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기억 / 천세진
2021년 10월 24일(일) 18:17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아프리카 노예사를 다룬 야 지야시의 소설 ‘밤불의 딸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뉴욕.’윌 리가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말했다. ‘할렘.’그 말이 하나의 기억처럼 떠올랐다. 그녀는 그곳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자신의 삶에서 그것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예감. 미래의 기억.”

그 문장을 읽었을 때, 벼락같은 것이 가슴을 쳤다. ‘미래의 기억’이라니! 기억은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릴 때의 것이다. 미래와 기억은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비슷한 조합의 제목을 가진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가 떠올랐다.

하지만 두 책이 말하는 미래는 아주 다르다. ‘오래된 미래’가 말하는 것은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적 삶에서 현대인들의 소모적 삶이 가져올 어두운 미래를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낭만적이고 교훈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로 상상할 수 있는 추상적인 미래다. 그와 달리 야 지야시가 ‘밤불의 딸들’에서 말하는 것은, 과거가 너무나 강력한 족쇄가 되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뿌리 깊은 운명이 미래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가혹하고 비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그 미래는 추상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같은 운명은 자유롭게 허락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브룩클린, 할렘 같은 공간에서 태어나 마약, 갱, 백인 경찰들에 의한 구타와 총격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운명을 갖게 된다. 그런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은 평범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극한에 가까운 노력이 있어야만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음울한 운명을 살아가는 주변의 친척과 이웃들에게서 자신의 운명을 감지한다. 야 지야시는 그런 운명을 ‘미래의 기억’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기억은 과거가 있어야 존재한다. 하지만 미래도 기억을 가질 수 있다. 과거가 쳇바퀴 돌 듯 재현된다면 과거의 기억이 곧 미래의 기억이 된다. 그러나 그런 기억을 가질 수 있는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다. 과거의 좋았던 것이 그대로 재현되는 행복한 미래의 기억이라도 인간들은 편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만드는 기억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회조차 유토피아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참혹한 과거의 기억이 미래에도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허락하지 않는 전형적인 디스토피아다.

누구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그런 마수(魔手) 같은 기억의 재현 사회가 한국에서 짙게 감지되고 있다. 한국의 청년들에게 야 지야시가 말한‘미래의 기억’은 미국에 사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에게만 찾아들 기억이 아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과거에서 자라난 독버섯 같은 기억의 포자가 이미 자신들의 미래에 퍼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법조계 출신 국회의원의 아들이 받은 50억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미처 먹지 못한 가방 속 컵라면이 자신들과 어떤 관계인지를 이미 알고 있다.

청년들의 그런 미래를 누가 만들고 있나? 기성세대의 성공했다는 인물들이 곳곳에서 청년들에게 말한다.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니 더욱 노력하세요!” 하지만 그 말은 거짓말이다.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을 미래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고, 청년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기성세대가 청년들이 스스로 개척해야할 기억을 만들고 있다. 그것도 아주 불공정한 방식으로 말이다.

미래는 기억하는 대상이 아니다. 후세에게 미래의 기억을 넘겨주지 않으려면 미래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 뒤로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여야 대통령 후보 대부분이 60세가 넘었고, 그들의 절대 다수가 법조계 출신이다. 참 기이하다. 특정 세대, 특정 직업군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를 두고 다투는 구조는 전혀 건강하지 않다.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은 모두 임기 제한이 있는데, 유독 국회의원들만 임기 제한이 없다. 끔찍한 기득권의 유지다. 기득권은 과거에 뿌리박은 암이고, 기득권의 득세는 과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기득권과 과거의 기억을 미래로까지 연장하는 탐욕으로는 결코 청년들에게 미래의 기억을 제조할 권리를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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