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조선 처녀의 춤’ 출간한 김정훈 교수

“일제강점기 조선인 애환·남북분단 다룬 양심적 작가 주목”
일본 역사상 판금조치 당한 유일한 여류시인
해방 전, 조선 관련 시편 등 50여편 번역·해설
조선인과의 연대·인권회복 열망 재평가돼야

김다이 기자
2021년 05월 31일(월) 19:38
김정훈 교수는…
▲전남과학대학교 교수 ▲일본 간세이가쿠인대학교 문학박사 ▲주오대학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역임 ▲일본근대문학 연구 ▲저서 ‘소세키와 조선’, ‘한국에서 바라본 전쟁과 문학’
일본 역사상 판금 조치를 당한 유일한 여류시인으로 알려진 마쓰다 도키코의 저항시집 ‘조선처녀의 춤’이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의 번역으로 국내에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인 출신 여류시인의 저항시집이 국내에 소개 된 것은 최초여서 의미가 남다르다.

‘조선처녀의 춤’ 시집은 마쓰다 도키코가 해방 전에 쓴 시들과 조선 관련 시편 등 50여편의 시를 한 데 모았다.

마쓰다 도키코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일본 내지의 조선인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나눴고, 치안유지법으로 일본권력의 문화통제가 엄격한 상황 하에서 그러한 교류체험을 바탕으로 조선인들의 애환과 삶의 의지를 담은 작품을 발표한 양심적 작가이다.

저항시집이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김 교수가 노력하고 열정을 쏟았다. 마쓰다 도키코 연구에 줄곧 몰두해온 김 교수를 지난 25일 곡성군 대학로에 위치한 전남과학대 연구실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마쓰다 도키코의 시집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

-마쓰다 도키코는 1935년 일제강점기에 동인사에서 첫 시집 ‘참을성 강한 자에게’를 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이 내용은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내용이라며 판금을 시켰다. 그동안 판금 조치 당한 것에 대해 울분을 안고 살아온 마쓰다 도키코는 해방 이후 60여년이 지난 1995년 후지출판에서 복각본을 출간했다.

그 후기에 심경을 밝히는 내용을 보고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보통 작가들은 작품을 내는 것을 출산에 비교를 하는데 마쓰다 도키코는 판금시킨 것에 대해 자신이 낳은 아이의 목숨을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문장을 보게 된 것이 재작년 겨울이다.

왜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일본 정부에 대해 얼마나 작가가 한을 품어왔는지 연구자로서 그러한 점을 중요하게 인식하게 됐다. 작가가 조선인과 인간적 교류를 하고 조선 문화와 전통에 관심을 기울인 사실이 상세히 밝혀진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상당히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국내에 번역을 해서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일본 제도권에서 평가하는 인기 작가들 위주로 소개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우리도 그러한 작가와 작품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우리의 토양에서 일본의 문학이나 작품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국내에 소개하게 됐다.

▲시집의 구성은 어떻게 되나.

-일본에서 나온 마쓰다 도키코 자선집 9권 ‘사라지는 땅의 고향’에서 해방 전의 시들을 발췌했다. 그리고 해방 이후의 조선에 관한 시편을 넣었다. 그중 ‘조선 처녀의 춤’이라는 시가 마쓰다 도키코의 조선상이 잘 드러난 시이기 때문에 타이틀로 붙였다. 총 55편 정도 되는 시의 해설을 붙이고, 뒤편에 작가의 연보를 집어넣었다.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행간을 조정하기도 했다.

▲마쓰다 도키코 시집만의 독창성이 있다면.

-그녀는 가난한 광산에서 태어났고, 광산 노동자들의 힘든 일상을 보고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문학으로 노동자들의 애환이나 고통, 고뇌를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직접 눈으로 지켜본 체험에 근거해 문학 활동과 실천 운동을 전개하며 노동자들의 인권 극복을 위해 애쓴 시인이다.

즉 노동계급과 소외계층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들을 대변해서 직접 발로 뛰며 실천 문학을 펼쳤다는 점을 독창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쓰다 도키코는 사건이나 내용을 접하고 반드시 글로 옮겨서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고 토로까지 한다.

사회적 모순에 고뇌하면서 활동을 한 일본의 진보 작가가 여러 명 있지만 일본 내지에서 조선인들과 함께 직접 인권 운동을 펼치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집필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당시 식민지시기에 일본에서 조선인은 노예로 가장 하층의 소외된 계급이었는데 이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하고 함께 투쟁하면서 리얼리티한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조선인들의 생존권에 대해 언급한 작품이 여러 편이다.

▲시집을 번역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작품이 있다면.

-권력에 대해 저항의식을 갖고 발표한 시가 대부분인데 특히 가족을 소재로 쓴 시가 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등이 그런 작품이다.

마쓰다 도키코는 가정환경이 대단히 불행했다. 첫 번째 아버지는 광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홀어머니는 광산회사 측에서 미망인에게 연립주택을 빌려주지 않아 재혼을 택했고 두 번째 아버지를 맞이했지만 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어머니는 살아남기 위해서 세 번째 남편을 맞이하게 되는데 굉장히 폭력적이었다. 세 번째 아버지는 모녀를 폭행했고, 어머니는 마쓰다 도키코를 더욱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면서 애틋한 시선을 투사했다. 이렇게 모친의 사랑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하게 돼 작품 속에는 밑바탕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의붓아버지가 자신을 범하려는 사건까지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아버지에게 대한 애증, 또 한편으로는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는 갈등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시도 남겼다. 하지만 아버지의 해고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고, ‘어머니의 손을 이끌고 같이 투쟁에 나서는’ 장면이 있어서 인상에 남는다.

▲시편 중에 반전·평화에 대해 다룬 작품도 소개해달라.

-1945년 해방 바로 전 일본이 패망·패전하는 당시에 쓴 작품이 있다. ‘무제’, ‘태양이여’, ‘엄마’, ‘보리’ 이런 작품들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올케언니의 조문을 다녀오다가 미국이 도쿄에 폭탄을 터트리면서 인명살상 도쿄대공습을 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도쿄 시내에서 집들이 소실되는 그러한 비참한 광경을 보면서 엄마의 안부를 묻는 장면과 보리나 태양에 반전의식과 일본 패전에 대한 심경을 담은 작품을 썼다.

국내에서 한일 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일제의 ‘근로정신대 할머니’ 강제 징용, 즉 당시 전쟁을 위해 일제가 노동력 착취를 일삼을 때에 시를 통해 반전의식을 새겼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상황을 염려한 시도 있다는데.

-일본에서 제국주의를 비판하거나 사회 모순을 직시한 시는 있지만 한국전쟁이나, 분단의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고,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일본 시인의 시는 그다지 없다.

그러나 마쓰다 도키코는 ‘조선 휴전’, ‘8월의 염천에’, ‘호송차에서’ 등 전쟁과 남북분단을 고통스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를 남겼다.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일본이 무기를 팔지 말아야 한다고 했으며, 나아가 조선의 통일을 열망했다. 조선의 민족통일을 강조하며 현실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인식하는 내용을 작품으로 남긴 일본인 작가는 흔하지 않다.

▲일본에서 시집은 우리나라보다 읽히지 않는가.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김소월 등의 시인은 물론, 한용운, 윤동주, 이육사 같은 저항시인의 시집이 가정의 책꽃이에 한 권씩 꽂혀있다. 국내에서는 시인이 정치 지도자나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시의 영향력이 우리처럼 강하지 않다.

우리는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며 예전의 김지하, 박노해 같은 시인이 주목을 받기도 했고, 분단 극복 의지를 다질 때나 통일을 노래할 때 민중은 문병란 시인의 시를 떠올리기도 한다. 한국의 민주화를 앞당긴 5·18민중항쟁 때 시로 광주의 상황을 세상에 알린 이는 김준태 시인이었다.

하지만 일본 주류문단에서는 순수성이나 형식, 예술성을 강조하는 편이어서 예전부터 우리가 일컫는 소외 계층을 대변하거나 부당한 사회 현실에 맞서는 참여문학을 제도권이 수용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시 자체가 우리보다는 읽히지 않거니와 특히 그러한 시는 비주류 표현양식으로 취급되고 있다. 일본에선 장르 소설, 추리소설, 사소설 등이 대세인데, 일부 국내 독자층에서도 보이는 현상이어서 안타깝다.

▲우리의 시점에서 마쓰다 도키코 시집의 의의를 찾는다면.

-마쓰다 도키코는 일제강점기임에도 제국주의에 맞서, 민중을 억누르는 대상에 저항하는 시를 썼다. 시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권력에 정면으로 대항한 시인들이 국내에 여럿 있다. 권력 탄압에 대한 투쟁 의식이나 저항의 측면에서 보면 시적 분위기와 지향점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국내의 시인과 비교, 수용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나아가 마쓰다 도키코의 시적 주제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서 국제적인 연대까지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노동자, 농민 계층, 소외 계층을 대변하는 것은 물론, 국경과 이념을 떠나서 부당한 자본가의 횡포와 권력을 견제하고 동아시아 민중들이 서로 연대하며 평화와 민주주의, 인권회복을 위해 손 맞잡고 나아가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저항작가의 연구, 번역의 시점에서 활동을 펼치는 소감은.

-우리의 시점에서 보면 사회적 의의가 있거나 평가의 대상이 되는 작가나 작품인데도 어두운 역사와 함께 갇혀 있었거나 양지로 나오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일본 권력에 순응하지 않은 작가, 제도권에 역행하는 작가에 대한 일본 내의 평가가 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마쓰다 도키코의 경우는 제국주의시대 조선인들의 고뇌와 애환을 그렸고 그들과 연대를 실천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소개가 거의 없다. 그 시절에 조선인들과 함께 투쟁하며 그 내용을 집필한 작품이 환영받는 분위기 아니었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소개돼야 마땅하고, 특히 한국의 시점에서는 그런 작가이기에 적극 수용해야 하며, 재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집이 나와서 다행이다. 인기 작가가 아니어서 상업성을 염두에 두는 일은 없고 그래서 고통스러울 때가 있으나 그런 작가나 작품을 귀하게 여기며 연구, 소개하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

/김다이 기자
김다이 기자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jdaily.com/1622457483547210052
프린트 시간 : 2021년 12월 01일 18: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