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구례 천은사 ‘상생의 길’ 고요한 山寺 숲길을 걷는 것, 자체가 참선이고 수행 |
| 2021년 09월 07일(화) 1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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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는 성삼재로 올라가는 지리산 산악도로 초입에 있지만 성삼재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몇 년 전까지는 사찰에 들리지 않은 차량까지도 문화재관람료를 받아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지금은 성삼재 가는 차량은 물론 천은사 탐방객까지도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
‘천은사 상생의 길’은 천은사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폐지하고 나서 2020년 12월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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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길’이라는 이름 그대로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를 지향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천은사는 근거리에 있는 화엄사에 비해 탐방객이 적은 편인데,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상생의 길이 생긴 이후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으로 들어서는데, 붉은 줄기를 한 적송 숲이 일주문과 행복하게 어울려 있다. 화려한 다포계 팔작지붕을 한 일주문이 양옆의 낮은 담과 함께 승속(僧俗)의 경계를 이룬다. 일주문 현판에 쓰인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 글씨가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같다. 일주문 현판 글씨에는 천은사에 얽힌 사연이 서려있다.
천은사는 화엄사·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 중 하나로, 828년(신라 흥덕왕 3) 인도 승려 덕운이 창건했다. 앞뜰에 있는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해 창건 당시 감로사(甘露寺)라 했다. 1679년 중건하면서 감로사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구렁이를 잡아 죽였더니 그 뒤부터 샘에 물이 솟지 않았다. 샘이 숨어버렸다 해서 천은사(泉隱寺)로 개명했다.
절 이름을 바꾼 뒤 이상하게도 천은사에 원인 모를 화재가 자주 일어나는 등 재화가 끊이지 않자 주민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 주는 뱀을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했다. 이에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가 수체(水體)로 물 흐르듯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라는 글씨를 써 일주문에 걸었더니 이후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일주문을 통과하니 계곡가에 ‘상생의 길’ 상징물이 조각돼 있다. 상징물에는 상생의 길 안내도와 설명문이 새겨져 있다. 상생의 길 상징물도 천은사 일주문 현판 글씨처럼 굽이굽이 흘러가는 물줄기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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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과 상생의 길 상징물을 지나면 천은사를 대표하는 경치라고 할 수 있는 수홍루(垂虹樓)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위에 무지개다리가 놓여 있고, 교량 위에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2층 누각 수홍루가 세워져 있다.
수홍루는 생노병사(生老病死)라고 하는 고해를 건너 고통과 근심이 없는 피안(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는 피안교(彼岸橋)에 해당한다. 수홍루를 건너면서 세속의 마음을 청정하게 씻어버리고 지혜광명이 충만한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다. 수홍루를 건너면 천은사 이름과 연루된 전설이 있는 샘물이 있다. 오늘은 샘물을 덮고 있는 수각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 물맛을 보지는 못한다.
천왕문을 지나면 2층의 보제루가 단아한 모습으로 맞이한다. 보제루로 올라서니 천은사 중심건물인 극락보전(보물 제2024호)이 아담하면서도 화려하다. 극락보전과 보제루 사이에는 마당이 있고, 옆으로는 설선당과 회승당이 배치돼 천은사의 중심영역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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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에는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상이 있고, 그 뒤에 아미타후불탱화(보물 제924호)가 봉안돼 있다. 극락보전에 모셔진 아미타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탐·진·치)을 떨치지 못하고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참회한다.
극락보전 옆에서는 극락정토를 상징하듯 백일홍이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극락보전 뒤편 계단 위에는 팔상전·응진당·관음전 삼성각 같은 당우들이 또 하나의 영역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성적문(惺寂門)을 지나 계곡 건너편에 반야당(템플스테이)과 선원 등이 다른 한 영역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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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참배를 마치고 다시 수홍루를 건너 일주문 앞에서 시작되는 ‘상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상생의 길은 소나무 숲을 따라 이어진다. 솔숲 그윽한 오솔길을 천천히 걷다보니 내가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된다. 고요한 숲길을 걷는 것 자체가 참선이고 수행이다. 스님 한 분도 숲길을 걷고 있다. 천은사 스님들에게 이 오솔길은 참선하다 잠시 틈을 내어 포행하는 길이다.
길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깔끔하게 정비돼 있어 걷기에도 편하다. 계곡에서 물소리가, 숲속에서 새소리가 감미롭게 들려온다.
근래에 불사한 극락암 담장 뒤편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소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서 있다. 나무높이만 해도 10m가 넘는다. 사찰건물보다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는 천은사의 역사를 지켜온 산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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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아래에 있는 저수지를 왼쪽에 두고 걷는다. 잔잔한 저수지에는 산봉우리와 하얀 구름이 떠있다. 길을 걷다보면 최근에 지은 심원암이라는 암자도 만난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중간 중간 데크형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곳곳에 나무의자가 있어 조용히 쉬었다가기도 좋다. 데크길은 소나무들이 숲을 이뤄 운치를 더해준다. 저수지 제방을 걸을 때는 천은사를 감싸고 있는 지리산 봉우리들이 가깝게 다가오고, 아래쪽으로는 구례들판과 마을들이 평화로워 보인다.
제방길을 건너 천은사 성삼재로 통하는 도로를 만난다. 도로에는 방장산 천은사(方丈山 泉隱寺)라 쓰인 천은사 산문이 서 있다. 방장산은 지리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산문 안쪽에는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저수지와 도로 사이에 만들어놓은 데크길을 걷는다. 저수지 건너편에서 조금 전에 만났던 심원암이 손짓한다.
저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넓은 데크형 전망대에 길쭉하게 ‘천은사 상생의 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천은사에서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조용히 눈을 감고 목탁소리에 마음을 맡긴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천은사 상생의 길’은 화엄사·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의 하나인 천은사 주변과 사찰 아래 저수지 수변을 걷는 길이다. ‘상생의 길’은 자연과 사람이 교감하고(나눔길), 서로를 보듬어주는(보듬길), 모두가 함께 누리는(누림길) 자연이라는 의미로 세 코스로 이뤄져 있다.
※코스 : 일주문→불심원→제방→천은사 산문→수홍루
※거리, 소요시간 : 3.3㎞, 천은사 관람시간 포함 1시간 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천은사 주차장(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63-7)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