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캠프의 불편한 청년 모시기 / 임명규

2021년 12월 12일(일) 18:57

임명규 광주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

선거(election)와 엘리트(elite)는 그 말의 뿌리가 같다. 오래전부터 한 공동체의 엘리트 집단만이 선거에 출마 할 수 있었거나 유권자의 투표의 성향 자체가 그 사회가 인정하는 정형화된 엘리트를 선거에서 선택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할수록 후보자 선택 기준이 다양해져야 하지만, 대게의 유권자는 성공 스토리, 훌륭한 학벌, 특별한 자격증을 가진 ‘인물’을 선호한다. 화려한 이력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매력이 된다. 도덕성이나 고매한 인격과 같이 모호한 기준이 아닌, 예컨대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경력과 검증된 자격증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새로운 영역인 정치에 뛰어들어 노력, 봉사한다는 식의 표현이 선거에선 자주 등장한다.

오래전부터 젊은 피 수혈을 통한 정치개혁과 정당혁신은 제자리에 멈춰있거나 별다른 성과가 없어 보이지만, 아침 드라마의 ‘숨겨진 가족 찾기’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만들어지는 새로운 선거 캠프가 새로운 시도가 가진 위험성보다 식상하지만 평균은 하는 고전적 레파토리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의미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노동과 닮아 있으나 큰 차이가 있다. 시지프스는 고뇌하지만 그들은 늘 격렬하고 활기차다. 최근 두 정당의 대통령 선거 캠프가 보여주고 있는 청년 모시기가 그렇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지만, 유권자와 언론의 호기심을 한동안이라도 잡아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두 대선 캠프에서 벌어진 청년 모시기 경쟁은 지나치다. 이미 양당 대선 캠프에서 영입한 청년 인사가 자진 사퇴까지 했다. 시끄러운 인재영입과 검증논란, 지지자 결집과 날선 여론전, 지리멸렬한 공방과 갑작스런 자진 사퇴. 이 주기가 짧으면 2주 길면 한 달 정도 걸리니, 정책이나 공약 검증의 시간은 또 줄어든다. 승자는 불분명하지만 패자는 확실하다. 바로 유권자다.

최근의 청년 모시기 현상은, 성공한 일부 청년들에게 또 하나의 ‘자리’가 생긴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청년에게 좋은 자리를 하나 더 만들어주는 방식이 한국 사회의 보통 청년이 겪는 미취업시기 동안의 생활비 부담, 낮은 임금과 직무만족도, 불안정 노동의 심리적 위협, 학자금 대출 상환과 주거비 부담, 코로나19로 인해 얼어붙은 채용시장 등을 해결하는 것과 과연 어떤 상관성이 있을까? 성공한 인물에게 그저 청년이라는 소비하기 좋은 ‘기호’가 덧붙여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제 청년정책도 아동 청소년 문제, 노인, 여성 문제 등 다른 사회정책과 같이 그 분야에 대한 최소한의 경험과 고유한 특성에 대한 이해, 일정하게 합의된 철학적 전제 등이 필요한 영역이 되었다. 청년정책이란 이름으로 시민권을 획득한지 10여년을 넘어가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하게 갖추어야 하는 전문성과 ‘대표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나이가 청년이라는 이유로, 젊은 나이에 다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유로 중요한 정치적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리에 발탁하는 것은 청년정책에 대한 지나친 무지 혹은 청년 유권자에 대한 무시가 깔려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한 발 양보해서, 성공한 청년이기 때문에 보통 청년의 목소리를 50대 정치인들보다 더 잘 대변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럼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청년 모시기를 통해 중책을 맡긴 청년에게 그 자리에 알맞은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캠프가 부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무수한 사례를 보면 이마저도 상당한 의구심이 앞선다. 청년 모시기를 했다면, 그에 부합하는 실질적 권한을 확실하게 줘야 하고 그에 맞는 책임도 부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 내 특정 파벌의 아바타로 소모되거나 캠프 회의의 진행자 정도에 머무르게 된다. 따라서 청년모시기에 조금의 진정성이 있었다면, 영입한 청년들에게 직책에 상응하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IMF 직후, 벤처신화와 신지식인 캠페인이 한국 사회를 휩쓸었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사태의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대책보다는 정부와 언론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노력과 혁신을 통해 성공한 소수의 인물을 내세우면서 위기극복 캠페인으로 이용했다. 예컨대 자장면 배달을 하더라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신지식인이며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관행에 물들어 도전하지 않는 ‘개인’이 된다. 국가적 위기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변화를 만들어가는 리더와 같은 개인화된 능력 프레임으로 전환하면서 보통 사람들이 기적 같은 확률로 성공한 소수를 보면서 각성케 한 것이다.

2030세대의 지지도가 이번 대통령 선거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선거 캠프에 성공한 청년 몇몇이 들어갔다고 해서 표를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2030세대의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는 청년은 없지만 비슷한 문제로 같은 고통을 겪는 청년은 아주 많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보편적 청년의 특정한 문제를 파고 들어야지, 비싸고 보기 좋은 벽지처럼 성공한 청년의 이미지로 심각한 청년 문제를 감추려 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