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
2021년 08월 19일(목) 19:40
김종민 논설실장
올 여름은 가장 뜨거웠다. 한반도에는 더운 고기압이 대기 중에 자리잡은 채 지표면 부근의 열기를 가두는 ‘열돔현상(Heat Dome)’이 덮쳤다. 최악으로 기록된 2018년과 비슷하지만 피부적으로 체감 정도는 심했던 것 같다. 기상특보가 일상이 된 무더위, 살이 데일 한낮의 땡볕에 사람도 가축도 목이 탔다. 더 이상 버텨내기 어려운 막다른 길,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인한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숨은 턱 막혔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최고 기온이 48.8도까지 치솟았다. 지구촌은 고온건조한 기후가 기승을 부린 가운데,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잡힐 기미가 없다. 캐나다와 미국 서부,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 지역의 숲이 타기 시작하더니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등 남유럽의 야산과 민가도 화마에 휩싸였다. 타락한 천사의 뜻을 가진 루시퍼라는 열파로 지중해 연안은 ‘성경의 묵시록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재앙’이라며 비명이다.

코로나와 폭염의 한복판에서 치러진 도쿄올림픽은 독도 영유권 억지부터 왕짜증을 불렀다. 돌이켜 보면 우리 선수단에 대한 편파적인 판정은 노골적이었고, 경기력 향상을 위한 도시락 제공엔 후쿠시마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불신을 키운다며 딴지를 걸고 나섰다.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권고 조차 비웃는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의 상징 욱일기의 무례는 또 어떤가.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당당했다. 태극전사들은 한 수 위의 기량을 과시하며 명승부를 펼쳤다. 4년에 1년을 더 기다린 무대에서 모든 열정을 쏟았다.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 문구가 적힌 이순신 장군 현수막, 독도가 그려진 ‘범 내려온다’ 현수막은 선수들에 힘을 북돋아 주고, 원팀 코리아를 만들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트집 잡은 일본은 조롱거리가 됐다.

정치권의 여름, 뜨거웠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권이나, 야권이나 할 것 없이 네거티브가 격해졌다. 무섭게 끓는 가마솥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국민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누가 당선되든 상관없다’. ‘다 똑같다’는 냉소가 넘쳤다. 이러다간 ‘투포(투표포기)족’이 속출, 궁극에 잿더미에 세운 나라가 되고 만다. 지나친 비관이라 강변할 수 있지만 상황은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과 물가 폭등, 자영업자 붕괴 등 경제 실정(失政)에 대한 뾰족한 해법이 당장 급하게 됐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인정부터 해야 한다. 선거 때면 빠지지 않는 돈이나 퍼주고 표를 사는 포퓰리즘의 유혹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국민의힘은 여태껏 서울시장 4·7재보선의 승리에 취해서, 20·30세대의 지지를 자신하는 자만함을 경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실패만 내세우고 반사이익만 노린다면 결코 승산이 없다.

정권 재창출이냐, 교체냐의 결정적 변수는 누가 잘해서가 아니라 누가 더 못하느냐다. 호사가들의 기막힌 예상이 들어맞고 있다. 야당 대표의 언급처럼 5% 내 포인트의 싸움이 될 것으로 참 우습다. 어느 때보다 많은 후보가 나왔지만 ‘도긴개긴’이라면 비참한 일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4차산업혁명을 선도해야 하는 시기, 미래 비전에 대한 외침은 들리지 않는다. 희망을 주는 공정 경쟁의 장인 거대한 이벤트는 흥행에 완전한 참패다.

이제는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처서(處暑)가 다가온다. 아침, 저녁께면 제법 찬 기운이 스민다. 이불이 필요하다. 덥다 덥다, 너무도 더운 한여름을 지나면서 이 더위가 가긴 가나 했는데, 신기하고도 오묘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천고마비(天高馬肥)’, 맑게 갠 푸른 하늘이 점점 드리우고 있다. 고단한 현실에서 꿈꾸는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만이라는 속설이 어쩌면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일, 그리고 또 내일, 평범한 날의 연속을 보장하는 것, 바로 국가와 정치의 영역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의 대형재난은 예고편에 불과하다며 향후 수십년간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 배출이 여전하다면 산불과 홍수, 가뭄 등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는 기록적이라는 말이 충격일 수 없는 ‘뉴노멀(new normal)’이 일상이 될 수 있는 암울한 전망이다. 인류 스스로 자초한 대혼돈이 엄습하고 있다.

가장 뜨거웠던 2021년 여름을 보낸다. 내년 이맘때쯤은 이 노랫말을 다시 흥얼거릴 수 있을까 싶다. ‘흥에 겨워 여름이 오면/ 가슴을 활짝 열어요/ 넝쿨장미 그늘 속에도/ 젊음이 넘쳐 흐르네/ 산도 좋고 물도 좋아라/ 떠나는 여행길에서 /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사랑이 오고 가네요/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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