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 ‘관동항 어촌뉴딜사업’에서 만난 사람들 / 이정록
2021년 10월 26일(화) 19:19
이정록 전남대 교수·前 대한지리학회장
필자가 해남군 화산면 관동항을 들락거린 지 10개월째다. 한국어촌어항공단이 발주한 ‘관동항 어촌뉴딜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차가운 북서풍이 몰아치는 3월 관동항 일대는 무척 썰렁했고 낯설었다. 하지만 요즘은 정반대다. 관동항과 관동마을과 관두산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진다. 짧은 시간 동안 장소에 대한 애착이 생겼나 보다.

어촌뉴딜사업은 낙후된 어촌과 어항을 지역 특성에 맞게 개발하는 생활 SOC 사업이다. 해양수산부가 주관한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 300개소에 약 3조원을 투입한다. 낙후된 어항과 항 포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전남이 많은 수혜를 받고 있다. 관동항은 2019년에 신청해 탈락했다. 2020년에 다시 신청해 선정된 운 좋은 케이스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 국 도비와 지방비를 포함해 약 89억원이 투입된다. 방파제, 연결호안, 어민센터, 공동작업장 조성 등 10개 사업이다.

어촌뉴딜사업 특징은 기본계획을 상향식(上向式)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개발계획 수립에도 주민 참여는 필수다. 하지만 어촌뉴딜사업은 더 엄격하다. 주민 대표로 구성된 ‘지역협의체’가 계획의 방향과 내용과 예산 배분 등을 모두 결정한다. 협의체 리더도 어촌계장이나 마을이장이 맡는다. 연구팀은 주민 의견을 수렴해 조정하는 조력자 역할이다. 계획수립 과정이 철저한 상향식이다 보니 연구팀은 주민들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상적인 몇 사람을 알게 됐다. 먼저 조충현 위원장이다(광주매일신문 시론, 2021년 4월28일자). 벼농사와 고구마 경작과 김 양식을 겸하는 2억(億)대 농어업인이다. 교회 장로답지 않게 강력한 카리스마 소유자다. ‘나를 따르라’다. 때문에 일부 불만도 있지만 사업 처리엔 속도가 난다. 어촌뉴딜사업도 그렇게 성사됐다. 그의 꿈은 ‘이곳 관동마을에서도 도시민 못지않게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후배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박남옥(51세) 사장은 ‘특화형 어민’이다. 벼농사는 짓지 않고 김 양식에만 치중한다. 도중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재기에 성공했다. 연간 위판액이 2억5천만원에 이른다. 차기 어촌계장을 맡아 봉사하겠다는 포부도 있다. 애향심이 남다른 의리파이자 두주불사형이다. 양식업 미래에 대해 토론하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해박하다. 이번 과제가 종료돼도 자주 어울릴 것 같다. 필자와 호형호제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김주희(39세)씨는 귀촌한 청년 어부다. 여수에서 태어나 관동으로 이주했다. 화산초교, 화산중, 해남공고를 다녔다. 관동 토박이나 다름없다. 고교 졸업 후 서울 근처에서 10여년 직장 생활을 했다. 재작년부터 부모님이 하던 김 양식을 도맡아 한다. 연간 위판액이 2억원 내외란다. 직장 생활과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수입이다. 현재 생업에 만족하는 그는 향후 통발(꽃게) 어업을 병행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김동언(34세)씨는 학사 어부다. 관동에서 태어나 화산초교와 화산중을 거쳐 해남공고에 들어갔다. 농부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강진농고로 전학했고 전남대 농생대를 졸업했다. 농업 후계자가 돼 부모님과 함께 6만평에 벼농사를 했다. 10년 전 김 양식에도 뛰어들었고, 연간 위판액은 2억5천만원 내외다. 남부럽지 않은 대농(大農)이다. 향후 축산업에 진출할 계획도 있다. 직전 어촌계장 출신답게 어촌뉴딜사업을 계기로 관동항 일대가 주말 어촌체험 공간으로 탈바꿈되길 바란다. 학사 어부답다.

조명훈(30세)씨는 막내 농부이자 어부다. 하지만 경력은 올해로 9년차다. 관동에서 태어나 화산초교, 화산중, 해남공고를 졸업했다. 체육교사가 되려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여의치 않자 미련 없이 자퇴했다. 군 제대후 어머님 반대를 무릅쓰고 농사꾼이 됐다. 벼농사만 하던 아버지를 설득해 2014년부터 김 양식에 뛰어들었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는 그는 조충훈 위원장 아들이다.

관동마을은 여느 농어촌 마을에 비해 잘산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김 양식 때문이다. 관동항 일대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천혜의 김 양식 보고(寶庫)다. 바다가 오염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유속이 빨라 조류 활동이 왕성하다. 해남이 고흥과 함께 우리나라 물김 주생산지가 된 까닭이다. 김 양식은 벼농사보다 순소득이 배가 넘는다. 그래서 부농들이 많고, 청년 농어부도 상대적으로 많다. 어촌뉴딜사업은 이런 선순환 구조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관동항 어촌뉴딜 기본계획’ 연구는 올해 끝난다. 하지만 관동마을과 교류는 계속될 듯싶다. 그동안 막걸리로 다져진 끈끈한 인연 때문이다. 농어촌을 바꾸려는 합리적 리더와 청년들이 살고 있는 관동마을, ‘지방 소멸’ 흐름을 비껴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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