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성공의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는 없는가? / 이성대
2021년 11월 25일(목) 18:40
이성대 시사평론가
최근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 하나가 국제적인 신드롬 현상을 일으켰다. 일찍이 기대할 수 없었던 풍경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국제적인 미디어 콘텐츠 제공업체(OTT),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오징어게임’ 이야기다. 한국 문화예술 산업의 역량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으며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세계적인 인기로 얻는 막대한 수익이 대부분 넷플릭스에 귀속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드라마의 성공 이면에 우리나라 문화예술 산업 종사자들의 ‘열정페이’가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시점에서 넷플릭스 본사가 감독과 배우 등에게 보너스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통상 전작이 히트하면 후속작 제작에서 좋은 계약조건을 받게 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우려는 어느 정도 불식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한국 문화예술 산업 제작환경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열정 페이’ 논란은 여전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문화예술 분야의 작업 현장은 표준화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업무과제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정해진 시간에 출 퇴근하며 하루의 노동량이 표준화되어 측정될 수 있는 일반적인 근무환경에 비해 문화예술 분야는 불규칙적인 노동, 초과근무가 일상화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까지를 문화예술계의 특성으로 인정해 줄 것인지도 마땅치 않다.

우리 나라는 근대화 이래로 서구사회를 따라잡기에 바빴다.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기를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깐 동족상잔의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전후의 폐허 위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불과 70여년 전의 일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빨리빨리 처리해야만 하는 관행 아닌 관행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건물을 지을 때나 도로를 만들 때도 보통 정해진 기간보다 단축해야 했으며 이를 위해 밤낮 없이 일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모든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는데 익숙해졌다. 일상생활에서 즐거움의 원천이어야 할 식사 역시 10분 내로 해치우는 것이 습관화됐다.

최근 국제사회가 한국을 재평가하면서 그래도 ‘빨리빨리’ 문화 덕에 전쟁의 폐허 위에서 놀라운 기적을 창조했다고 찬탄한 것은 아이러니다. 흔히 말하듯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거의 유일한 사례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이런 칭찬에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그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지는 법이다. 단기간에 많은 것을 성취한 우리 국민이지만 그런 빨리빨리 문화가 가져온 폐해도 크다.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백화점 붕괴사고나 다리 붕괴 사건은 고속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값비싼 희생이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원칙과 상식을 무시한 일들이 벌어진 것도 그 폐해 가운데 하나다. 특히 수많은 어린 학생들을 어이없는 희생으로 내몬 세월호 사건은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대형 인재 가운데 하나로 기억된다.

이제 우리는 과거와 달리 한결 여유를 갖춘 사회가 되었다. 언필칭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사회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아직도 원칙과 상식에 통하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최근 벌어진 가슴 아픈 건축물 붕괴 사고나 거대 통신회사의 통신망 두절로 일시에 전국에서 소동이 일어난 사건도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하청의 하청을 거듭하며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데서 비롯된 사건이고 사고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게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제도와 관행이 적잖이 남아 있다. 문화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국제적인 명성으로 들떠있는 와중에 누군가는 열정페이를 강요받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대우에 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둘러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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