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광장서 5시18분, 멈추고 듣는 노래 / 주홍 |
| 2021년 06월 10일(목) 1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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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쿠데타에 맞서 모인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원형광장에 모였고, 어떻게 우리들의 삶을 지킬 것인가에 대해 발언했다. 지혜를 모았고 그 집단지성의 힘은 밥을 나누고 피를 나누는 대동세상 10일간의 시간을 공유했다.
1980년 나는 열세 살의 눈으로 그 광장을 보았다. 사람들은 총 앞에서도 용기 있었고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다.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 1980년 광주에서 있었던 항쟁이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1980년 5월26일, 오후부터 헬기에서 종이들이 눈처럼 뿌려졌다. 광주의 시민들에게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과 구 도청에 있는 시민군들에게 폭도들이 항복하면 살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도청에 끝까지 남는다는 것은 어떤 선택인가! 집으로 돌려보낸 고등학생들이 다시 도청으로 돌아왔다.
그 학생들은 왜 다시 돌아왔을까! 시민군 지도부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붙잡지 말고 그들을 비난하지 말자고 했으니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굴비처럼 엮여서 505보안부대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과 취조를 당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때 죽었어야 했다’라고 말한다. 그 기억은 5·18의 진실을 밝히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 외신 기자, 노먼 소프 기증자료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옛 전남도청 별관 2층에서 1980년 5월27일 아침 광주 최후의 항전에 목숨을 바친 열사들의 시신 사진을 보았다. 김동수 열사의 모습도 보이고, 윤상원 열사의 그을린 시신도 사진에 찍혀 있었다. ‘최후의 항전’에 남았던 오월 영령들은 이 도청과 민주광장을 성지로 만들었구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모습처럼 윤상원의 시신은 다리를 겹치고 누운 채로 그을려 있었다.
윤상원 평전이 세상에 나왔다.
최후의 항전을 함께 하고 살아남은 동지, 김상집 선생이 쓴 평전이라 더 의미가 있었다. 들불야학 이야기, 녹두서점 이야기, YWCA 이야기, 남동성당… 그리고 구 도청에서의 이야기!
그 장소들을 기억하고 있는 내겐 아주 특별하게 다가 왔다.
들불야학을 이끌었던 윤상원과 박기순 두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박기순은 1978년 12월 25일 성탄절, 야학에 지필 땔나무를 구하러 화정동 뒷산에 올라가서 장작을 모아 놓고 피곤한 몸으로 오빠 집에서 잠들어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다. 갑자기 누이 같은 동지를 잃은 윤상원은 장례 내내 박기순 곁을 지켰고 그는 1978년 12월27일 일기를 썼다.
들꽃같이 살다간 누이여
왜 말없이 눈을 감고만 있는가
두 볼에 흐르던 장밋빛
늘 서럽도록 아름다웠지
그대의 죽음은 내게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리 쳐다보아도 넌 아직 살아 있을 뿐이다
죽을 수가 없다
흰 솜으로 그대의 코를 막고
흰 솜으로 그대의 열린 입술을 막았을 때
난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 참말로 기순이는 죽어버린다고
그대는 정말 죽었는가
믿어지지 않은 그 죽음 앞에 모든 이들이 섧게 운다
모닥불이 탄다
기순이의 육신도 탄다
훨훨 타는 그 불꽃 속에 기순이의 넋은 한 송이 꽃이 되어
우리의 가슴속에 피어난다
윤상원 평전에 있는 이 일기를 소리 내서 읽다가 펑펑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