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난장]NFT-디지털 세상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 이성대 |
| 2021년 11월 04일(목) 19:54 |
|
디지털로 구축된 사물은 이론적으로 완벽한 복제가 가능하다. 수학적 기호로 표현될 수 있는 디지털 체계는 원형과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복제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복제가 원형과 복제물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날로그 체제에서 원형과 복제물은 그 구별에 기술적인 문제만 존재할 뿐 원리상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어쨌든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미래 디지털 사회를 다루는 영화에서도 원형성(Originality)에 대한 집요한 애착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원형에는 가치를 부여하지만 복제물에는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보편화된 디지털 세상에서 원형과 복제물, 복제물과 복제물이 기호적으로 동일한 사물이라면 이들 사이의 구분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철학적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려는 논의는 오랜 역사를 지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유명한 이데아론은 그 원형을 나타내는 이론이다. 그는 모든 사물에는 그 원형으로서의 이데아가 있으며, 현실 세계의 사물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파하였다. 이데아가 원형이고 현실의 사물이 그림자라면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는 분명해진다. 그에 대한 반발로 그 반대가 진실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세계만이 진짜이며, 이로부터 벗어나 있는 현실 너머의 세계라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망상이라는 것이다.
어느 것을 진짜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현재까지도 철학자들과 종교적 가르침의 근저에 깔려있는 주요한 문제의식 가운데 하나이다. 인류는 오랜 시간 이 두 극점을 오가며 세상에 대한 인식능력을 키워왔다. 그 과정에서 인류의 지식은 풍부하고 깊어져 왔다. 사실 인류가 원형성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복제물을 무가치하게 느끼는 것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기도 하고, 사회문화적 유용성 때문일 수 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술은 진화론적으로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원형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한 사회의 발전과 문화적 다양성에 도움이 되는 창작활동을 자극하는 기능을 한다.
최근 메타버스의 유행과 더불어 예술계에 NFT(대체 불가능 토큰)라는 낯선 용어가 대중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로 구축된 가상의 창작물(자산)에 고유기호를 부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터무니없이 큰 가격이 부여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원리적으로 동일한 무한한 복제물들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는 하나의 작품에 단지 NFT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가격이 붙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든 복제물이 원리적으로 동일한 디지털 세상에서 인류가 느끼는 커다란 당혹감이 원인일 수도 있다. 모두에 소개한 영화에서 자의식이 강한 레플리컨트들(인간을 모델로 만들어진 자의식이 있는 인공지능 로봇)은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극복하고 진짜가 되기 위해 결국 혁명을 꿈꾸는 데까지 나아간다. 어떻게든 원형과 복제물 사이에서 차이를 만들어내서 가치를 부여하려는 인류의 사회문화적 본능이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