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논산 명재고택과 노성산

명재고택 장독대에 배롱나무 꽃 피우다

2021년 08월 24일(화) 19:39
명재고택은 부드러운 산봉우리를 등지고 앞으로는 넓은 마당과 직사각형의 커다란 연못을 뒀다. 도로와 맞닿아 있는 연못에는 조그만 섬이 있고, 섬 안에서 고택과 함께 300년 세월을 보낸 배롱나무가 꽃을 피워 운치를 더한다.
논산-천안고속도로 서논산IC를 빠져나와 23번 국도로 접어든다. 주변은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논산 시내가 자리를 잡았다. 4차선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려가는데 계룡산(845m)이 군계일학처럼 우뚝 서 있다. 높게 솟은 계룡산은 주변의 낮은 산봉우리와 넓은 들판을 품고 있다.

계룡산 앞쪽에 노성산이 부드러운 모습으로 붕긋 솟아있다. 노성산 남쪽자락에 노성면소재지가 위치해 있다.

명재고택은 노성면소재지 뒤쪽에서 노성산을 등지고 둥지를 틀었다. 명재고택은 여느 고택과 달리 권위적이지 않다. 높은 담장과 육중한 대문이 외부와 차별을 두고 있는 사대문가의 고택과 달리 명재고택은 대문도 담장도 없이 마을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밖에서 보아도 고택의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살림을 하는 안채만은 담장을 둘렀다.

명재고택은 부드러운 산봉우리를 등지고 앞으로는 넓은 마당과 직사각형의 커다란 연못을 뒀다.

도로와 맞닿아 있는 연못에는 조그만 섬이 있고, 섬 안에서 고택과 함께 300년 세월을 보낸 배롱나무가 꽃을 피워 운치를 더한다. 배롱나무 아래 연못에 핀 백련 한 송이가 선비의 고고한 기상을 풍겨주는 듯하다.

연못 앞쪽에서 바라보면 왼쪽에 노성향교가, 오른쪽 뒤편에 명재고택이 사이좋은 형제마냥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연못을 지나 앞마당으로 다가가니 마당가 양쪽에도 커다란 배롱나무가 꽃을 피워 고택을 화사하게 꾸며준다. 마당에서 바라보니 기단 위에 팔작지붕을 한 사랑채가 기품 있게 앉아있다.

앞에서 볼 때 사랑채 왼쪽 뒤편에 안채가 있다.

안채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ㄷ’자형 구조인데, 안채 앞에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을 이룬다. 안채에는 윤증선생의 후손이 살고 있어 외부인들은 출입할 수 없다.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윤증 선생의 가옥으로, 그의 호를 따서 명재고택이라 부른다. 명재고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로 지정돼있다.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윤증 선생의 가옥으로, 그의 호를 따서 명재고택이라 부른다. 명재고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 숙종 때 지어진 명재고택은 조선중기 전형적인 호서지방의 양반가옥 형태를 보여준다.

명재 윤증은 임금이 무려 18번이나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했을 만큼 성품이 대쪽 같았다고 한다. 게다가 검소와 나눔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고 이런 가풍이 후손까지 이어져 동학농민전쟁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고택이 소실될 뻔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밖으로 개방된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세 개의 사랑방과 대청, 누마루로 이뤄져 있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있으니 마당과 연못, 마을과 앞산이 잔잔하게 다가온다. 사랑채 옆 마당에는 수백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다. 명재고택과 마당가 초가집들이 항아리와 어울린 모습이 한국적인 멋을 전해준다. 사랑채 오른쪽 언덕 위에서 느티나무 거목 사이로 바라 본 항아리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정겹다.
명재고택 사랑채 옆 마당에는 수백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다. 명재고택과 마당가 초가집들이 항아리와 어울린 모습이 한국적인 멋을 전해준다. 사랑채 오른쪽 언덕 위에서 느티나무 거목 사이로 바라본 항아리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정겹다.

노성향교는 1398년(태조 7)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됐다. 현재의 건물은 1967년과 1975년에 중수됐다.

명재고택을 둘러본 후 다시 도로변에 있는 연못으로 내려온다. 명재고택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노성향교에 들렀으나 문이 닫혀 낮은 담장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노성향교는 1398년(태조 7)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됐다. 현재의 건물은 1967년과 1975년에 중수됐다. 현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삼문 등이 있다.

명재고택에서 500m 쯤 떨어져 있는 애향공원으로 이동한다. 노성산을 오르기 위해서다. 애향공원은 노성산 등산로 초입이자 지역주민들의 휴식처이다. 애향공원은 2층 전망대 애향정을 비롯해 다목적 잔디마당과 야외무대, 출렁다리, 데크순환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다.

애향공원을 출발해 노성산에 오른다. 노성산 가는 길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임도로 시작된다. 노성산 임도는 노성면 주민은 물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논산시내에 거주하는 주민들까지도 부담없이 산책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한여름이지만 임도를 따라 걷고 있는 남녀노소들이 많다. 따가운 여름햇살이 내리쬐고 있지만 울창한 숲이 그늘을 만들어줘 더위를 식히며 걷는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임도는 노성산성으로 이어진다.
사적 제393호로 지정된 노성산성은 노성산 정상을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성벽둘레가 894m에 이른다. 산성에는 3개소의 성문과 봉수대, 장대지, 우물 4개소, 추정 건물지 11개소가 남아있다.

사적 제393호로 지정된 노성산성은 노성산 정상을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성벽둘레가 894m에 이른다. 산성에는 3개소의 성문과 봉수대, 장대지, 우물 4개소, 추정 건물지 11개소가 남아있다.

노성산성은 논산시 연산면의 황산성과 일직선상에 위치해 백제와 신라가 대치했던 최후의 방어선이었기 때문에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용됐다.

노성산성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훼손된 성벽을 학술조사를 통해 7차례에 걸쳐 보수 정비해 현재 17% 정도를 복원했다. 임도 옆 성벽 안에는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와 양철지붕을 한 민가 한 채가 남아있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상당기간 이곳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성산성을 지나자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사찰 같은 건물이 있다.

안내문을 보니 ‘금강대도’라는 종교의 성전이다. 금강대도는 유불선 진리를 하나로 통합해 1874년 이승여가 창시한 종교다. 성전 입구에는 배롱나무가 예쁘게 꽃을 피웠다. 성전 뒤쪽에서 금강대도 건물 지붕 너머로 바라보니 논산시내와 주변 들판이 드넓게 펼쳐진다.

금강대도 성전에서 아름드리나무로 뒤덮인 숲길을 따라 200m 정도 올라가니 노성산 정상(348m)이다. 노성산 정상에는 예전에 봉수대가 있었다. 노성산 봉수는 강화-수원-공주-논산-부안-나주-진도로 이어지는 제5거 직봉에 해당돼 국가의 위급사항을 알리는 중요한 통신시설이었다. 지금의 노성산 정상 봉수대 자리에는 2층 팔각전망대가 세워져있다.

팔각전망대에 올라서니 계룡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노성산과 계룡산 사이에는 푸른 들판이 자리를 잡았다. 주변의 낮은 산과 들판을 계룡산이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다. 대전과 계룡, 공주, 논산에 걸쳐있는 계룡산은 대전시와 충남 남부지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노성산 정상에서 남동쪽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하산길에서도 노성산성의 흔적을 만난다. 헬기장을 지나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온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지만 녹음을 이룬 숲이 청량한 기운을 전해준다. 옥리봉(252m) 근처에서 자동차를 주차해둔 애향공원으로 방향을 잡는다. 청설모 한 마리가 커다란 열매를 입에 물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여행쪽지

▶노성산은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윤증 선생의 가옥인 명재고택과 노성향교 등을 품고 있는 산으로 정상부 가까운 곳에 노성산성이 있다.
※코스 : 애향공원→노성산성→금강대도→노성산 정상→헬기장→옥리봉→애향공원
-거리, 소요시간 : 7. 3km, 2시간 20분 소요
-난이도 : 약간 어려움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노성산 애향공원 주차장(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3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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