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책을 읽는 게 어때요? / 이현

2021년 10월 28일(목) 19:42

이현 아동문학가

“간장이라….” 요리 초보 시절, 음식에 간장을 넣어야 할 때마다 생각이 복잡했다. 집 간장을 시작으로 조림 간장, 양조 간장, 진 간장, 맛 간장, 효소 간장…. 간장은 간장인데, 이름만 다른 것 같은 간장 종류 앞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간장의 선택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는 것도 신기했다. 아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용도에 맞는 간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소재, 주제, 알레고리, 문학적 상상, 심미적 거리….”

문예창작학과에서의 첫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늦은 나이에 새롭게 시작한 공부다 보니 열정을 다해 수업에 임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하나라도 놓칠까 봐 눈 크게 뜨고 귀 활짝 열어, 보고 듣고 있으면서도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특별히 어려운 글자가 아닌, 쉽게 읽을 수 있고 쓸 수도 있는 글자들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의미인지, 어떤 맥락인지, 어렴풋이 감이 왔다가도 아닌 것 같아 생각만 복잡했다. 낯선 단어들을 마주할 때마다 자존감이 뚝뚝, 나만 혼자 모르고 앉아 있는 것 같아 자꾸만 움츠러졌다. 수첩 하나에 문예창작학과 단어장을 만들어 수시로 익히고 또 익히면서야 교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낯선 단어들이 익숙해지면서, 자신감과 재미가 살아났다.

“아! 알아요, 이제 알겠어요!”

학생들과 함께 할 때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난이도를 떠나, 질문의 의도를 몰라 답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충분히 답할 수 있는 쉬운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문제 자체를 파악하지 못해 정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다.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긴 문장이나 어려운 낱말이 들어간 글을 읽고 이해해야 하는 고학년이 될수록 문제는 심각하다. 사전적 의미로, “문해(文解) 또는 문자 해득(文字解得)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일 또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넓게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와 같은 언어의 모든 영역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로 정의되고 있는 문해력의 문제다.

“문해력 문제라고요?”

‘문, 침대, 냉장고, 화장실….’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도 전에 집안 곳곳에 낱말카드를 붙여 놓고 읽고 쓰기를 즐겨 가르치고 있는 우리의 정서에 문해력이 무슨 문제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아니다. 낮은 문해력으로 힘이 들어 하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받아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낮은 문해력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문해력은 아이들의 학업성취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심리, 정서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의 일상에서도 공감과 소통, 문제 해결로 끌어내는, 삶의 바탕이 되고 있다.

“가을에는….”

책 읽기 딱 좋은 계절, 가을이다. 이 좋은 가을 날, 진짜 책 읽기를 통해 마음 가득 가을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 문장 속에 모르는 글자가 나와도 아는 척, 슬쩍 넘어가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다하는 책 읽기였으면 좋겠다. 책에 대한 긍정의 마음을 담은, 즐거운 책 읽기 프로그램 역시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한 아이를 위해 온 마을이 복지 코디로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문해력 향상도 마찬가지다. 차곡 차곡 하나씩 쌓아가야 한다. 누구 한 사람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저절로 책 읽기를 즐거워하는 일은 거의 없다. 때문에 가정, 학교, 지역, 국가 등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다양한 책 읽기, 독서토론, 특정 주제를 정하여 토론하기, 책 읽어 주기, 소리 내어 책 읽기, 집중적인 책 읽기, 깊이 있는 책 읽기, 밥상머리 대화, 신문기사 정독하기 등 갖가지 독서활동이 필요하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독서활동을 통해 공감하며 서로 소통하는 세상을 만들면 좋겠다. 이 가을, 방방곡곡 책을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