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지리산 피아골 단풍길

‘가을 산 붉고, 단풍 물든 물 붉고, 그 속의 사람까지 붉어지네’

2021년 11월 09일(화) 19:21
피아골계곡에는 수많은 작은 폭포들이 이어지고, 티 없이 맑은 물은 바위 사이를 돌고 돌아 흘러간다. 계곡을 덮고 있는 나무들은 예쁘게 물들어 맑은 물과 잘 다듬어진 바위들까지 붉게 물들였다.
광주에서 구례 가는 첫차를 탔다. 곡성에서 섬진강을 만난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은 언제 봐도 아름답고 정겹다. 섬진강을 덮고 있던 아침안개가 약속이라도 한 듯 걷히기 시작한다. 강을 둘러싸고 있는 산봉우리들은 면사포를 벗고 슬며시 자기모습을 드러내준다.

강변에서는 억새가 은빛으로 하늘거리고, 산색은 붉게 변했다. 강물은 구불구불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고, 강변모래는 아침햇살에 반짝인다. 강은 강변마을이 있어 정답고 사람향기가 풍긴다. 압록에서 보성강이 합류해 강폭은 더욱 넓어졌다. 제법 강다운 면모를 갖췄다.

섬진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구례 땅에 들어선다. 버스 앞 창문 너머로 지리산 노고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리산이 어서 오라고 가슴을 열어주는 것 같다. 구례버스정류장에서 노고단 가는 버스를 탄다. 노고단행 버스는 단풍철이라 그런지 평일인데도 만원이다.

성삼재에 도착하자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로 이어지는 임도를 걷는다. 고지대라 활엽수의 나뭇잎은 이미 떨어졌거나 시든 상태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이미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것 같다.

노고단대피소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는 노고단고개로 향한다. 노고단고개에 도착하자 반야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지리산 주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지고 멀리서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도 고개를 내민다. 장엄한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욕망에 집착해 살아온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평일이라서 주능선을 걷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호젓하다. 돼지평전 근처에서 본 왕시루봉능선과 피아골계곡이 장관이다. 주능선에서 뻗어나간 산줄기들이 지붕의 서까래처럼 양쪽으로 이어가고, 산줄기 사이에 깊은 계곡이 만들어져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주능선에서 보는 수많은 산줄기와 계곡이 깊고도 깊은 느낌을 가져다준다.

섬진강을 향해 뻗어나간 왕시루봉능선과 피아골계곡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산 높으니 골 깊다’는 표현이 실감난다.

주능선에는 단풍이 지고 없지만 저 아래쪽 산비탈을 바라보면 붉게 장식한 단풍이 수채화를 그려놓은 것 같다. 반야봉도 더욱 가까워졌다. 반야봉은 지리산 주능선에서 약간 비켜서 있지만 지리산 서쪽능선을 대표하는 봉우리다. 잎을 떨군 활엽수들 사이에서 지리산 고지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상나무들이 푸름을 과시하며 고고하게 서 있다.

피아골삼거리에서 주능선과 헤어져 가파른 날등을 따라 내려선다. 피아골삼거리에서 피아골대피소로 내려가는 능선에는 단풍나무가 많다. 며칠 늦었더니 1천m 이상 고지대는 이미 잎이 시들어버렸다. 종종 싱싱한 모습으로 화려한 색상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단풍이 아쉬운 마음을 달래준다.

피아골계곡에 가까워질수록 단풍의 형형한 색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등산로를 덮고 있는 단풍은 이미 단풍터널을 이뤘다. 단풍은 단풍나무로 대표되지만 생강나무, 참나무, 서어나무 등 대부분의 활엽수가 각기 다른 색상으로 물든다. 말 그대로 오색단풍이다.
피아골계곡을 물들인 단풍이 가을을 깊어가게 한다. 단풍은 단풍나무로 대표되지만 생강나무, 참나무, 서어나무 등 대부분의 활엽수가 각기 다른 색상으로 물든다. 말 그대로 오색단풍이다.

만산홍엽을 이룬 단풍은 우아하되 쓸쓸하다. 이런 우아함과 쓸쓸함 속에 지난 계절의 왕성한 생명활동이 응축돼 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단풍의 매력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는 미련 없이 떠나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만산홍엽을 이룬 단풍은 우아하되 쓸쓸하다. 이런 우아함과 쓸쓸함 속에 지난 계절의 왕성한 생명활동이 응축돼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지금 보는 아름다운 단풍도 며칠 지나면 위에서 보았던 단풍들처럼 시들거나 잎을 떨굴 것이다. 단풍의 매력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는 미련 없이 떠나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물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단풍의 응원을 받으며 피아골대피소에 도착한다. 1984년 대피소를 지을 때 이곳에서 빨치산으로 추정되는 트럭 한 대분의 매장된 인골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빨치산들은 영혼마저 천도되지 못하고 구천에 맴돌아야 했던 것이다.

대피소 주변 야외탁자에서 여러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나도 준비해간 주먹밥으로 시장함을 달랜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대피소 동쪽을 바라보니 암봉 하나가 눈에 띈다. 옛날 사명당(유정)이 피아골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저곳에서 의병의 작전을 지휘했다고 전해지는 흰덤봉이라 불리는 봉우리이다. 흰덤봉 산비탈을 장식한 붉고 노란 단풍과 푸른 소나무, 이미 잎을 떨군 회색빛 나목들이 한데 어울려 만추의 서정을 이루고 있다.

피아골대피소에서부터는 피아골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피아골계곡에는 수많은 작은 폭포들이 이어지고, 티 없이 맑은 물은 바위 사이를 돌고 돌아 흘러간다. 계곡을 덮고 있는 나무들은 예쁘게 물들어 맑은 물과 잘 다듬어진 바위들까지 붉게 물들였다. 수명을 다한 나뭇잎은 낙엽이 돼 물위에 예쁜 수채화를 그려놓았다.
단풍은 구계포폭포에서 절정을 이룬다. 물줄기가 완만한 반석을 타고 내려오면서 작은 와폭을 만든다. 물줄기는 굽이치면서 여러 개의 작은 폭포를 만들어낸다.

울긋불긋한 복장을 한 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이미 피아골 단풍의 일원이 됐다. 햇살에 비췬 단풍은 영롱하게 빛난다. 단풍은 구계포폭포에서 절정을 이룬다. 물줄기가 완만한 반석을 타고 내려오면서 작은 와폭을 만든다. 물줄기는 굽이치면서 여러 개의 작은 폭포를 만들어낸다. 자연이 잘 다듬어놓은 반석을 타고 내려온 폭포수는 잔잔한 웅덩이로 모아진다. 웅덩이에서 잠시 머문 물은 구계포교 아래로 흘러내려간다.
울창한 숲은 이미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 파스텔화가 됐다. 사람들은 피아골 단풍을 삼홍(三紅)이라 부른다.

울창한 숲은 이미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 파스텔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피아골 단풍을 삼홍(三紅)이라 부른다. 삼홍소에서 발길을 멈춘다. 삼홍이라는 이름은 남명 조식선생이 지리산 단풍을 한 편의 시로써 예찬했던 데에서 비롯됐다.

가을 산이 붉은 바다가 되니 산이 붉고(山紅),
단풍에 물든 계곡이 붉고(水紅),
그 품에 안긴 사람도 붉게(人紅) 물들어 버리네.

마지막으로 피아골계곡을 건너 임도로 접어든다. 지금까지 돌 많은 길을 걷다가 흙길 평지를 걸으니 부드럽고 편하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가을산길을 남녀가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이 단풍만큼이나 아름답다. 이윽고 직전마을에 도착한다.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둘러싸인 직전마을도 단풍에 물들어 있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피아골은 지리산계곡 중에서도 가장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피아골 산행은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피아골삼거리를 거쳐 피아골로 내려오거나, 직전마을에서 피아골대피소까지 다녀오는 방법이 있다.
※-A코스 : 성삼재→노고단고개→피아골삼거리→피아골대피소→삼홍소→직전마을(11.2㎞, 5시간 소요, 난이도:매우 어려움)
※-B코스 : 직전마을→삼홍소→피아골대피소→삼홍소→직전마을(왕복 8㎞, 3시간 소요, 난이도:어려움)
※-구례버스터미널에서 노고단 가는 버스가 오전에는 08:40, 10:20에 출발한다. 직전마을에서 구례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매시 20분에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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