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훈 교수의 일본 작가 비평](26)한국에서 바라본 마쓰다 도키코 우타고에 창시자 세키 아키코·도시코 형제와의 인연 |
| 2021년 10월 27일(수) 2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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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아키코는 1929년 ‘일본프롤레타리아 음악가동맹’에 참가해 초대위원장을 맡았다. 33년에는 선두에 서서 ‘음악가동맹’을 ‘일본프롤레타리아 음악동맹’으로 개칭했다. 이곳에서 작곡가와 연주자들은 합창곡과 가곡을 창작하고 프롤레타리아 음악 운동을 기치로 내걸었다.
우타고에 운동이 아키코의 주도하에 진보적인 청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첫발을 내딛는 것은 해방 이후다. 1948년 이들은 중앙합창단을 결성한다. 그리하여 53년 ‘제1회 우타고에 축전’이 열리는 것이다.
이들은 합창으로 평화운동을 펼치는 것을 목표로 원폭이나 반전의 테마도 창작곡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후 우타고에 운동은 노동조합이나 직장 동호회는 물론, 일반 대중 속으로 침투했으며 세키 아키코는 이 공적으로 55년 국제평화스탈린상을 수상했다.(소학관, ‘일본대백과전서’ 등 참조)
그의 여동생 또한 투철한 사회운동가였다. 도시코는 청춘기에 언니의 운동을 돕기 위해 북해도에서 활동하다가 투옥된 바 있다. 그것을 계기로 도시코는 마르크시즘을 받아들여 평생 여전사의 길을 걷는다. 그녀의 반려자 사토 슈이치도 여생을 옥중에서 보냈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사회운동과 사상 무장에 몰두한 셈이다.
그런 만큼 세키 도시코는 가정에서 미망인처럼 세월을 보내야 했고 낳은 애도 조산으로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마쓰다 도키코는 애절한 마음을 담아 노래한다.
-빼앗긴 자에게-
(전략)
감옥 속의 당신 남편이
얼마나 갓난아이를 보고 싶어하겠소
쐐기처럼 뾰족한 턱이랑
불꽃처럼 돋아난 배냇머리
아아, 나 또한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오.
하지만 갓난아기는 죽었소
피로 얼룩진 당신 몸의 바로 옆에서
단지 17시간 살더니―죽었소
그 옆에서 당신은 일어섰소
지금 난 1월 18일의 신문 석간에 머물러 있다오
몇 번이나 머물렀는지
하지만 난 골반이 빠지더라도 당신이 구축해놓은
성을 무너뜨려서는 안 되오.
하지만 슬프오!
친구여, 언니여, 앞장서준 사람이여
어떻게 우리가 갚으면 좋겠소
눈물로
아니면 언어로
……아아, 관자놀이가 억울해서 터질 것 같소.
알았소!
땅이 꺼지더라도 당신이 구축해놓은 성을
지켜내겠소.
(마쓰다 도키코 시집 ‘조선 처녀의 춤’, 범우사에서)
남편 사토의 검거로 인한 옥중생활로 세키 도시코는 홀로 출산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설상가상으로 그 갓난아기가 17시간 후에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그녀의 심경이 어떠했겠는가. 마쓰다는 절친으로서 그녀를 위무한다.
마쓰다와 사상적 유착관계를 맺은 세키 도시코는 출산 전후 비합법적 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유치장 생활을 하던 중에 보석으로 석방된 적이 있다.
그 후에도 재판을 앞두고 법정 출두를 거부하며 지하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마쓰다는 빚을 진 마음으로 운동에 ‘앞장서준’ 언니 아키코와 도시코의 이름을 되뇌며 형제가 구축한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성을 수호하기 위한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렇게 귀감의 표상이었는데 비운의 순간은 세키 도시코를 비켜 지나가지 않는다.
언니의 뜻을 받들며 언니 돕는 일에 헌신, 지하활동에 매진하다가 노동운동의 현장인 아사쿠사의 당구장에서 화재 사고를 만나 26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고 만다.
-애도의 노래-
그대가 우리와 함께
고동치는 사회에서 숨 쉰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외쳤네
아아, 그 아주머니(그대)가 출옥했다고!
하지만 기쁨은 우리의 무력감으로
그대에겐 투옥 생활 못지않은 괴로움의 나날
그대에겐 내리쬐는 태양 빛이 필요했네
넉넉한 저택과 투옥 기간에 잃은 피와 살
되찾아야 할 세끼의 식사와 무엇보다도
자유……
그것을 위해 투쟁이 필요했네
그대의 자상함의 근저에 품은 강철 같은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 겸허함 속에서 나는 보고 있었네
그대는 필시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리
빛나는 투쟁의 역사, 이미 그 역사를 이룬 이들
하지만 독살스레 패잔의 모습에 젖어 있던 기간
그대는 결연히 투쟁을 선언했네
그대에게는 바야흐로 날개가 있었네
투쟁으로 연마한 암컷 매 같은 눈동자
그런 까닭에 대중 속에서 그들과 완전히
일체가 되려고 했네
투옥 기간
조용히 앉아만 있어야 했던 그대는 몇 백번이나
입술을 깨물었을까
그대는 책 속의 투쟁전사가 아니었네(중략)
투쟁을 선언했기에 다시 갇힌 지하에서
그대의 대중을 향한 사랑의 행보는
단절되었을까 단절되었을까
더욱이 둘러친 적의 밧줄 때문에
눈을 감고 갇혀 있었던 것일까
프롤레타리아 아트의 모든 것일 그대의
생명을 그럼 우연한 불길이 빼앗았을까
아니지!
그대를 쇠사슬로 묶은 손, 꼼짝 못하게 한 밧줄,
그 셀롤로이드의 장식 가게까지 몰아넣은 대상!
불길이여!
그 순간에 백배가 된 적의 밧줄
그리고 당신의 의지!
생명으로 바꾸기 어려운 것을 지켰네
그대의 죽음 앞에 최후의 눈물까지도
우리가 흘리리.
(마쓰다 도키코 시집 ‘조선 처녀의 춤’, 범우사에서)
이 시 ‘애도의 노래’는 마쓰다가 화재로 세키 도시코를 잃은 뒤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며 프롤레타리아 아트를 보전하기 위해 투쟁한 그녀의 과거 행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녀의 고결한 넋을 기리는 뜻을 담아 노래한 것이다. 또한 그녀가 못다 이룬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꿈과 포부를 계승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천명한 작품이다.
언니 아키코는 우타고에 운동의 선구자로 많은 이에게 추앙을 받고 명성을 얻었다. 이에 반해 그녀는 안타깝게도 요절했다. 하지만 언니와 사상적 궤를 같이 하는 일에서 한시도 이탈하지 않은 삶을 산 것이다.
그녀가 독일 영화 ‘회의가 춤춘다’라는 주제가에 매료돼 평소 읊조리던 가사 ‘그 아주머니가 출옥했다고!’를 어린애들이 따라 부른 것은 그녀가 그 정도로 투옥으로 알려진 여전사였음을 방증한다.
마쓰다가 어린애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은 그녀의 강직한 성정과 치열한 운동의 발자취를 새기기 위함이었을 터.
‘애도의 노래’에는 자신을 포함해 감옥 밖에 있는 자들이 ‘무력’해서 그녀에게 ‘내리쬐는 태양 빛을’ 쐬게 해주지 못한 것을 자성하고 책망하는 목소리가 배어 있다.
마쓰다 도키코는 권력의 횡포에 수그러드는 모습을 주위에서 보아왔다. 허나 세키 도시코는 여느 때나 ‘결연히 투쟁을 선언’하는 혁명가였다. 동지이자 친구의 ‘죽음 앞에 최후의 눈물까지도’ 흘려야 하는 이유다.(‘애도의 노래’는 16회에도 언급했으나, 보충해서 언급해둔다)
이러한 세키 아키코와 도시코 형제, 그리고 그녀 가족의 의지와 희생이 바탕이 돼 우타고에 운동은 국경과 시대의 경계선을 넘었다. 우타고에 합창단이 5월 광주를 찾은 지 오래고 매년 민주의 성지에서 평화운동을 펼치며 시민들과 연대의 손을 맞잡고 있어서 감회가 남다르다.
-그녀와의 추억, 소설과 시와 에세이로 남겨-
마쓰다 도키코가 자전적 에세이 ‘회상의 숲’에 그녀와의 교류를 추억한 것은 78세 때(1978년)다. ‘일본민주주의문학회’가 발행하는 ‘민주문학’ 1월호부터 ‘회상의 숲’을 연재하기 시작하는데, 그녀와의 교류를 12장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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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는 한편 ‘회상의 숲’ 제1회에 ‘태양과 빌딩’이라는 제목으로 전범기업 미쓰비시에 대한 감정을 선연히 드러냈다. 해가 뜨는 도쿄역 앞에서 본 미쓰비시의 마루빌딩. 그 미쓰비시의 “소유물에서 너무나도 큰 압박감, 뿌리칠 수 없을 정도의 피정복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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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는 대표적인 소설 ‘오린 구전’에서도 독점자본 미쓰비시가 얼마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그들을 학대했는지, 또한 그 때문에 남편을 여의고 자식 둘을 품은 채 근근이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리얼하게 그려내어 미쓰비시의 소행을 낱낱이 고발한 바 있다. 이런 미쓰비시와 같은 거대 악덕 자본과의 결투에 세키 형제와의 교류와 인연, 그들과 맺은 사상적 자장이 면면히 관류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마쓰다는 1930년대 이미 그녀를 모델로 한 ‘여성의 고통’을 소설로 집필했었다. 그럼에도 상기의 시편을 통해 그녀의 활동을 치하하고 죽음을 애도함에 그치지 않고 에세이를 통해서도 망자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소환해낸 것이다. 그 정도로 마쓰다의 일생에 세키 도시코가 주요 인물로 각인돼 있었다는 근거다.
<김정훈·전남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