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34) 한가한 마음을 이리 흔들어 놓으니 나는 어찌하랴

2021년 12월 07일(화) 19:11

광해군 때 한 철학자는 다음과 내용에 어울리는 시 한 수를 지어 어지러운 세태를 비유적으로 꼬집었다. 벌레 소리들이 침상 밑으로 기어들어 와 번잡한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고 했다. ‘그 녀석들, 임금의 마음을 그만큼 어지럽혔으면 그만이지 여기까지 찾아와 내 마음까지 심난하게 만드는구나“라고 투덜거렸을 것은 뻔해 보인다. 흰 이슬방울 맺히고 가을 달빛은 고운데, 밤 벌레 소리 시끄럽게 침상에 앞에 들려온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中秋夜新月(중추야신월) / 매월당 김시습
흰 이슬 맺히고 가을 달빛 고운데
벌레 소리 시끄럽게 침상에 들리고
마음을 흔들어 놓고 노래를 읽는다.
白露溥溥秋月娟 夜虫喞喞近床前
백로부부추월연 야충즐즐근상전
如何撼我閒田地 起讀九辯詞一篇
여하감아한전지 기독구변사일편

한가한 마음을 이리 흔들어 놓으니 나는 어찌하랴(中秋夜新月)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이자 학자다. 세종에게 받은 비단을 직접 묶어 허리에 차고 궁궐을 나갔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유명하여 잔잔하게 들린다. 13세까지 이계전, 김반, 윤상 등에게 사서삼경을 비롯한 각종 사서와 제자서를 배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흰 이슬방울 맺히고 가을달빛 고운데 / 밤 벌레소리 시끄럽게 침상에 앞에 들려오네 // 한가한 마음을 이리 흔들어 놓으니 나는 어찌하랴 / 일어나 구변의 노래 한 편을 읽고 있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추석날 밤에 뜬 보름달]로 번역된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이란 동요를 연상해 본다. 달 속에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시상 앞에 어릴 때의 추억을 연상해 본다. 달은 동경의 대상이고, 사랑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외로운 사람에게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시름이 많은 사람에게는 시름을 함께 했던 둥근 보름달이었다. 그것도 가장 밝다는 중추절 보름달이었다면 그 사랑스러움은 더했을 것이다.

시인은 시제에서 보이는 정겨움보다는 주변에서 시끄러운 벌레소리와 뒤범벅이 된 달빛의 고운 관련성으로 시상으로 이끌기에 부산한 느낌을 받는다. 흰 이슬방울이 맺히고 가을달빛은 곱기만 한데, 밤 벌레소리가 시끄럽게 침상 앞에 들려온다고 했다. 역시 가을 벌레소리는 고운 달빛과 조화를 이뤄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기도 했다.

화자는 흰 이슬방울과 풀벌레 소리가 마냥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고 하면서 흥이 취해 노래 한 곡으로 위안을 삼았으리라. ‘한가한 마음을 흔들어 놓으니 나는 어찌하랴!’라는 하소연과 함께, 이제 일어나 구변의 노래 한 편을 읽고 있다고 했다. 구변의 노래는 가을 노래란다.

※한자와 어구

白露: 흰 이슬방울. 溥溥: (이슬이) 맺혀 있는 모습. 秋月娟: 가을 달이 곱다. 夜虫: 밤 벌레. 喞喞: 벌레소리. 近床前: 침상 앞과 가깝다. // 如何: 어찌하랴. 撼我: 나의 한함. 閒田地: 농촌의 한가함. 起讀: 읽기 시작함. 九辯: 초나라 송옥(宋玉)의 작품. 가을의 노래. 詞一篇: (구변사) 한 편.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