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하모니카 / 수필 - 김진환 |
| 2021년 11월 22일(월) 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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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누군가가 하모니카를 가지고 와서 불었다. 입에 대고 불면 소리가 나는 기구가 신기해서 모두 돌려가면서 불었다. 서툰 솜씨였지만 하모니카 소리는 우리들의 합창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여름밤을 시원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 밤마다 우리는 그 물건을 입에 대고 불고 싶어서 그 친구를 손꼽아 기다렸다. 낮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각자 자기 할 일에 바빴다. 꼴을 베는 아이, 소를 몰고 풀을 뜯기는 아이, 논 물꼬를 보러 가는 아이, 나무하러 가는 아이, 모두 자기 위치에서 바쁘게 지내다가 밤이 되면 누가 모이자고 한 것도 아닌데 마을 앞 풀밭에 모여 앉아 단꿈에 젖곤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언가 악기를 하나쯤은 다루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심하였다. 색소폰, 하모니카, 아코디언 등을 생각하다 가장 손쉬울 것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악기인 하모니카에 매력을 느꼈다. 동요 몇 곡 정도는 불 줄 알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동요에서 가곡, 가곡에서 가요로 갈수록 어려워졌으나 취미생활이라 생각하며 익혀가니 부담도 적고 연주 실력이 향상되면서 점점 더 재미가 진진하게 쌓여갔다.
하모니카의 유래는 문헌상으로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우리가 연주하는 하모니카는 1827년 독일의 작은 시골 마을인 트로싱겐(Trossingen)에 사는 한 소녀가 아코디언을 개조하여 입으로 불 수 있게 만든 것이 오늘날 하모니카 모양이라고 한다. 하모니카의 종류는 수없이 많지만 크게 복음, 단음, 크로매틱의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복음 하모니카를, 유럽에서는 주로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아메리카에서는 보통 재즈 하모니카라고 하는 단음 하모니카를 많이 연주한다.
하모니카는 크기가 작아 휴대가 간편하고, 소리가 크지 않아 언제 어디서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가격이 저렴하고 배우기 쉬워 누구나 손쉽게 즐겨 연주할 수 있다. 유일하게 숨을 불고 마시는 악기로 심폐기능을 강화하여 건강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혀를 사용하기 때문에 뇌를 활성화하여 건망증이나 치매의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물론 악기를 청결하게 유지 관리하는 것이 필수다. 하모니카는 멜로디와 반주를 겸할 수 있고, 싱글 주법, 바이브레이션 주법, 베이스 주법, 핸드카버 주법 등 그 주법이 다양하여 같은 노래도 연주자에 따라 주법을 달리할 수 있고 색다른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집에 있으면 누구에게 구애받을 것도 없이 아무 때나 꺼내 불며 흥얼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마음이 울적할 때나 쓸데없는 상념들이 떠올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나는 하모니카를 연주하거나 하모니카 소리를 듣는다. 가을밤, 오빠생각, 섬집아기, 따오기, 이런 우리 동요들을 부르면 누군가가 한없이 그리워지며 마음이 옹달샘처럼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하모니카는 어린 손주들과도 다정한 친구가 되게 해 준다. 손주들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하모니카를 연주하면 손주들도 흥겨워할 뿐만 아니라 나 또한 한 세대는 젊어진 기분이 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나 싶다. 불로초가 따로 없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하모니카 소리는 내 고향의 소리이자, 계절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소리이다. 오솔길을 굴러가는 낙엽 소리 같기도 하고,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같기도 하고, 어미 닭을 총총 따라가는 병아리 소리 같기도 하다. 봄에는 얼음장을 깨고 나와 흐르는 시냇물 소리 같기도 하고, 여름밤에는 애절한 풀벌레 우는 소리와 같다. 가을밤에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되고,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밤에는 멀리서 부엉이가 짝을 찾아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가까이는 문풍지 우는 소리가 되어 심금을 울린다.
하모니카 소리는 우주와 교감하는 내 마음의 속삭임이다.
<김진환 약력>
▲‘산문의 시’ 문학에세이 등단, ‘산문의 시’ 시 등단
▲광주시 문인협회 회원, 산문의 시 작가회 회원
▲전남 곡성 출생,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