고’(牧隱詩藁)가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해가 서산으로 떨어지자 물가의 모래 희고 / 구름이 옮겨 가니 물이 다시 맑게만 보이구나 // 뜻이 고고한 선비가 밝은 달을 구경하는데 / 다만 신선의 생황 소리가 물씬 빠져들기만 하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한포(한강)에서 달구경하다]로 번역된다. 시인이 조선의 개국과 함께 얼마간 한성인 서울에서 거주하며 시상을 일으켰던 작품으로 보인다. 현대식에 따라 한강의 변화는 숱한 질곡을 보냈다. 댐 공사로 인해 물의 양은 지금보다 적었겠지만, 유유히 흐르는 물이며, 자연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는 상황에서 한 많은 감회도 남달랐을 것이다.
시인은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 한 점을 보면서 모래사장을 응시하며 시상의 주머니를 훌훌 털었으리라. 해가 떨어지자 물가의 모래 빛깔은 더욱 희고, 구름이 옮겨 가니 물이 다시 맑다고 했다. 흰 모래사장이나 구름까지도 맑다 했으니 흰옷과 아리랑을 좋아하는 백의민족이란 기상을 생각했을 것이다.
화자는 전경에 이은 시상은 후정의 마음인들 그 뜻을 다 펼 수는 없을 것이다. 고인(高人)이 밝은 달을 구경하고 있는데, 다만 신선이 부는 생황 소리에 그만 풍덩 빠지고 만다는 시상을 이끌어 냈다. 단지 신선들의 피리만 없을 따름이지 이 정경, 이 흥취가 바로 신선의 세계가 아니고 무엇이랴 라는 소회를 담아냈다.
※한자와 어구
日落: 해가 서산으로 떨어지다. 沙: 모래가 희다. 逾白: 더욱 희다. 雲移: 구름이 옮기다. 水更淸: 물이 곧 푸르다. // 高人: 뜻 높은 선비, 속세를 떠나 사는 고사(高士). 弄明月: 밝은 달을 희롱하다. 只欠: 다만 빠져 든다. 紫: 자줏빛. 제왕 집 빛깔. 鸞난새. 笙: 생황. 紫鸞笙 : 신선이 부는 피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