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한 곳, ‘인문 도시 광주’의 모습을 바라본다 / 최철

2021년 06월 13일(일) 19:12

최철 서경대 외래교수·협동조합 아시아문화예술정책연구소 이사장

요즘 시대의 트랜드로 인문 도시가 주목을 받고 있다. 문화도시와 함께 각광을 받는 인문 도시는 시대정신인 ‘인간 중심의 세상’을 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철학이 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공간이란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면 인문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인문 도시란 한 권의 책이라 말하고 싶다. 읽을 수 있는 도시, 책에서 풍기는 구수한 향과 같이, 인간 내음이 묻어 있는 도시라 이야기하고 싶다. 도시의 탄생과 더불어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발자취는 우리가 난관에 부딪힐 때 과거를 돌이켜 보며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우리가 지쳐있을 때 안식을 제공해 주고 있다.

현재 도시는 범죄와 향락이 물든 곳으로, 사회 약자들의 한숨과 가진 자의 끝없는 욕심의 질주가 난무하는 곳으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무한 경쟁과 이기적인 도시의 모습에 사는 우리, 상실의 시대 주인공인 작금의 도시인들은 무질서하게 성장하고, 정서의 사막화가 일어나는 도시의 어두운 터널로 내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내몰린 도시인들은 방황하며, 어렵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도시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길 원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에 관하여 답을 던져주는 곳이 인문 도시이다. 인문 도시는 깔끔하고 장대한 멋진 시설 안에서 거드름 피는 장소가 아니다. 도시 경쟁력을 재고한다는 명분 아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이유로, 과거를 허물고 새로 세우고 넓혀 그곳에 한데 수용하는 곳, 역시 아니다. 효율성이라는 미명아래 인간에게 강요되는 획일적 문화 이데올로기로 인해 양분되어 이분법적 논리 안에 사라져 버린 중용은 문화 다양성의 파괴로 도시를 분쟁의 공간으로 만드는데 이런 도시의 모습, 또한 인문 도시와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인문 도시는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를 보존하는 것이다. 담을 허물고 고층빌딩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의미를 찾고 그와 맞은 친화적 보전개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살아 있는 이야깃거리를 시대정신, 그리고 다양한 사상과 함께 융합하는 장소이다. 이러한 기반 아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공간 철학이 있는 도시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인문 도시일 것이다.

읽을 수 있는 도시는 내 마음의 강물이 흘러 삶의 숲을 바라보게 하는 행복의 호수이다. 도시의 가는 곳마다 이야기 마을이 있고 그곳에서 우리는 감동을 만나고 다시금 힘을 얻고 긍정의 소산을 통해 시대를 발전시키는 창조의 매개체가 된다.

광주는 우리의 선조와 부모 형제가 살아온 추억과 삶의 지혜가 있는 곳이며, 우리의 후손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그 발자취를 남길 곳이다. 광주가 이랬으면 좋겠다. 힘들 때 도시 이곳에 가면 도시가 나를 위로하고 저곳에 가면 기쁨을 함께 나누며 나눔을 통한 연대를 맛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광주에서의 분쟁은 싸움이 아닌 토론이며, 이곳에서는 타협과 양보를 통한 새로운 질서가 이야기되는 곳이길 소원한다. 모두 패자가 아닌 승자로 양보의 미덕으로 만들어 낸 풍습은 우리를 미소짓게 만들었으면 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요즘 사회 이슈인 정의는 단지 강조 안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광주 안에 있을 것이다.

획일화되어가는 광주의 모습이 안타깝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개발이라는 경제적 논리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도시의 순기능은 어디에 있는가를 자문해본다. 이런 모습은 비단 광주의 모습만은 아닐지라도, 인간 중심의 아젠다를 통해 도시를 인간 안에 담으려는 노력의 미흡함과 더불어, 광주만의, 광주다운 모습을 인문학적 견지로 바라보지 못하는 정책입안자들과 우리 모두의 안타까운 모습이 아닌가 사료된다.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인간 중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변하는 ‘인문 도시 광주’를 기대해 본다. 살만한 도시 광주가 사람 중심의 철학 위에 세워지고 발전하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