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둑과 시간주권 / 임명규
2021년 10월 06일(수) 19:10
임명규 광주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
지난 대선에서 한 슬로건이 큰 반향을 일으킨 때가 있었다. 2012년 대선에서 손학규 후보가 내세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다. 1998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준비된 대통령”과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사람이 먼저다”는 후보자의 당선 효과가 성공한 슬로건을 만드는데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 손학규 후보의 낙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자주 회자되는 것을 보면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모두에게 저녁은 있다. 저녁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직장인에게 저녁 ‘시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리적·심리적으로도 저녁시간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저녁시간을 보장하겠다는 것 만큼 매력적인 정치적 슬로건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녁뿐일까? 시민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결정 할 수 있는 권한일 것이다. 우리에게 시간은 삶이며 때론 생명이고 또한 돈이지 않는가?

한국의 노동자는 연간 1967시간 일한다. OECD 평균(1726시간)보다 연간 241시간 더 일한다. 하루 8시간으로 계산하면 30일 넘게 더 일하는 것이다.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에 비하면 한국은 576시간(8시간 기준 72일) 더 일하고 있다. 좀 과장한다면 한국인은 12개월 일할 때 독일인은 10개월도 채 일하지 않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 ‘선택’한다. 일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은 동일하지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의 양은 한국인과 독일인이 다른 것이다. 한국에는 시간도둑이 사는 걸까?

더구나 한국 평균 직장 통근시간 역시 OECD에서 가장 긴 58분이다(2018). OECD 평균이 28분이니 약 2배를 넘어선다. 긴 노동시간에서 통근시간까지를 더한다면 한국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의 양은 더 줄어든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형태별 직장인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을 살펴보면 중소기업은 48.8시간인 반면, 공기업 및 공공기관은 45.4시간으로 나타났다. 직무별로는 생산, 기술직이 51.6시간으로, 전문직은 46.6시간이다(잡코리아, 2019). 시간 사용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개인이 갖는 ‘시간주권(working time sovereignty)’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시간주권을 보장하지 못하며 그것도 기업별·직종별로 차등적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일의 미래 보고서’(2019)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선택권이 확대되면 건강과 복지가 증진될 뿐만 아니라 개인과 기업 성과에도 긍정적 영향을 가져온다”면서 노동자의 시간주권 확대를 권고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 정착지원’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한 사업장에 장려금 지급하는 사업 진행하고 있다. 현재 보건의료노조는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과 공공의료 확충과 함께 보건의료산업 주 32시간제(4일제)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확실히 시간주권의 확립은 ‘주 4일제’ 주장으로 수렴되는 듯 보인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 혹은 반발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의 문제이다. 1848년 프랑스는 하루 12시간 노동제가 도입한다. 당시의 평균 노동시간이 14시간에서 16시간이었다. 1858년 호주에서는 건설노동자에게 8시간 노동제를 채택한다. 이후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첫 총회에서 8시간 노동제를 채택한다. 로버트 오웬이 8시간 노동제를 정식화 한 것이 1817년이니, 100년 만에 그의 주장이 국제적인 기준이 된 셈이다. 그리고 100년 후인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독일은 1967년에 주 40시간제를 도입한 이후 1995년부터, 프랑스는 2000년부터 주 35시간제를 실시하고 있다. 진통은 겪겠지만, 한국 사회는 시간주권의 확대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으로 갈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장 주요한 정책대상으로 접근해야 할 집단이 청년이다. 노동시장 안에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청년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청년에게 일자리를”이란 말은 청년에게 최소한의 노동시간이라도 보장해주란 뜻이다. 사실상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고 있는 최근의 청년일자리 사업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노동시간이라도 단기 인턴의 형태로라도 제공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노동시간의 보장은 노동시간의 몫을 둘러싼 배분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주권의 보장(노동시간 단축)은 고용 없는 저성장시대의 청년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는 분리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직장인의 “저녁이 있는 삶”과 청년의 “내 일이 있는 삶”이 반대말이 아니라 ‘이음동의어’가 될 수 있도록, 선거 슬로건을 넘어선 정치적 비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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