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하도급·비용 떠넘기기 관행 참극 불렀다 ‘건물 붕괴 참사 원인’ 전문가에게 들어보니 재하도급 철거비 20%-30% 떼…장비·인력·기간단축 불가피 다단계 하도급 엄정 처벌, 관계 기관 관리·감독 강화가 해결책 이종행 기자

2021년 06월 14일(월) 20:02

[해체 순서 위반…재건축 현장 점검] 광주 북구가 운암주공3단지 재건축 현장에서 해체 작업 순서를 지키지 않고 철거한 사실을 적발, 시공사를 상대로 건축물 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사진은 지난 12일 적발된 운암주공3단지 재건축 현장(사진 上). 이용섭 광주시장이 14일 오후 운암3단지 재건축사업 철거현장을 찾아 버스정류장 이설지역을 확인 하는 등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광주북구 제공·김애리 기자

광주 동구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참사는 불법 재하도급에 따른 비용 절감 떠넘기기가 참극을 빚어냈을 것이라는 동종업계의 의견이 나왔다.

한 마디로 다단계 하도급으로 공사 단가가 계속 낮아지면 공사 비용 절감 차원에서 장비와 인력 축소·공기 단축 등을 할 수밖에 없는데, 정상적인 공사가 이뤄질 수 없다는 얘기다.▶관련기사 2·6면

전남지역 철거전문업체인 모 회사 대표 A씨는 20년 이상 건물 철거 작업을 해왔다. 전문 분야는 일반 건축물과 아파트 등이다.

이번 학동 4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 사업 구역과 비슷한 곳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A씨는 이번 붕괴 참사와 관련해 각종 언론에서 보도한 사진과 동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붕괴 직후 한 동영상을 보면서 철거 현장의 ‘밥’에 주목했다. ‘밥’은 철거 작업 중 현장에서 나온 흙·자갈·건축 폐자재 등을 말하는데, 대개 해체 과정에서 건물의 붕괴를 막기 위해 해당 건물의 사면을 에워싸도록 돼 있다.

또 철거 작업은 이번 붕괴 참사 현장처럼 굴삭기를 이용해 고층에서 저층으로 차례대로 해체하는 방식과 크레인으로 건물의 콘크리트 등을 잘라내는 두 가지 방식 이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5층 짜리 건물을 철거할 경우 굴삭기를 이용해 5층부터 1층까지 차례로 해체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흙·자갈 등으로 건물의 일정 높이 만큼 ‘밥’으로 올려 쌓아야만 붕괴 사고를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재하도급을 받은 업체가 공사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밥’의 양을 제대로 채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현재 철거 공사 비용은 굴삭기 작업 기준 한 평 당 23만-28만원이다. 폐기물 처리까지 포함된 비용이다. 크레인 기준 비용은 평 당 30만-31만원이다.

만약 원청이 1만원의 철거 공사비를 주고 하도급을 줬다면 이 하도급업체는 이른바 ‘통행세’ 10-20%를 받고 재도하급을 내렸을 것인데, 재도하급업체 입장에선 비용이 다소 들지만 비교적 안전한 크레인 철거 방식을 택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또 ‘공사 기간 단축이 곧 비용 절감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수의 인력과 장비로 무리한 공사를 진행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추론했다.

A씨는 “이번 건물 붕괴 사고는 다단계 하도급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다. 처음부터 공사비 20-30%를 손해 보고 공사를 진행하는 것인데, 이를 최소화하려면 재하도급업체는 어떻게 하겠느냐”라며 “다단계 하도급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참극은 또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단계 하도급을 없애려면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엄정한 처벌과 함께 관계 기관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이종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