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30) 한 번 웃어서 말없이 푸른 물 굽어보네

2021년 10월 26일(화) 19:08

矗石樓(촉석루)[2] / 퇴계 이황
지난 일 아득해라 둥우리 학은 늙고
일렁이는 회포에 들 구름만 흐르는데
번잡에 시상은 없고 푸른 물 굽어보네.

往事蒼茫巢鶴老 懷搖蕩野雲浮
왕사창망소학로 기회요탕야운부
繁華不屬詩人料 一笑無言俯碧洲
번화불속시인료 일소무언부벽주


촉석루 우측엔 정약용의 ‘의기사기’와 ‘의기사중건기’ 시 1수가 판각돼 걸렸다. 의기사 입구에 논개의 충절을 찬양한 [의랑 논개의 비]는 개천예술제의 창시자이자, 지방 향토 시인인 설창수가 1954년 글을 짓고, 오제봉이 글을 썼다고 했다. 또한 진주성 입구에는 변영로의 ‘논개시비’가 서 있어 의기를 연상하게 된다. 지난 일들이 아득해라 둥우리 안의 학은 이제 늙고, 나그네 회포 일렁여라 들 구름만 떠나간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한 번 웃어서 말없이 푸른 물 굽어보네’(矗石樓2)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퇴계 이황(李滉:1501-1570)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다. 1549년 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 토계 인근에 한서암을 지어 그 곳을 거처로 삼았다. 1551년 계상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지난 일들이 아득해라 둥우리 안의 학은 늙고 / 나그네 회포 일렁여라 들 구름만 떠나가네 // 번화한 것은 시상(詩想)에 들어오지 않나니 / 한 번 웃어서 말없이 푸른 물 굽어보네]라는 한 덩어리 시상이다.

위 시제는 [촉석루에 올라서서2]로 번역된다. 1365년(공민왕 14년)에 처음 건립됐으며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촉석루는 본래 전쟁이 일어나면 유사시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 또는 경상우도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본부였다. 시인은 첫 구에서 [강호에 떨어져 살았던 지 며칠이나 되었던고 / 거닐다가 시를 읊고 높은 누에 올라 보네 // 공중에 비끼는 비 한 때의 변화라고 한다면 / 눈에 드는 긴 강은 만고의 흐름이려네]라고 했다.

시인은 선경에서 늙은 학을 은근하게 생각하더니만, 회포를 푸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 시상이다. 지난 일 아득해라 둥우리의 학은 점점 늙어 가고, 나그네 회포 하나 일렁이며 들판을 지나는 구름만 멀리 떠나간다고 했다. 자연의 적절한 묘사가 대학자의 눈에는 마냥 새롭게만 보였던 모양이다.

화자는 촉석루를 보면서 너무 번화해 차마 눈에는 다 들어오지 않다는 시상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심회를 피력하고 있다. 번화한 것은 막상 시상(詩想)에 들어오지 않게 되는 것이니 한 번 웃어 말없이 푸른 물을 굽어본다고 했다. 자연이 너무 아름다우면 시상도 막혔음을 심회했다.

※한자와 어구

往事: 지난 일. 蒼茫: (지난 일이) 아득하기만 해라. 巢鶴老: 둥우리의 학이 늙다. 懷: 나그네의 회포, 搖蕩: 일렁이다. 흔들려 움직이다. 野雲浮: 들 구름이 떠가다. // 繁華: 번화하다. 不屬: 속하지 않다. 詩人料: 시상에 들어오다. 一笑: 한 번 웃다. 無言: 말없다. 俯碧洲: 푸른 물을 굽어보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