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덕목 / 오수열

2021년 07월 11일(일) 18:59

오수열 조선대학교 명예교수/광주유학대학 학장

언젠가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은 후배 학자와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어떤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학장님, 정치인의 제일 덕목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정치학을 전공하는 교수이기 때문에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현실 정치판을 생각하다가 불쑥 던져본 질문 아니겠는가.

하등의 망설임도 없이 필자의 입에서 불쑥 나온 대답은 “뻔뻔함이네”였다. 정치학을 가르칠 때는 정직이라거나 공의(公義), 또는 건전한 판단력 아니면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 심지어는 건강까지도 정치인이 갖추어야할 조건으로 거론하며 설명했던 내가 아닌가.

그러한 사람의 입에서 ‘뻔뻔함’이 정치인의 제일 덕목으로 거론되었는데도 그 후배 학자는 고수(高手)의 탁견이라며 무릎을 쳤다. 필자는 그의 반응을 요즘 전개되고 있는 세태를 보는 시각과 실망감에서 두 사람 간에 크게 차이나지 않았던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그 후배가 필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주제삼아 쓴 글을 읽게 되었다. ‘대학’의 증자(曾子) 말씀까지 인용하며 모든 사람의 눈총과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과 주장이 옳다고 우겨내는 뻔뻔함을 한자(漢字)로 바꾸어 보면 철면피(鐵面皮)·면장우피(面張牛皮)·후흑(厚黑) 등이 될 것이며 핵심은 부끄러움(恥)의 인지 여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보니, 그가 필자의 말에 ‘탁견’이라며 무릎을 쳤던 것은 사실은 ‘옳은 말씀’이라는 동감의 표시가 아니라, 부패하고 거짓말투성인 현실정치에 잘 적응하며 성공가도를 걷는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인이 지녀서는 안 되는 부정적 요소로 받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매우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니, 정치학자의 현실인식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했을까 몹시 궁금해졌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어찌 정치인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오히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덕목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 자신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살면서 부끄러운 일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人不可以無恥 恥 無恥之恥 無恥矣) ‘孟子(盡心 上)’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다시 대선정국(大選政局)이 눈앞에 다가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10여 명 내외의 예비 후보들이 난립하여 당내경선을 치루는 과정에서부터 상대방에 대한 공격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공격에는 방어가 뒤따르는 법. 공격에는 날카로운 창이, 방어에는 두터운 방패가 등장할 것이고, 이때에는 필연적으로 모순(矛盾)이 나타날 것이다. 모순이 일상화 되는 상황에서 어찌 이성(理性)과 정도(正道)가 지켜질 수 있겠는가.

터무니없는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이 난무할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옳고 그름’(是是非非)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을 어찌 선비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만, “선비는 궁하더라도 의를 잃지 않으며, 성공해도 도를 벗어나지 않는다.”(士 窮不失義, 達不離道)는 맹자의 말씀은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부디 이번 대선에서는 이러한 덕목을 지닌 대통령이 선출되어 ‘국민이 행복한 국가’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