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은 영암입니다 / 전동호

2021년 10월 12일(화) 19:14

전동호 前 전남도 건설교통국장

시월의 첫날, 땅이 열리는 인시의 끝입니다. 미명을 밝히는 불빛이 천황사주차장으로 들어섭니다. ‘자, 갑시다.’ 세 사람이 황금 일출을 보겠다며 하나가 됩니다. ‘월출산 같은 데가 없다니까. 전 세계에서 제일이여.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몰라. 마음의 평화와 원하는 걸 다 얻을 수 있는데도’ 한 발짝 한 발짝이 내일을 열어가는 길이란 말씀입니다.

천황사 초입입니다. 잦은 가을비로 계곡물이 많이 불었습니다. 우렁찬 소리가 좋지만 바닥은 미끄럽습니다. 안전한 가마를 자청합니다. 어디서나 도구이고 싶습니다. 논에 가면 쟁기, 사무실에선 펜이 되고자합니다. 작은 등불을 앞세웁니다.

‘바닷가는 무슨, 여기가 최고네. 그냥 누워만 있어도 좋아. 이 소리를 들어봐. 야, 너무 좋다.’ 바람폭포입니다. 물이 떨어지는 모습은 어둠에 가려 흐릿해도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휴대폰을 비디오 모드로 전환합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여’라던 복사꽃 할머니가 더 오르기를 주저합니다. 그렇다고 예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가시지요.

6시6분, 여명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책바위’ 사진 한 장 찍고, 구름다리를 배경으로 또 찍고, 가파른 데크와 돌길을 오르고 또 오릅니다. 바람대, 육형제바위 전망대입니다. 잠시 숨을 돌립니다. 30분을 넘어서니, 해가 오르기 시작합니다. 어디서 ‘깍깍’ 까마귀 소리가 참새의 재잘거림을 대신합니다.

바람은 지나고 해는 커져갑니다. 도화 오름도 나타납니다. ‘봐라’ 아직은 괜찮다, 시들지 않았다는 소리입니다. ‘월출산은 늘 선물인데, 세계에 자랑해야 하는데, 팔아먹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안타깝다는 말씀입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꼭 이루겠습니다. 반드시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천황봉으로 올라가야 할 시각입니다. 더 많이 보고 오겠습니다.

통천문입니다. ‘오늘은 아무도 없네요.’ 아니, 여기 넘으면 보일 거여. 그렇지, 봐.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경포대요’ 벌써? 대단하십니다. ‘광주에서 네 시 쫌 넘어 출발했어요.’ 금릉에서 오르신 분들입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는 천황봉, 구름이 장관입니다. 시악바우, 구림, 읍안, 영보와 장암까지 다 가리었습니다. ‘저기가 백룡산’ 손가락 사이로 희미한 풍광이 계속됩니다. ‘캬, 완전히 다 덥혔네. 이쪽에서 한 장만 찍어 주실래요?’ 그 가치를 아는, 김천 코코호야 김아무개 작가입니다. 시작은 미약했어도 이렇게 큰 기쁨으로, 선선한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옵니다.

하산길입니다. 바람대에서 동행할 분이 계십니다. “혼자 가시면 안 돼요”라는 요청이 30분을 넘었습니다. 인내의 한계였을까요? 먼저 내려가셨습니다. 나무 이파리가 많이 비었습니다. 벌써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일입니다. 내게도‘배 안의 밥알, 입 안의 말, 마음속 근심’까지 덜어내라고 합니다.

이렇게 월출산은 발길마다 큰 가르침이 함께하는 곳입니다. 예부터 왕인, 최지몽과 최승우, 도선국사, 조선 의병, 정약용 유배길 등 숨은 이야기가 많고 기찬 묏길도 좋습니다. 그런데 경포대, 월남사지, 백운동원림 등 금릉을 돌아 도갑사까지는 아직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다 연결하면 월하가도(月下嘉道)가 됩니다. 40여㎞를 걸으며 아담한 돌담 집에서 하루 이틀 쉬어가는 것도 가능하고요.

월출산의 동석(動石)이 색깔을 더하는 가을입니다. 넓은 육해(陸海)가 금물결을 타는 그 안에서 사계절 밥맛이 좋은 쌀, 붉은 홍시 대봉, 송알송알 황토고구마, 매력이 넘치는 한우, 신비스러운 무화과, 하우스 안의 멜론, 딸기와 토마토까지, 그 맛과 향이 거듭나고 있습니다. 더 나은 내일로 가는 풍요입니다. 그래서 시월은 역시 영암입니다.

목돌이의 교가대몽(敎家大夢)이 더 큰 꿈으로, 달빛도 반하던 월롱(月弄)의 발동기가 돌아가고, 종오(終吾)의 들소리가 범순이의 콤바인에 오르며 더불어 행복한 나날을 열어갑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명품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생각나누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