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맞서는 사람들]“생계 위해 버텨내야죠”…야외노동자 ‘힘겨운 여름나기’ 건설현장 근로자·택배기사 등 온종일 더위와 사투 이어가 전통시장 상인들, 코로나 확산세까지 겹치면서 ‘긴 한숨만’ 안재영·양시원 수습기자

2021년 07월 29일(목) 20:24

광주·전남지역에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공사현장 근로자와 택배기사 등 야외노동자들이 찜통 더위에 그대로 노출된 채 생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안재영·양시원 수습기자

“찌는 듯한 무더위를 어떻게 이긴답니까. 그냥 어떻게든 ‘하루만 버텨보자’ 생각하며 일하죠.”

광주지역에 내려진 폭염특보가 20여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마솥 더위 속에서도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현장 노동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 28일 오전 8시께 찾은 광주 동구의 한 건설현장.

하루 일을 시작한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시작된 불볕더위에 인부들의 얼굴 위로 구슬땀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외벽에 시멘트 바르는 작업을 하던 박모(52)씨는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외부에서 하는 작업이기에 내리쬐는 태양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여름철엔 더위만큼 힘든 게 없다. 가만히만 있어도 더운데, 안전모에 마스크까지 쓰면 고역이 따로 없다”고 토로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에 박씨의 옷 군데군데가 금세 얼룩졌다.

박씨는 “요즘 같은 날씨엔 열사병을 조심해야 한다. 조금 어지럽다 싶으면 이미 몸은 제어가 안 되는 상태가 된다”며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무리하지 않게 주의해야 안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택배기사 정모(51)씨도 이른 아침부터 재빠르게 움직였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처럼 배송해야 할 택배가 산더미처럼 남았기 때문이다.

오전 6시 광산구 오선동의 한 택배 영업소로 이동한 정씨는 무더위 속에서 분류 작업과 차량 적재로 사투를 벌였다.

곳곳에 선풍기가 놓여 있었지만 흐르는 땀을 식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작업 중이던 한 택배기사는 “더운 바람이 나와 오히려 더 힘들다”며 선풍기를 끈 채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방울을 닦아냈다.

잠시 뒤 레일이 멈춰서며 휴식시간을 알렸지만 쉬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배송하기 위해선 쉬는 시간 없이 작업을 이어가야하기 때문이다.

등 뒤로 내리쬐는 햇빛과 마스크 탓에 배달 기사들의 호흡은 더욱 가빠졌다.

따로 냉방시설이 없냐는 기자의 물음에 정 씨는 한 켠에 위치한 흡연장을 가리키면서 “옆에 벤치와 그늘이 전부”라며 “에어컨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답했다.

보냉조끼나 얼음물 등 더위를 달래줄 만한 용품들은 구비돼 있지 않았다.

분류 작업을 마친 기사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곧바로 배송 차량에 올라탔다.

정씨는 “이동 중 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 잠깐 쐬는 게 휴식”이라며 “이겨내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이다. 그저 가족과 기다리는 고객들을 생각하며 일할 뿐이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북구 말바우 시장도 찜통 더위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전통시장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뚝 끊겨 적막감만 맴돌았다.

가만히 있어도 등을 타고 땀이 흐르는 날씨에 상인들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 채 하염없이 손님들을 기다렸다.

노점 상인들은 부채질로 더위를 달래고, 얼린 생수병을 이마에 가져다 대기도 했지만 흐르는 땀은 여전했다.

채소를 팔던 이모(50)씨는 “폭염과 코로나가 겹치다 보니 없던 손님마저 줄었다”며 “주변 가게들은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도 “나 같아도 오늘 같은 더위에 시장까지 나오진 않을 것 같다. 시원한 마트가 있는데 누가 오겠느냐”며 “더워도 장사가 잘 되면 그나마 낫겠지만, 갈수록 손님이 줄어드니 걱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월20일부터 이달 28일까지 광주지역에서는 17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이 중 13건이 실외, 4건이 실내에서 발생했으며, 실외 13건 중 9건은 야외에 있는 작업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광주고용노동청은 온열질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작업장의 경우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일 경우 무더위 시간대(오후 2시-5시) 옥외 작업 중지를 권고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일손 부족 등으로 기본적인 안전보건 수칙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지자체와 협력해 무더위 시간대 옥외 작업 중지 권고 등 폭염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계도에 나서고 있다”며 “위반 사항이 적발될 경우 현장에서 즉시 시정 조치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발견될 경우 즉각 행정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안재영·양시원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