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잘난 체하지 마! / 이문석

2021년 12월 12일(일) 18:57

이문석

과학아,
햇빛을 끌어다
전기를 만든다고?
그럼 어디 한 번,
달빛 끌어다
진주 이슬 만들어 봐!
별빛 끌어다
은실 비단 만들어 봐!
(동시집 ‘줄은 기러기 줄’, 아침마중, 2021)


[시의 눈]

어떤 아이는 제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체하다 된통 욕을 먹어요. 하면, 왕따지요. 옛날 같음 지나치겠지만요.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잘 난 세상, 귀한 왕자나 공주들이니까요. 시의 질문처럼, 똑똑한 과학도 자연 앞에선 꼼짝 못하네요. 너 그리 잘 났으면 ‘달빛 끌어다 진주 이슬 만들’ 수 있어? ‘별빛 끌어다 은실 비단 만들’ 수 있어? 헌데, 그 잘난 과학은 청문회의 한 인사처럼 묵묵부답이군요. 자신 없단 걸까요, 언젠가 기어이 만들겠다는 속셈일까요. 자연은, 과학 그깟 차로 졸 치기라네요. 저요, 오늘은 징글 코로나 뉴스와 여·야 후보의 여의도 텔레비전을 팔고, 문수골에 왔습니다. 폭포 능선에 가까스로 올라 큰 기함을 토합니다. 과학아, 천 길의 물 끌어다 악보 없이 쿵쾅쿵쾅 연주하는 저 노래 만들 수 있어? 이리 묻습니다. 비경은 안개정국 정치도, 부도전 경제도 다 떠나버리게 합니다. 그럼 잘난 글 쓰는 넌? 아, 윈도우8 노트북, 싱크패드, 스캔식 프린터기, 검색용 아이패드, 아예 다 코드 뽑고 나와 버렸다니까요 나 참! 아니, 핸드폰도 차에 두고 왔네! 이문석 시인은 나주에서 나, 초등학교 교사를 거친 뒤 오래 방송국에서 일했습니다. 197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가 당선돼 등단했습니다만, 50년 후에야 첫 동시집을 냈습니다. 동시가 주옥이 될 때까지 깎은 공교의 세월답게, 편편 목에 걸고 싶은 구슬로 반짝여 그 상자 안을 오래 들여다보게 합니다.<노창수·시인>