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항과 저항문학을 넘어 / 탁인석 |
| 2021년 06월 08일(화) 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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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재산을 걸어야 할 만큼의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면 저항으로 지켰으니 이후는 잘 살게 되느냐하면 그렇지도 않고 팍팍한 생활의 연장이기 십상이다. 전라도가 무슨 죄가 있을 리 만무한데도 위협당하고 수탈당한 세월이 연속이다. 백제가 무너지고, 삼별초군이 패퇴하고, 정유재란에 쑥대밭이 되고, 동학군의 본거지임에도 풀잎처럼 쓰러졌고, 광주 학생의거나 4·19혁명, 5·18에서도 목숨 건 저항의 선봉이었을 뿐 처절한 역사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천년 세월에 중앙 정부로부터 소외되고 차별 받은 역사의 유전자가 줄곧 이어 내려온 때문일까. 1980년 광주의 5월, 계엄령이 선포되고 전국 대학에 계엄군이 진입한다. 일요일임에도 우리 지역은 전남대 조선대를 중심으로 가열찬 저항이 시작되었다. 공수부대와의 대치 앞에서 ‘뭉치자, 뭉쳐야 산다’는 구호를 내세우며 ‘살아야겠다’는 일념만으로 시민 저항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하이라이트는 택시 200여대와 버스 10대가 불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금남로를 질주한 시위였다.
조비오신부의 말씀대로 나라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키고 폭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시민들은 못할 일이 없었다. 5월27일 새벽에 연이어 울린 총성에 쫓기듯이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는 지금도 여전히 고통스럽다. 광주의 결사항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순간의 일이었다. 그 같은 저항을 겪으면서도 광주는 사람사는 세상의 자유를 지켜냈고 지구촌을 향하여 민주주의의 거대한 깃발을 휘날릴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필자는 문중의 한 사례를 소개하려한다. 많은 사람들은 안중근의사는 알아도 탁공규의사는 모른다. 탁공규 의사는 안중근과 단지(斷指) 동맹도 맺었고 중국 하얼빈에 학교도 설립하면서 원수의 나라 일본을 향해 정면으로 맞섰던 인물이다. 탁공규와 안중근, 두 젊은이는 만약을 대비해 하얼빈은 안중근이, 만주 봉천은 탁공규가 맡기로 했으나 이토히로부미가 하얼빈역에 내리는 바람에 안중근의사의 총알이 이토를 저격한 것이다.
일경의 체포령은 탁공규의사도 동일하게 내려졌고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의사와 함께 처형되었다. 이런 터에 탁공규의사의 애국정신을 울컥 심정으로 충혼비 건립성금을 호소하니 주머니를 여는 이는 전라도 탁씨 종친뿐이었다. 아, 우연이 아니었구나. 매 위기 때마다 분연히 일어서서 사생결단으로 나라를 지킨 이는 호남인이었고 의병장의 60퍼센트가 호남인이었다는 사실이 웅변되는 순간이었다. 이토의 심장을 누구의 총알이 관통했느냐의 차이일 뿐 독립투사 안중근과 탁공규 두 분의 애국심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저항은 작가들의 의식을 움직이는 내밀한 에너지다. 이른바 저항문학이 그것이며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 하에 프랑스의 저항운동에서 일어난 레지스탕스 문학은 사르트르, 카뮈 등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저항 문학도 이에 못지않다. 일제 강점기라는 엄혹기에 최남선이나 이광수는 변절했으나 한용운, 이육사, 이상화, 심훈, 김광섭, 김영랑, 윤동주 등은 온몸으로 조국의 백척간두를 막아내며 광복의 그날을 노래한 것이다.
군사독재에 맞선 저항문학 또한 김지하, 김수영, 신동엽, 박노해 등의 언어가 저항의식의 소중한 성과였다. 역사가 더할수록 5·18을 담아낸 창작품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서 시작한 저항의 언어는 윤재걸의 ‘작전명령-화려한 휴가’, 박호재, 임낙평의 ‘윤상원 평전’, 한강의 ‘소년이 온다’ 등이 있고 2020년 광주문협 시분과에서 발간한 ‘그 도시의 열흘’ 등도 진실을 담아낸 상당한 성과였다. 어둠이 짙을수록 뚫고나온 빛살 또한 강렬하듯 2022년을 맞는 광주는 또 한 차례의 기로에 섰다. 전라도가 일어서느냐, 주저앉느냐의 선택이 그것이다. 모처럼 전라도 후보가 비상할 것인가, 그것이 관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