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의 광주땅 최초 이야기](25)우편통신

그 때 그 시절 만남의 광장 충장로 ‘우다방’ 아시나요
1897년 금동서 광주우체국 개국…1913년 충장로 이전
광주체신청 1949년 82명으로 출발 전남북·제주도 관할
1986년 무선호출서비스 개시…1989년 이동전화서비스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2021년 10월 21일(목) 19:48
조선시대 통신시설은 광주 북구 우산동 경양역, 광산구 선암역이다. 1970년대 중반, 중학교 때 자석식 전화가 집에 놓였다. 면소재지 사설우체국에 설치된 곳에는 전화교환원이 일했다. 1976년 광주우체국 앞에서 적십자사 헌혈캠페인에 참여했다. ‘우다방’ 공중전화박스에는 전화번호부가 매달려 있었다.

1981년 12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체신부에서 나가 분립한다. 이듬해 국산전자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전화 대중화시대가 열렸다. 2천만부나 발행된 그 책은 과연 몇 권이나 남아 있을까.

현재 전화가입자수는 무선 약 135만3천명, 인터넷 61만2천여명, 유선 39만5천명 정도이다. 휴대폰 직영매장은 345개다. 중앙로공원 건너편 금남로3가 1-11번지 옛 광주은행 빌딩에는 2001년 하나로통신을 거쳐 2008년부터 SK브로드밴드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말 광주에는 전남지방우정청과 관할 4개 우체국, 83개 우체·우편취급국, 우편집중국에서 1천29명이 종사하고 있다. 집배원은 북광주우체국 131명 비롯 434명이다. 지난해 소포·서신 접수물량은 4천여만통이고, 배달물량은 9천200만통이다. 우체통수는 광주 광산우체국 101개를 포함 324개가 설치돼 있다.
1920년대 광주우체국.(엽서,광주역사민속박물관)

광주 최초 근대우체시설은 1897년 12월25일 금계리 114(금동177)번지에서 개국한 광주우체사다. 1902년 광주-무안 전보사가 설치된다. 1905년 6월 접수우편물 174통(서장 85·엽서 45·등기 10·무료우편물 34), 배달우편물 395통, 직원 5명이었다.

1906년 7월1일 황금동 63번지에서 광주우체국으로 승격한다. 1908년 4월1일 전화통화호출사무를 개시한다. 일반 전화교환업무는 1911년 시작되고, 이듬해 138명 가입자를 대상으로 여자교환원 9명이 3명씩 3교대로 근무했다. 시내전화료는 월 5원으로 연간 60원이며, 3개월 전에 선납했다.

1913년 초 충장로2가 16번지에 신축이전, 업무를 시작한다. 1916·1931년 우편물은 통상우편 접수 344만5천123통·662만7천989통, 등기우편 4만6천871통·25만4천126통, 소포우편 2만3천948통·7만3천869통이다. 1963년 3층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신축하고, 1987년 4층을 중축한다. 2012년 동부소방서 서편 제봉로변 대인동 28번지로 떠난 뒤, 충장로우체국으로 존속한다.

1913년 3월 소지면 신덕리 5통 1호에서 송정우편소가 문을 연 뒤, 1920년 송정리 848번지, 1934년 840번지, 1969년 824-5번지로 옮겼다. 1926년 수기옥정, 1931년 본정, 1932 임곡, 1934년 금정, 1936년 비아, 1937년 대정정우편소가 설치된다.

1930년 상공인명록 223명 중 119명이 전화소유자다. 한국인은 10명으로 전화번호는 수기옥정 심덕선 224번, 송정리 유신길 44번이다. 요리집 북촌루 33번, 춘내가 121번이며, 일인 거부 시모야마(下山爲次)는 122번이다. 1935·1936년 광주우편국 전화가입은 573·616대와 공중전화 2대다. 전신은 발신 6만4천210·7만2천554통, 착신 7만4천563·8만6천893통이다.

광주체신청은 1949년 광주우체국 별관에서 직원 82명으로 출발, 전남북·제주도를 관할했다. 1950년 광산동 전남상공장려관 2층에 머물다 1953년 대의동 45번지 전남어업조합연합회 건물을 매입, 옮겼다. 1961년 2층, 1968년 3층 중축, 1979년 전남체신청으로 개칭한다.

1982년 전기통신공사와 분리되면서 임동 63번지로 새 건물을 지어 이사한다. 1986년 북광주우체국이 신설돼 청사를 같이 쓰다가 이듬해 다시 대의동 옛 청사로 돌아온다. 2003년 광주시청 북동편, 유촌동 840-3번지로 2011년 나가 전남지방우정청이 된다.
1990년대 광주우체국.(광주전남우정백년사,1997)

1993년 화정동 896번지에 지하1층·지상4층 서광주우체국이 개청한다. 1996년 우산동 1601번지에서 광주광산우체국도 선다. 1999년 쌍암동 689번지에 지은 광주우편집중국에서는 하루 100만통을 다루고 있다. 지난해 삼각동 779번지에 북광주우체국이 등장, 일곡시대를 열었다.

1939년 충장로2가 35번지에 부산지방체신국 공사출장소가 생긴다. 1941년 광주공무출장소가 된 뒤 1946년 광주전신전화건설국으로 개명, 1960년대 금남로2가 25번지에 있다가 1971년 화정동 765번지로 이전한다.
1980년대 장동 광주전화국.(사진으로본 광주백년,1989)

1957년 광주우체국에서 전신전화업무를 이관 받은 광주전신전화국은 이듬해 중앙국교 동편, 장동 제봉로변에 새 건물을 지었다. 터 내력은 최석휴 땅이다가 1949년 박인천, 1958년 대한체신사업협회에 속한다. 1964·1965년 전화회선·가입자수는 4천회선 2천620명·5천회선 3천835명이며, 전보는 82만6천777통·108만5천820통이다.

1971년 농성동에 서광주전신전화국, 1976년 북광주분국이 신설된다. 1976년 전화가입자수는 2만7천846명으로 주택용 1만5천790명, 업무용 1만1천635명, 공중용 421명이다. 전화국별로 보면 광주전화국 1만21명, 서광주 1만4천763명, 북광주 3천31명, 기타관서 31명이다. 전보는 1975년 43만6천311통에서 1976년 24만735통으로 줄었다. 1979년 전화가입자·전화기수는 5만2천691명·6만3천385대이다. 1986·92년 전화가입자는 19만1천375명·41만1천416명이다. 1995년 광주 전화회선·가입자는 58만2천400회선과 49만3천937명이다.

광주전파감시국은 1950년 송정우체국에 임시사무실을 두었다가 송정리 100번지에 수신기를 설치한다. 1952년 송정국교 남동편 도산동 875번지와 나주 산포 매성산 5-2번지에서 전남·북과 제주를 관할한다. 1980년 광주전파감리국으로 이름을 바꾼다.

1984년 창설한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식회사는 1986년 한국이동통신 전남지사를 중흥동에 두고, 무선호출기서비스(002)를 개시한다. 1989년 2월 이동전화서비스(011)를 전개하며, 유동청사로 옮긴다. 같은해 인천상사가 설립되고, 광주이동통신(015)도 허가를 받았다.
서석동 kt전남지사.(향토지리연구소,2021)

국제전화(002) 데이콤은 1984년 북광주전신전화국3층에서 개소, 1993년 말 중흥동에 지하 3층·지상 11층 건물을 신축한다. 한국통신 전남본부는 서석동 31-9번지 동구청 동편에 2001년 지하 3층·지상 14층 건물을 지었다. 건물 앞에는 문옥자 작 ‘무한공간의 대화’ 상징물이 서 있다.

1995년판 호남명감을 본다. 한국통신공사 전남사업본부와 광주전화국은 장동 31번지, 서광주전화국 농성동 100번지, 북광주전화국 신안동 16번지, 한국공중전화전남지사 신안동 2-9번지, 한국이동통신 전남지사는 유동 33-33번지에 있다.

1982년 강원도 화천 오음리에서 무전기와 1986년 화정동에서 삐삐·천리안과 살았다. 초로인은 광주그린밸트에서 세계최초 폴더본휴대전화기(5G)와 더불어 수불석전(手不釋卷)·수불석폰(phone)으로 지낸다.

청년 김창수는 전화기로 목숨을 연장, 으뜸나라 문화강국을 소원했다. 우리시대 대한민국은 아이티 초강대국이 돼 백범이 원하는 국가를 이룩했다. 사물인터넷·빅테이터·증강가상현실, 앱플레이 융합, 초연결사회를 선도하고 있다. 호기심 천국, 한글이 세계를 이끌 것이다.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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