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박꽃 예찬 / 수필 - 주현진 |
| 2021년 10월 11일(월) 1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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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지붕 하면 박꽃을 잊을 수가 없다. 저녁 짓는 연기가 꿈결처럼 피어오를 무렵이면 올망졸망한 초가지붕마다 하얀 미소로 박꽃이 피어났다. 어둠이 짙어 갈수록 그 어두움에 대한 반항의 몸짓이듯 더욱 새하얗게 웃음 짓던 꽃. 그러나 지금은 회색빛 콘크리트와 검은색 기와에 밀려 그 모습을 찾기 어려운 박꽃은 우리들의 가슴속에서나 피어 있는 그리움의 꽃인지도 모르겠다.
근대화라는 물결은 우리들의 생활을 참으로 많이 바꾸어 놓았다. 물질의 풍요로움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실질과 능률의 숭상이라는 의식의 전환도 엄청나다. 개혁과 변화의 채찍질은 우리들의 현주소가 어디인지조차도 가늠하기 어려운 미궁 속을 헤매게 한다.
박꽃은 우리 한국의 꽃이다. 아니 바로 한국 여인들의 꽃이라고 해야 제격이다. 소박하고 청초하며 한껏 멋스러우면서도 매서운 절조를 잃지 않았던 옛 여인들의 모습은 어두움 속에서 더욱 하얗게 피어나는 박꽃의 이미지와 너무도 흡사하다.
몇천 년의 긴 역사를 이어 오게 했던 모체로서의 한국의 여인들은 흰옷처럼 소박한 심정으로 삶을 꾸려 왔다. 겉으로 드러나게 꾸미지 아니하고 숱한 시련을 미소 속에 녹이면서 끈질기게, 그러나 당당하게 삶의 복판을 걸어왔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으며 매무새 또한 흐트러지지 않았다. 비록 가난을 주렁주렁 매달고 살았을망정 정조의 은장도는 버리지 않았다. 역사상 걸출한 인물을 길러낸 한국의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강한 의지를 지닌 분들이다. 어머니의 강한 모습은 자식들의 가슴을 강하게 만들었다. 숱하게 밀어닥치는 고난과 역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자식들의 가슴 속에 깔려 있는 어머니의 강한 모습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어두움을 밝히는 박꽃의 매서움처럼 어머니의 의지는 시련에 처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도전의 매서움, 바로 그것이었다. 박꽃이 우리를 사로잡는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한없이 젖어 들고 싶은 포근한 정서일 것이다. 격의 없이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있는 따스한 정감이 박꽃 주위에 일렁이고 있다. 날이 서지 않는 꽃,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경계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는 꽃,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미 오랜 친구인 양 속마음까지 드러내 보임으로써 서로가 하나임을 느끼게 해 주는 꽃, 순수와 소박함이 빚어내는 이 하나 됨의 경지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안을 가져다준다.
소박하고 청초하며 어두움 속에서 더욱 새하얗게 피어나는, 매서움을 지녔으면서도 한없는 정감으로 주위를 밝히는 박꽃, 비록 근대화에 밀려 보기는 어렵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마다에는 쉼 없이 피고 또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현진 약력>
▲대한문학 수필, 동산문학 시 등단
▲대한문학 작가회장, 광주수필문학회
▲광주시인협회, 광주문인협회 회원
▲대한문학상 수상
▲수필집 : ‘기다리는 마음’, 시집 : ‘황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