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청년에게 코로나19는 2022년에 시작된다? / 임명규 |
2021년 09월 15일(수) 1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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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청년들은 왜 그토록 많이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가? 10대, 20대, 30대의 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삶을 포기하는 도시에서 민주, 인권,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는 일은 또 얼마나 공허한가?
아이러니하게도 전국 어느 도시보다 많은 청년들이 삶을 포기하고 있었던 그 기간에 광주시는 문화도시, 인권도시에 덧붙여 ‘청년도시 광주’를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를 브랜드화 하여 홍보하고 있다. 말과 현실의 간극이 지나치게 클 때 그 균열을 메우는 전형적인 방법은 어느 한쪽을 부정하거나, 거짓 환상을 만들거나, 균열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광주시는 ‘현재는 나아지고 있으니 괜찮다’라거나, ‘잘 대처하고 있으니 걱정마라’는 식의 대응을 반복할 뿐이다.
그런데 정말 안심해도 될까? 최근 광주시가 조사한 ‘코로나19로 인한 청년들의 삶의 변화 실태조사 보고서’(2021)를 보면, 사태는 더 심각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실직을 경험한 광주 청년은 24%가 넘는다. 광주 청년인구가 약 41만 명 정도이니 약 1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36%는 소득이 줄었으며 30%의 광주 청년은 빚이 늘었다. 대게가 생활비, 주거비로 쓰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전 세계의 청년 중 17%가 실직했다고 발표했다(2020). 광주 청년이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잔혹함은 전 세계의 평균치를 상회한다.
재난은 복합적, 연쇄적이고 총체적이다. 광주 청년의 60%가 코로나19로 인해 고독감을 느낀다고 한다. 특히 고졸 청년(73%), 미취업자(69%)에서 높게 나타났다. 미취업자의 60%는 현실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고, 광주 청년의 13%는 코로나19 여파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본 것으로 조사됐다. 무려 13%. 역시, 고졸 청년(20%), 미취업자(20%)에서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코로나19가 동물의 세계에서는 평등할지 모르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불평등하다. 특히 불평등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그 공격력은 약한 고리에 집중된다. 학력과 직업에 따라 피해는 더 집요해진다. 문제는 회복의 시간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극복과 상관없이 청년 피해가 장기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광주시는 위기의 극복보다는 부정, 환상, 무시란 방법을 선택해왔다. 이미 지난 2020년 11월 광주청년정책네트워크를 비롯한 청년단체들은 갑작스러운 청년예산의 삭감에 반대하면서 예산 확보와 함께 긴급한 코로나19 대책 수립을 요구한 바 있다. 청년단체와 이용섭 시장과의 면담 자리에서도 긴급한 코로나19 대책 수립은 재차 강조됐다. 이후 한참의 침묵 끝에 비로소 올해 5월, 이용섭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청년대책을 발표한다. 그러나 발표내용은 놀라웠다.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것 제외하고는 모두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이미 진행해왔거나 미리 계획된 사업이었다. 빈 껍데기를 들고 마치 새롭고 긴급한 대책인 듯 발표한 것이다. 민망함은 누구의 몫인가.
그리고 현재. 광주시의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광주시의 코로나19 청년 대책이 몇 가지 공개되었다. 대책에 대한 적절성과 실효성은 차치하더라도 이 대책을 집행하는 시기는 2022년 초이다. 느긋한 말의 속도는 긴급한 현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나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그 피해 대책이 실시되기까지 광주시는 딱 2년이 걸리는 것이다.
이미 서울시는 2020년 3월 코로나19 청년 피해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은 선재적인 대응(3월) 이후 실태조사(12월)를 선택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작년 12월 서울시는 서울청년들에게 “코로나19 속 청년, 더 이상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광주는 왜? 코로나19가 광주에는 2022년에 도착하는 것인가? 아니면 서울 청년의 삶이 광주 청년의 삶보다 2년 더 긴박하고 위중한 것인가?
광주 청년의 44%는 코로나19로 인한 소득감소를 ‘소비축소’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현실의 위기를 어떻게든 ‘혼자’서 견디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각자 알아서 위기를 극복해가는 청년도시 광주와 ‘정의롭고 풍요로운 광주’는 과연 양립 가능할까? 누군가는 하나를 부정하거나, 환상을 품거나, 양립자체를 ‘무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