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31) 동백꽃이 피니 떼 지어 아리땁고 붉으니 |
| 2021년 11월 09일(화) 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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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이 피는데 떼 지어 아름답고
뿌리가 서린 것이 무더기 이뤘는데
외져서 거마가 없어 홀로서 피고 지네.
山茶花發簇 紅 歲久根盤作大叢
산다화발족언홍 세구근반작대총
自是地偏車馬少 年年開謝小園中
자시지편거마소 연년개사소원중
기봉 백광홍이 관서평사를 제수 받아 지은 [관서별곡]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관서 명승지에 왕명으로 보내실세, 연조문 내 달아 모화고개 넘어 드니 귀심을 빠르거니 고향을 사념하랴…. 산일이 반사거늘 귀편을 다시 뽑아 구현을 넘어 드니 生陽館 기슭에 버들마저 푸르렀다’고 했다. 생양관은 관서지방 생양역 부근의 공관이었다. 땅이 외져서 오고가는 거마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고, 해마다 작은 뜰에서 피고 진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동백꽃이 피니 떼 지어 아리땁고 붉으니’(生陽館山茶盛開吟成一絶)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1424-1483)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경사와 전고에 통달했고 당대에 뛰어난 문장가였다. 사대부로서의 관인적 취향과 섬세한 감각을 가진 문인이면서도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와 설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관인문학의 고답적인 자세를 파괴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동백꽃이 피니 떼 지어 아리땁고 붉으니 / 세월 오래되니 뿌리 서려 무더기를 이루었다 // 땅이 외져서 오고가는 거마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고 / 해마다 작은 뜰에서 피고 진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생양관에서 동백꽃이 저리 무성하게 피어 절구 한 수를 읊다]로 번역된다. 동백이란 이름 외에 산다화(山茶花), 탐춘화(探春花)라고도 한다. 매화 못지않게 동백도 차가운 겨울을 지탱하면서 꽃을 피운다. 매화는 중부지방을 포함해 전국에서 꽃의 위용을 자랑하는 반면, 동백의 특성은 따뜻한 남쪽이다. 동백꽃은 예부터 이루지 못한 사랑의 대명사였다.
시인의 시상은 후정 못지않게 경구에 매력을 취하는 현상을 보이는 시상의 무더기를 쏟아 내고 있는 형국이다. 동백꽃이 피니 떼 지어 아리땁고 붉고, 세월이 오래 되니 뿌리가 서린 것이 큰 무더기를 이뤘다고 했다. 동양의 꽃인 동백은 서양에 건너가서도 비련의 여인 이미지를 이어갔음이 보이는 꽃이기도 하다.
화자는 외로운 동백꽃의 비련을 가슴에 품는 아픔에 감내하고 있음이 화자의 가슴을 요동쳤을 것이다. 땅이 외져서 오고가는 거마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고, 해마다 작은 뜰에서 외롭게 피고 진다고 했다. 고려 말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을 비롯해 가까이는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백꽃’처럼 동백은 언제나 여인과 함께 등장했다.
※한자와 어구
生陽館: 생양역에 있던 공관. 山茶花發: 동백꽃이 피다. 簇 紅: 떨기가 아름답고 붉다. 歲久: 세월이 오래다. 根盤: 뿌리가 서리다. 作大叢: 큰 떨기를 이루다. // 自是: 스스로 시인하다. 地偏: 땅이 외지다. 車馬少: 거마가 작다. 年年: 해마다. 開謝: 피고 지다. 小園中: 작은 뜰에서.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