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상황의 보편화, 자연의 경고 / 이성대
2021년 07월 29일(목) 19:52
이성대 시사평론가
과거에는 예외였던 현상이 이제는 보편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1942~)은 예외현상과 그 보편화를 주권권력의 통치술로 파악했다. 주권권력이 예외현상의 보편화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이런 일들은 사실 정치영역에서 역사적으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3권분립이라고 배웠지만 현실에서 입법권은 행정부와 국회가 나눠 가지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행정부의 입법권이 더 강력한 경우도 많다. 유럽의 주요국가에서 1,2차 세계대전의 위기상황으로 입법부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운 때 행정부가 예외적으로 행사했던 입법권한이 전후 평시에도 그대로 유지됐던 데서 유래한다. 즉 행정부의 입법기능 강화는 예외상황의 보편화라는 현상이 진행된 역사적 사례 중의 하나다. 입법권력과 집행권력의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은 어느 사이엔가 집행권력의 비대화라는 현상으로 변질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예외적 상황의 보편화라는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행된 탓에 오늘날 이런 현상을 민주주의 원칙의 변화로 인식하는 사람도 드문 형편이다.

예외의 보편화 현상은 역사적으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자주 목격된다. 과거 계엄령이 일상화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계엄체제는 전쟁과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 즈음하여 예외적으로 발령하는 긴급한 국가적 대응체제의 하나다. 그런데 이런 비상계엄이 수년간 지속된다면 이는 비상 상황에 따른 예외적인 조치가 아니라 보편화된 현상이 되는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정통성 없는 정권이 계엄령을 상시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만이 과거 국민당 정권하에서 40여년을 계엄체제에서 지내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역사에서도 위기 상황에 따른 예외적 조치였던 계엄령이 남발되거나 통행금지가 수십 년간 지속된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예외상황의 보편화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은 다른 경우로 믿고 싶지만 우리 정당사에서 ‘비대위체제’가 남발되는 것도 예외상황의 보편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비상대책위가 필요한 경우는 분명 있겠지만 이런 비대위 체제가 남발되거나 상시화되는 것은 예외상황의 보편화로서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음모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정치사회 영역에서 관찰되던 예외상황의 보편화 현상은 이제는 자연계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과거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여름철 기온은 섭씨 30도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0도를 넘는 폭염은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그래서 30도가 넘는 날씨가 나타나면 뉴스에 대서특필되고 펄펄 끓는 무더위로 표현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30도가 넘는 더위는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예외가 보편화되었다. 이제는 40도가 넘는 더위가 나타나야 예외적 상황의 전개로 인식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40도가 넘는 예외적 현상이 보편화된다면 이제까지 알아왔던 기후는 사라지고 기후변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과거 바이러스의 창궐은 단기간에 끝나곤 했다.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2015년 메르스 유행도 우리나라에 큰 인명 피해를 입혔지만 비교적 단기간 국지적으로 지속됐을 뿐이다. 그 이전 2012년 사스 유행에서는 우리나라는 크게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경과할 수 있었다. 이런 단기적인 바이러스 유행은 모두 예외상황으로 취급됐다.

하지만 작금의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은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는 비상사태이고 언제 종결될 지조차 알 수 없다. 바이러스 유행이 이제는 예외현상이라는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예외상황의 보편화는 이제 자연계에 대한 인간의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자연은 이에 대해 반격하고 있다. 자연의 입장에선 예외적인 경고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긴 듯 하다. 예외적인 상황을 보편화시키고 있는 자연의 무서운 의지를 우리는 무시해선 안 된다. 바람직한 대응이 무엇인지 인류 전체가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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