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설 몇 마디 - 박덕은 문학평론가 |
| 2021년 11월 22일(월) 19:30 |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옷 기워 주던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아홉 살쯤 된 시적 화자는 바늘구멍에 실 꿰는 일을 어머니 곁에서 즐거이 도와주곤 했다. 무명실을 입술에 침 발라 실끝을 가다듬어 바늘코에 끼워 넣었다. 그것으로 어머니는 시적 화자의 터진 옷을 말끔히 기워 주었다. 그때 어머니의 손가락에 끼워졌던 골무, 어느 날 시적 화자는 그 골무를 떠올린다. 그와 동시에 꽃 속에 골무 품고 피어나는 꽃들의 신호를 보게 된다. 그건 다름 아닌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고운 눈빛이었다. 골무를 소재로 하여,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 그 세계를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옛 시골 정경이 이미지로 잘 그려져 있고, 향수에 젖어들게 하는 매력과 힘이 아주 멋져 보인다. 이 토대 위에 공감각 구현과 낯설게 하기를 보탠다면, 더욱 상큼한 시가 될 것 같다.
▶시조 ‘가을꽃’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그대를 잊어버릴 수도 없고, 잊고 싶지도 않다고 고백한다. 그 인연이 소중하기 때문에, 말 안 해도 잘 알기 때문에. 그대의 눈빛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물 흐르듯 흘러만 가는 세월을 살아가면서 어느덧 스며든 깨달음 하나, 그리고 희망 하나. 그건 뭘까. 그대는 다름 아닌 눈 밝은 빛, 온 산야를 휘감아 비추는 빛이라는 깨달음, 오로지 그대만을 곱게 그리며 느긋이 껴안고 살겠다는 희망. 시조 전반에 걸쳐 애틋한 사랑 고백이 은은히 펼쳐지고 있다. 독자들을 대신해서 속마음을 시적 형상화 시켜 놓고 있는 솜씨가 아주 세련되어 보인다.
▶시 ‘비처럼 내린다’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노을이 다리를 어둠의 강가에 걸쳐 놓고서 푸슬푸슬한 기억 조각들을 걷어 올리고 있다. 바람이 돌아간 자리엔 그리움의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승강장을 출발한 구름들은 시린 깃발을 흔들고 있다. 하늘 언저리는 강물 속으로 머리를 처박을 때, 맥 빠진 행낭이 구슬픈 노래 부를 때, 간혹 그대가 비처럼 내린다고 고백하고 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저토록 시리고 아린 고백을 하게 될까. 시의 여리고 아름다운 감성 속으로 저절로 빨려들게 하고 있다. 시의 곳곳에 배치된 시각 이미지, 청각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활용하여, 선명한 시심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수필 ‘하모니카’
이 수필에서의 서술자는 어린 시절의 여름밤 추억에 잠긴다. 그때 한 아이가 하모니카를 가지고 와 불었을 때, 친구들은 호기심으로 하모니카를 같이 돌려가며 불게 되었다. 합창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하모니카 연주, 그 매력에 푹 빠진 아이들. 각자 바쁜 농촌 일손이 되어 흩어져 있다가, 밤이 되면 마을 앞 풀밭에 모여 하모니카를 돌려가며 불었던 추억. 그 추억이 서술자로 하여금, 나중에 취미로 하모니카를 택하여 연주하게 한다. 내친김에 하모니카의 유래, 하모니카의 종류, 하모니카의 효용성, 하모니카 주법 등에 대한 정보 제공까지 해준 뒤, 다시 추억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여생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하모니카 소리, 그게 서술자에게는 고향의 소리, 자연의 소리, 낙엽 소리, 병아리 소리, 시냇물 소리, 풀벌레 소리, 귀또리 소리, 부엉이 소리, 나아가 우주와 교감하는 마음의 속삭임이 되어 주고 있다. 하모니카라는 수필의 한 소재가 인생 깊숙이 스며들어, 친구가 되어 주고, 의지가 되어 주고,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외롭지 않게 살아가게 해주는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다. 우리에겐 이런 동반자, 마음의 속삭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이 수필을 통해 여생의 고독을 달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 고맙다. 이런 수필이 있어, 행복한 여생을 꾸려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