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을 여는 詩] 뚜껑을 따자 / 박희정 |
| 2021년 09월 12일(일)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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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뚜껑이란 뚜껑은 모두 따두자
스스로 묶어둔 함정에 다시 갇히기 전에
통 속에 들어있어 볼 수 없던 무엇들을
한꺼번에 왈칵 쏟아서 이리저리 뒤섞으며
하나로 어우러져서 맥을 이을 그때까지
애당초 우리 사이 그런 경계란 없는 거야
너를 받아들이고 나를 드러내는 일
좁다란 물꼬를 틔워 수액 받는 날처럼
(시집 ‘마냥 붉다’, 고요아침, 2016)
[시의 눈]
샴페인을 터뜨릴까요 펑! 하지만 찬장에 도로 둡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맥주병부터 따야겠지요. 고기를 뭉텅 먹다 끼욱, 콜라병을 들고 손자가 두리번거립니다. 저런! 녀석은 이빨로 씨름합니다. 이때 아빠란 우람한 사내가 번쩍 병을 빼앗아 듭니다. 애야 가만 있어봐, 주력 30년인 그는 젓가락 끝에 너털웃음 옮기듯 뚜껑을 휙 천장으로 발사시킵니다. 팡! 너와 나 속내가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스크 뚜껑을 덮은 지 3년째입니다. 한잔하세! 소주병 비트는 건배사를 다시 외워보지요. 삼겹살을 구우며 콜라병 따기를, 열사(熱沙)의 목에 부을 맥주병 그 뚜껑 젖히기를, 잔치의 신호탄 샴페인의 마개 튈 순간을, 그리고 또 있지요.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생일상에 와인병 딸 작키를 준비합니다. 헌데, 이들은 골목 상권들처럼 기다리고만 있군요. 우린 문이란 뚜껑 안에서 라면냄비처럼 부글거립니다. 남북 물꼬에도 마개가 걸림돌입니다. 뚜껑을 따자, 따아 버리자. 어우러지려는 물은 속에서도 출렁입니다.
박희정 시인은 경북 문경에서 나,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조집 ‘길은 다시 반전이다’(2008), ‘들꽃사전’(2011). ‘하얀 두절’(2020)이 있습니다. 그는 눙치는 넉살에 유머를 양념삼아 뿌리며 시 맛깔을 돋우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